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56

March 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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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15-17

 

롬8;15절/<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부르짖는다는 말은 크게 소리지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위기의 순간에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형식상으로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소리는 안 질러도 심령의 큰 부르짖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의 부르짖음의 기도는 목소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심령의 갈급함이 있어서 심령에서부터 부르짖음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구약의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기도할 때에 부르짖음의 기도를 많이 했고,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부르짖음의 기도를 듣고 응답했습니다.

 

 

구약의 예!:심령으로부터 부르짖는 기도!

한나의 기도!/삼상1:12-18절/ 한나가 오랜 동안 불임이었습니다. 한나가 실로 성소에서 기도했을 때에 응답을 받았고, 그 응답의 결과로 사무엘을 잉태하고 출산하게 되었지요. 그녀가 실로에서 어떤 기도를 했는지가 삼상1:12-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그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한나를 가리킵니다. 그 여자가로 번역되어야 하는데, 그가로 번역했습니다. 한나가 그녀의 대적인 첩실 때문에 무척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하나님 앞에서 오랜 동안 기도에 열중했습니다. 엘리는 누구입니까? 실로에 있는 나이 많은 대제사장입니다.

13절/<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한나가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Silent prayer!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입술은 움직이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제사장 엘리가 보면서 한나가 술 취해서 술 주정을 하는 줄로 생각을 했습니다.

14절/<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

엘리가 한나에게 술-포도주를 끊으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15절/<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그랬더니 한나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포도주나 독주을 마셔서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했을 뿐입니다. 한나가 말한 심정을 통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한나는 자신의 마음이 무척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통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쏟아 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통했다는 말은 자신의 영혼을 쏟아 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심령 속에 가득 차 있는 아픔과 눈물과 괴로움과 탄식을 모두 하나님 앞에 쏟아 냈다는 말입니다. 말로 부르짖지는 않았지만 속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지요. 우리도 이런 경험을 종종 하지요. 우리의 속마음으로는 극한 감정으로 부르짖지만, 입 밖으로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마음 속에 가득 담겨 있는 부정적 감정들, 이러한 쓰레기들을 우리 마음 밖으로 쏟아 낼 필요가 있습니다. 바가지에 물을 쏟듯이 말입니다. 바가지에 물을 쏟기는 잘 하면서 우리의 마음 바가지 속에 담겨 있는 구정물을 왜 쏟지 못합니까? 그것을 쏟으면 우리의 마음 바가지가 깨끗해지고 또한 가벼워 지는 데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시62:8)는 백성들아 시시로 그을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내 마음에 가득 담겨 있는 아픔과 눈물과 괴로움과 탄식과 두려움과 불안과 염려와 근심들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쏟아 내는 시간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기술, art of pray! 입니다. 기도의 달인들은 이런 심령 기도를 잘 하지요. 그런 심령 기도를 하고 나면 심령이 맑고 깨끗하게 되고 평안해집니다. 오늘 우리는 심령의 부르짖음을 통하여 이런 일을 하고자 이곳에 모였습니다.

 

16절/<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

한나가 정실 부인입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자식들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그의 대적인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신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한나에게 유세를 떨었습니다. 그의 남편인 엘가나가 한나의 딱한 사정 때문에 한나에 대하여 마음을 써 주면 브닌나가 한나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이번에는 이것 때문에 더욱 한나의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서원 기도하면서 부르짖었지요. 하나님이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한 평생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 속에 쌓여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17절/<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

하나님께서 한나가 요청한 것을 허락히시기를 엘리 제사장이 선포했습니다. 한나가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18절/<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

그대로 믿었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다시는 없었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었습니다.

 

부르짖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불을 한번 질러 볼까요?

 

어떤 분의 실험:숲 속에 있는 새 둥지를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새 둥지에 어미 새가 새끼를 까서 먹이를 날라다 주고 있습니다. 그 새 둥지에서 새끼 새를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미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 오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 둥지에 새끼를 제거한 다음에 새끼들의 울음 소리를 녹음해서 계속해서 들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미 새가 빈 둥지이지만 계속해서 먹이를 물어 오더랍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 우리의 부르짖음이 우리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르짖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가? 해답은 성령을 받으면 된다. 성도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분들이다. 성령으로 한 마디 부르짖는 일이 성령 없이 일만 마디로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기도 응답을 받아 낼 수 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5본문을 다시 읽어 보면;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종의 영은 무엇이고 양자의 영은 무엇입니까? 양자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종의 영pneu'ma douleiva"은 우리를 종이 되게 하는 영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구약 성도들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묶이게 됩니다. 율법을 범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이런 두려움을 그들의 마음에 일으키는 영이 무엇이라고요? 악령인데, 그것을 종의 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소한 두려움에서부터 죽음이라는 거대한 두려움까지 늘 그런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두려움의 뒤에는 어두움의 영, 즉 세상의 영, 즉 종의 영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종의 영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는 우리는 세상에 예속되게 되어 버립니다. 영적인 자유를 잃어 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을 그 두려움과 무서움, 불안에서 건져 내기 위하여 무엇을 보냈다고요? 양자의 영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양자의 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는 영입니다. 결론적으로 양자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양자의 영/ pneu'ma uiJoqesiva/ 휘오데시아스는 양자 삼기라는 명사입니다. 성령의 기능, 성령의 역할이 강조 되어 있는 성령정의입니다. 이 세상은 고아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여서 우리들을 선택하여서 양자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큰 사랑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자라는 관점에서 예수는 우리 하나님의 무엇일까요? 유일무이한 아들, 적장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아원 출신의 양자들입니다. 요3: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가 무엇이라고요? 그릭으로는 모노게네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모노라는 글자와 게네스라는 두 글자의 합성어입니다. 모노는 하나라는 의미이고 게네스는 종류라는 말이지요. 모노게네스는 이 세상에서는 다른 유가 없는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 속에 있는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와의 관계와 같은 그런 관계를 맺고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이 아들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우리들을 하나님의 양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양자 삼는 성령이 임한 결과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짖는다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짖는다. 성령이 임하셨기에 그 결과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때에 그 아빠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빠라는 말은 아람어인데, 이것을 사도 바울은 그릭으로 음차했습니다. 아빠라는 말과 아버지라는 말은 똑 같은 말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보통 쓰는 점잖은 말이고 아빠라는 말은 애칭입니다. 3살짜리 꼬맹이가 자기의 아버지에 대하여 애정과 신뢰를 가득 담고 부르는 말이 아빠라는 말입니다. 아들이 어릴 때에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다가 크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예수께서는 공적 생애를 보내는 동안 언제나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불렀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짐을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을 아빠로 불렀습니다. 막14:36절에는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하나님의 가장 장성한 아들인 예수께서도 성부 하나님을 아빠로 불렀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대하여 전적인 신뢰를 나타냈습니다.

