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63

May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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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죄는 우리 영혼의 암세포:

우리 몸이 세포가 모여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암은 어디서든 발생하여서 자랍니다. 암, 즉 양성 종양, 즉 혹덩이는 살아 있는 세포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생겨 납니다. 요즈음은 다들 오래 살기 때문에 세포가 복제하는데 이상이 생겨서 암이 더 잘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식이요법으로 치료하시는 분도 있고, 수술로 암세포를 떼어 내시는 분들도 있고, 표적 치료니, 아니면 감마선 치료니 해서 암 말기도 치료가 되는 가 봅니다. 인류의 의술이 더욱 발전하면 암을 완전하게 정복하게 될 날이 오겠지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암을 정복하는 것도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이유이고 목적이겠지요. 사업가는 돈을 벌어서 학자와 의사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고, 정치가들은 법률과 제도를 만들어서 연구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학자와 의사들은 열심히 연구하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질병들을 정복하게 되는 날이 가까운 시간 안에 우리에게 오겠지요.

 

우리가 죄를 매일 매일 짓습니다. 매일 매일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매일 매일 짓는 죄를 그날 그날 풀어 버리면 되는데, 풀지 못하고 그것을 묵혀 두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오래 동안 해결 하지 못한 채 우리의 심령에 남아 있는 죄악의 덩어리가 우리 영혼의 암세포가 됩니다. 오늘 지은 죄가 해결 되지 않은 죄악이 내일이 되면 하나 더 깊은 내면 의식 세계로 들어가지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덩어리는 나의 깊은 내면 세계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게 되겠지요. 특히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아주 깊은 데 있어서 나의 내면 세계는 많이 파괴됩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게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 세계를 살피고 이런 내 영혼의 암 세포를 찾아서 제거해야 되겠지요.

이런 암세포를 어떻게 없애는가요? 가장 쉬운 방법은 수술 칼로 제거하면 되겠지요.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요. 수술용 칼이 말씀의 검입니다.

 

히4:12절/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칼의 양면에 날이 시퍼렇게 선 칼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 날카로운 칼은 내 속에 갈무리 되어 있는 혹 덩어리를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외과적인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방편이 무엇이라고요?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내가 믿음으로 영접하여서 받아 들이면 그 말씀은 살아 있어서 내 안에서 그런 구원 역사를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죄가 암세포가 되기 전에 미리 미리 처리하는 것이 지혜이겠지요. 매일 매일 자신이 짓는 죄를 살피고 그것을 처리하면 죄가 사라지게 됩니다. 죄가 사라지면 영혼의 암세포가 자라나지 못하지요.

매일 매일 우리가 짓는 죄를 처리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는 일입니다. 자백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이 지은 죄를 지었다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자백입니다. 자백과 함께 우리 주님께 지은 죄를 사하여 달라고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요일1:9절/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은 헬라어로 호모로게오 라는 단어를 쓰는데, 호모는 같은 이라는 의미이고 로게오는 말하다는 동사입니다. 호모 로게오는 같은 말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언행심사를 바라보면서 그것은 죄악이구나 판단하셨는데,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처럼 나도 판단을 내리고 내가 바로 그 죄악을 지었습니다 라고 말할 때에 자백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너는 남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말하는데, 내가 하나님이 그냥 거짓말을 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백이 아닙니다. 자백은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범죄하는 현장에 우리 하나님은 오셔서 다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증인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검사가 되어서 나를 기소하고, 또한 하나님은 재판관이 되어서 유죄평결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두운 가운데 계시면서 내가 행하는 모든 일을 보시고 아시고 계심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지은 후에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하여 어떻게 했나요? 선악과 나무 즉 그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날이 서늘한 오후에 우리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 오셨지요. 아담아 하고 부르면서 말입니다. 왜 오셨을까요? 아담이 지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왔지요. 그런데 아담이 자신의 지은 죄를 인정하고 자백했던가요? 아니지요. 오히려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와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지요.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했나요?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하와가 내게 그 선악과를 건네 주었기에 자신이 먹었다고 말하지요. 또한 하와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나요? 하나님이 만들어서 내게 주신 여자라고 말하면서 모든 책임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로 전가 해 버렸지요. 아담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만들어서 자신에게 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말입니다.

