금요기도회

August 30, 2019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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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mori/라틴어/그리스 로마 시대에 유행하는 말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 왕은 궁중 연회가 있을 때면 언제나 시종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명했다고 합니다. 왕이 술에 취하여 흥에 겨워하고 있을 때 시종은 미리 준비한 해골을 가지고 연회장에 들어와서 “폐하, 폐하는 죽을 몸임을 기억하소서”이렇게 외치게 했답니다.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혈기 왕성한 10,20대는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릅니다. 죽음은 강 건너 편에서 일어난 불! 따라서 강 건너 편에 일어난 불은 강물을 건너서 옮겨 붙을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30-40대는 죽음은 옆 타운에서 일어난 불! 아직까지는 우리 타운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상태!
50-60대는 죽음은 우리 타운에서 일어난 불!
70-80대는 죽음은 우리 옆집에서 일어난 불입니다. 곧 바로 우리 집에도 옮겨 붙을 수 있는 불이지요.
90대에는 바로 내 집에서 일어난 불! 죽음이 코 앞에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지금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하여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요. 그것이 메멘토 모리!라는 말로 요약이 됩니다.
예수 믿는 이들은 사후 보장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죽음은 인생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난제입니다. 죽음 문제가 해결된 인생살이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영적인 실존도 예수 믿는 이들을 절망시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절망은 세상 사람들의 절망이 아니라,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절망입니다.

회개에 대하여;
회개가 무엇인가? 회개는 충만에 이르는 서곡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으로 허덕거리다가 문을 열고 들어 갔더니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영적인 고통, 육신적인 고통에서 해방되고 죽음은 사라지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회개를 생명 얻는 회개, 생명에 들어가는 회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모두 생명 얻는 회개를 경험했습니다.
행11:18절/
지은 죄를 회개하고 문을 열고 들어 갔더니 하나님이 회개한 나를 위하여 준비 해 놓고 있는 것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것들이었습니다. 그 예를 성경에서 찾아 보지요

우선 구약 성경에 나오는 나오미라는 인물에 대하여 알아 봅시다.
나오미는 룻기에 나오지요. 룻의 시모입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 사람인데, 자기 남편 엘리멜렉과 그리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대동하고서 모압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그만 남편이 엘리멜렉이 그 이민 간 땅에서 일찍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장가 들입니다. 며느리를 맞았는데, 큰 며느리는 오브라요, 작은 며느리는 룻이었습니다. 또 다른 불행이 찾아 왔습니다. 아들 둘이 10년 만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모두 죽었습니다.
이에 나오미는 고향 땅으로 역이민이라는 것을 하기 위하여 두 며느리들에게 모두 친정으로 돌아 가라고 말하지요. 오브라는 자기의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모인 나오미와 함께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 오지요.
만약 내가 나오미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요? 나오미는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 와서 고향 땅의 친지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룻1:20-21절/
나오미라는 이름의 의미는 ‘나의 기쁨’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과 그리고 손에 재산을 정리한 돈을 들고서 풍족하게 이민 갔지만, 지금은 남편과 두 아들 모두 다 죽고 며느리 룻과 돌아 왔는데, 빈털터리로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이렇게 비어 돌아 왔으니 앞으로는 내 이름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 즉 쓰라림이라고 부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땅에서 고향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회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회개라는 개념을 ‘돌아오라’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죄에서 돌이키라, 바알과 아세라 섬김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라는 말로 백성들을 권면했지요. 오늘 본문에서 보이는 대로 나오미가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 왔지요. 이것은 회개를 상징하여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고향 땅을 떠날 때에는 남 보란 듯이 풍족하게 떠났지만, 지금 고향 땅으로 돌아 올 때에는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 없이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향 땅으로 돌아 오는 나오미와 룻에게 예비 해 놓으신 복이 무엇입니까?
베들레헴 고향 땅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가 바로 보리를 추수할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보리 이삭을 밭에서 주어서 연명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춘궁기라는 시절에 왔다면 너도 나도 배고픈 시절인데, 얼마나 나오미나 룻이 배고픔의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요? 그러나 그들의 돌아왔을 때가 바로 이렇게 보리 추수 시기였습니다. 보리 추수가 끝나면 곧 밀 추수가 있게 되겠지요. 밀 추수가 마치면 이어서 포도수확 시기가 따라 오고요. 적어도 이 시기에는 배곯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 만으로도 나오미와 룻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였을 것입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온 나오미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이것이 다 일까요?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나게 큰 은혜를 하나님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은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이 베들레헴 땅의 부자인 보아스를 남편으로 맞아서 결혼하게 만드시지요. 보아스가 룻이 현숙한 여인임을 알고서 룻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여 결혼을 하게 되지요. 보아스와 룻 사이에 아들인 오벳을 낳게 되지요. 나오미는 오벳을 자기의 아들로 취하여 남겨진 기업을 이을 자로 세우지요. 이것은 나오미가 노년이 되어서 얻은 즐거움이었습니다.
한나님의 축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무슨 축복이 있습니까?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누구를 낳았지요. 다윗을 낳았습니다. 이 가문에서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제 2대 왕이 세워졌고, 그 다윗의 혈통으로 유대의 임금들이 나게 되었지요.
한 사람 나오미가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 올 때는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회개는 충만의 서곡!