우리도 성부 하나님을 그렇게 부를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이 무엇을 부어 주셨다고요?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과 심령에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라고 소리지르면서 하나님께로 달려 가지요.

 

부르짖음은?

우리의 경험:아이를 키워 보신 분들은 다 잘 압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자기 힘 가자고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요? 아빠 소리치면서 달려 갑니다. 이것이 부르짖음입니다. 우리도 우리 한나님께로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아이가 자기 아빠에게로 소리치면서 달려 가듯이 달려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절대타자/아버지/아빠! 음속 돌파!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달려 갑시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15절 한번 따라 해 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엔호 크라조멘 아빠 호 파텔!

 

16절/<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하는가?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아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느 누구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데, 나 혼자 그런 신념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를 아들 삼으신 하나님도 너는 내 아들 내 딸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 혼자 그런 신념 속에 산다면 그것은 망상이겠지요. 우리는 망상 해수욕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아이들이라는 확신은 누구로부터 왔는가? 성령으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 삼으실 때에 우리에게 양자의 영인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냈는데, 그 성령 증거를 우리의 영혼이 받았기에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지요.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이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임을 확신하십니까? 없다면 당신 안에 있는 성령을 통하여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양자 삼았다는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에 내 영혼이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광도 주와 함께, 고난도 주와 함께

 

17말씀/<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우리의 신분<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이 변화되자(입적되자), 축복이 임했습니다. 어떤 축복? 축복이란 상속권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에 대한 상속입니까? 천국에 대한 상속 권리입니다. 세상의 양자 제도에서도 Adoption이 일어나면 법적인 아들이 되기에 아들로서의 권리가 주어진다. 양 아버지가 가진 것을 상속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면 무엇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는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기업이라고 부르지요. 천국 기업!  왜? 천국은 우리들의 노력과 공로나 업적으로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공로로 천국은 획득 되었고 우리는 그와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인데 예수께서 이루신 업적으로 우리는 그와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다. 천국의 영광은 장래에 우리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에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는 고난을 분 깃으로 받았습니다.

요즈음 잘못된 신학이 난무합니다. 번영의 신학 말입니다. 이 번영의 신학은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십자가 지시고 죽는 고난을 받았기에 이제 우리는 고난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믿으면 잘 살게 되고, 예수 믿으면 몸의 병이 없어지고, 예수 믿으면 기울어져 가는 사업도 성공하게 되고, 무엇 하나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번영의 신학입니다. God bless America!도 이런 사상에서 나온 구호입니다. 이것을 번영의 신학, 즉 영광의 신학이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의 신학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장래의 영광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장래의 영광을 우리는 이 땅에 맛보기로 맛볼 뿐입니다. 천국 들어가서 우리는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고난 받으라고 명하십니다.

*영광도 함께, 고난도 함께:이것이 우리의 모토입니다!

딤후1:8절/<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복음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

골1:24절/<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당신은 어떤 고난을 지금 겪고 있는가?

*북한 지하 교회/7월22일자(2009) 크리스찬 투데이 신문에 의할 것 같으면 북한 기독 신자 초고속 증가라는 기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약 십 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삼삼오오 가족 구성원으로 밤시간에 집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만약 적발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끔찍하지요.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온갖 고생을 다 당합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세계에 산재해 있는 독재 정권과 정치 체제 속에서 눈물 흘리면서 신앙을 지키는 무리들-고난! 끝까지 견디면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남은자 사상(그루터기 사상)! 그들은 미래에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어서 잘 견디고 있습니다.

 

찬양팀 앞으로!

*미국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곳 보스톤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이런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립니까? 세상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파도처럼 몰려 온다. 우리는 이것과 싸웁니다. 보스톤 땅에서는 유혹이 있을 뿐, 시련과 핍박은 없다. 그런 유혹과 잘 싸우면, 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영광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