 

창3:12절/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하면서 하나님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던 때가 어제인데, 죄를 짓고 난 이제는 죄에 대한 책임을 피해야 하니까 딴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 안의 이 남자는 신앙인의 관점에서도 모자랐고, 신앙을 떠나서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도 모자라는 남자입니다. 적어도 남자라면 비록 자신의 아내 때문에 그런 무서운 결과를 낳았더라도 자기의 아내를 뒤로 숨기면서 하나님께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죄를 물어 주시고, 내 아내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라고 말해야 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전말을 잘 알고 계시는 데도 하나님께 자기 변명을 늘어 놓고 있습니다. 아담은 무엇에 있어서 실패했다고요? 자백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의를 행하고 정의를 행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서 받을 수 있으나 지은 죄에 대하여 자백하지 못하는 것은 죄용서를 영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의 죄악을 자백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행하는 모든 죄악의 전말을 다 보셨고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였기에 보는 자가 없겠거니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에는 우리의 죄악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낫낫이 모두 그대로 자백하는 것이 영적 지혜입니다.

당신이 오늘 하나님께 자백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만약 오늘 하루 종일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찜찜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죄악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이웃을 아프게 만든 허물입니다. 그것을 자백하면 그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의 찜찜함은 사라지게 됩니다. 내일까지 찜찜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백하지 마시고,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마음이 되고 싶으면 하나님께 자백하십시요.

 

당신이 짓는 죄는 우리의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할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눈을 찌릅니다.

히4:13절/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눈은 가장 약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의 짓는 죄악들 하나 하나가 우리 하나님의 눈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눈을 누군가에게 맞아 보셨습니까? 분노를 일으키고도 남습니다. 날마다 우리 주님은 지구상의 인생들이 짓는 죄 때문에 눈에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오늘도 내가 지었던 죄가 우리 하나님의 눈을 찔렀다는 사실을 안다면 빨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1.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실 까요? 보스톤 땅에서 살아 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인 우리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 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처럼 지성을 가지고 있는 실존이십니다.

 

마6:8절/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6:32절/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가 성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행한다면 무엇인들 하나님이 주시지 않겠는가? 우리가 아들이기에 아들이 필요가 있어서 달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금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함을 따라서 구합니다. 보스톤 땅에서 나의 삶에 이것이 없기 때문에 결핍의 삶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절실한 필요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하늘 아버지로 하여금 아버지 노릇하게 하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의 하나님 노릇 하게 하라! 이것이 기도하는 성도들이 기도하러 갈 때에 가져야 하는 모토입니다.

 

무엇을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길 원하시는가? 가장 좋은 것, 즉 the best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 가장 좋은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형편 없는 것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때에 the best를 주시지, second best를 주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영적으로 어린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는 우리 주님이 지금 허락하신 일이 가장 좋아 보이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아 그 때 그것이 최선이었구나 하면서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의 나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것을 주시기 위하여 들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기도하고 간구하여서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간구하기 전에 그것이 있어야 함을 우리 주님은 아시지만,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고 간구하여서 받게끔 만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들이 그런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 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생 다 가는 동안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무슨 생활이라고요? 기도 생활입니다. 적어도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일상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서 우리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게 바쁜 공적 생활을 하시면서도 늘 성부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셨지요. 하루에 세 번 식사 기도나 하다가 천국 올라 가서야 되겠습니까? 일생 다 가는 동안 기도 응답 받아 보지 못하고 천국 들어 가면 천국에서 땅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삶을 다 마치고 천국에 올라 갔더니 천사가 나를 인도해서 어떤 창고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창고 안에는 내 이름이 쓰여져 있는 박스가 있어서 그 박스를 열어 보았더니 작은 박스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박스들은 나를 위한 선물들이었습니다. 차례 차례 열어 보았더니 그것은 내가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예비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개봉이 안된 나를 위한 선물들을 본다면 얼마나 후회하시겠습니까?

우리들은 눈을 뜬 자들로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눈을 뜨고 기도하라! 육신의 눈을 뜨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영의 눈을 뜨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영의 눈을 뜨고 있어야 이런 나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무엇을 주시려는 지를 알 수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