탕자 이야기:돌아온 탕자=돌탕!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탕자의 경우에서도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탕자 이야기는 실재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주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이긴 하지만, 거기에도 회개는 충만의 서곡이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에는 나오미처럼 풍족하게 떠나지요. 아버지가 죽으면 자신이 받게 될 유산을 모두 손에 쥐고서 풍족하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지요. 집을 떠나서 타지에서 가진 모든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모두 탕진해 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흉년이 들다 보니 밥 굶고 있는 탕자에게 동정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주는 이가 없을 정도로 부자 집 도련님의 처지가 참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지요. 하나님 품 안에서 살 때에는 모든 것이 풍족해도 그것이 풍족한 줄 모르지요. 그가 누리던 현재의 것을 모두 잃어 버린 후에야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지요.
돼지 우리에서 돼지와 뒹굴던 탕자가 결단을 하고서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지요.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회개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 갈 때에 어떤 심정으로 돌아 갑니까?
눅15:18-19절/
이전의 자기 집의 귀한 아들이 아니라, 이제는 품꾼의 하나가 되어서 배고픔이나 면하면 되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아비 집으로 돌아 갑니다. 돌아 갔더니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탕자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바라던 그 이상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탕자가 돌아 갔더니 어떤 대접을 받았나요? 심한 꾸지람을 들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극진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남루한 거지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맨발에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살진 송아지를 내 주면서 탕자의 귀환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옛날의 그 지위와 신분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탕자가 집 나왔다가 아비 품으로 돌아 갈 때에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으리라고 예상했던 가요?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그저 그 집의 종들처럼 대접해 주면 족하다는 심정으로 돌아 갔더니 기대 이상의 환대를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라고요?
회개는 충만의 서곡이다!

우리들도 우리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서 방황했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찾아 오는 것은 눈이 어두워져서 헤매이게 되고, 우리들의 걷는 앞길이 메마른 광야 같은 길이 되어서 정처가 없습니다. 가는 길 험하고 어두워서 힘이 들기에 이제는 집 나온 아버지께로 돌아 가게 되지요. 이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회개하고 돌아 갔더니 무슨 축복이 있나요? 땅에서의 우리의 삶에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지요. 그리고 또 무엇이 있나요? 하늘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하늘의 영광과 축복이 있습니다.
회개는 충만의 서곡!

회개는 아무리 늦었다고 할지라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목숨이 땅에 끝나는 순간 까지만 회개가 일어나면 영혼이 산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그것은 늦은 것이다. 후회는 옛날에 일어 났지만 지금도 찜찜하게 남아 있어서 그 때 그 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면서 남아 있는 것이 후회, 즉 아쉬움이지요. 그러나 회개는 다릅니다. 회개는 참되게 만 일어나면 나의 뇌리 속에서 그리고 나의 의식 속에서 아픔과 수치가 사라집니다. 그 나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기억에 따라서 나오는 감정 상태가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후회는 기억과 함께 아프고 슬프고 수치스럽고 분노가 폭발하는 감정이 살아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회는 나쁜 것이고 회개는 좋은 것이지요.

므낫세의 그제서야/형광등
형광등 아십니까? 스위치를 켜면 한 참 후에 전기 불이 켜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회개도 이렇게 천천히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늦게 일어나나요? 막다른 골목길까지 가서야 어 길어 없네 라고 말하면서 돌아 나오지요. 인간의 미련 때문에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막다른 골목에서 돌아 나오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안 돌아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데요. 안 돌아 나오면 무슨 일을 하나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지요.

구약의 인물 가운데 므낫세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나이 12살에 등극하여서 55년 동안 유대와 예루살렘을 다스렸는데요. 부왕인 히스기야 왕은 선한 왕이었는데, 므낫세는 참 나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떠났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온갖 악한 일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왕의 55년간의 악행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국력이 급격하게 쇠약해지면서 멸망을 앞당기게 되었지요. 그가 왕위에 앉아서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에 당시의 패권국인 앗수르가 침입하여서 그를 사로잡고 결박하여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지요. 거기서 므낫세가 환난과 고초를 당하였습니다. 그런 시련의 기간 동안에 그가 그 동안 잊고 지내던 하나님을 만년에 만나게 되지요. 거기서 그가 회개하였고, 그가 회개하자 다시 유다와 예루살렘의 통치자로 회복되어서 왕위에 앉게 되지요.
대하33:12-13절/

그제서야/형광등! 적국인 앗수르에 연금 되어 고난을 당하던 그 기간에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요.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마음이 겸손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내서 보좌에 앉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때가 그가 나아가 들어서 만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왕처럼 하나님을 알고 섬겼더라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이 바뀌었을 텐데 말입니다. 므낫세가 만년이지만 회개함으로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지만,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결과는 옛날로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고멜의 그제서야/형광등
호2:6-7절/
예언자 호세아의 아내인 고멜이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호세아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누구를 더 사랑하고 따랐다고요?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더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이 예수를 우리의 남편으로 삼아서 사랑하기 보다는 무엇을 더 사랑했다고요? 세상을 더 사랑하고 따랐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세상 것들이 너무 좋아 보이기에, 돈과 권력과 세상 명예와 세상 좋은 것을 따라 다녔다는 말입니다. 열심히 그것을 얻으려고 수년 동안 힘쓰고 애썼지만 몸에 병 생기고, 돈도 못 벌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일어났고, 얻고자 했던 것도 못 얻었습니다. 그만 인생이 비참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나락에 떨어져 있게 되자 참이신 하나님을 섬기던 그 때의 형편을 떠 올립니다. 그래서 지금 추구하던 애인을 버리고 옛날의 남편에게 돌아 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언제 말입니까?
그제야!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말입니다.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에야 그런 결단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찬양 사역팀 앞으로!
아무리 늦어도 좋습니다. 이제라도 결단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 오기만 하면 살 수 있습니다.
따라 해 보겠습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고, 회개는 아무리 늦어도 늦은 것이 아니다. 생명이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만 돌이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회개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결코 예상 못했던 엄청난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써서 회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