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57

March 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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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지요. 우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성서는 66권으로 되어 있지요. 왜 성서를 책을 셀 때 쓰는 단위인 권을 사용하나요? 구약성서의 오바댜와 신약 성경의 유다서와 요한 2서, 요한 3서는 단 한 장으로 되어 있는 데도 한 권으로 분류합니다. 성경책이 낱 권으로 66권으로 되어 있는 데 그것이 하나로 모여서 편집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은 39권이고, 신약성경은 27권이지요.  66권의 책들로 합 권이 되어 있는 성서는 약 35명 정도 되는 분들이 기록했지요. 성서 기자들은 참 다양합니다:왕,선지자, 제사장,학자, 농부, 어부, 세리, 의사도 있고 왕궁의 고관, 세관원도 있고요. 참 다양한 분들이 성서를 기록했습니다. 만약 오늘날도 다양한 분들이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편찬한다면 그 책은 과연 통일성과 일관성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성서는 놀라울 정도로 시종일관 통일성을 가진 책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둘러 싸고 글이 전개 되지요. 신구약 성경의 주제가 무엇이라고요? 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영원한 심판에서 건지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예수를 보냈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구약은 예수를 보내기 위한 준비였고요, 신약은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이루셨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눅24:44절/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 예언된 글입니다. 모세의 율법=토라, 선지자의 글=선지서, 시편-성문서 가운데 하나! TNK! 우리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에는 예수를 가리켜서 기록된 부분이 예언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 성경에는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이 되었지요. 신약성경에는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다라는 글이기에, 구약성경은 약속이고 신약성경은 성취입니다.

요한복음20:31절/<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이것은 비단 요한복음이라는 책의 저술 목적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약 성서가 기록된 목적이기도 하지요.

성경의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요, 여기에 살을 붙이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더 넓게 이야기 하면 예수의 인격과 삶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고 있는 분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더욱 풍성한 영적인 삶을 누리게 됩니다.

 

말씀 사역;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면 잊어 버리고, 보면 기억하고, 행하면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약속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고 행한 후에는 아 과연 그 말씀이 진리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들으면 잊어 버리기 때문에 늘 같은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새롭게 들립니다. 오늘도 예전과 같은 비슷한 소리를 하는데, 성령께서 그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새롭게 들려 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1.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다. 생명의 말씀!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서의 생명은 우리의 육신적인 생명, 목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 즉 영적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1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 생명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르지요.

 

엡2:1절/<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렸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에는 육신적인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살아 숨쉽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죽은 채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태어났기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죽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우리 하나님이 살려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살아 났습니다. 이런 생명을 거듭난 생명이라고 성경은 부르지요. 달리 예수 생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행5:20절/<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pavnta ta; rJhvmata th'" zwh'" tauvth" /레마, 입에서 발설된 말들)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생명의 말씀? 생명을 주는 말씀! 예수의 사도들의 입에서 전파되고 있는 말들을 듣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그 생명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먹으라는 표현을 성서에서는 많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는 말씀을 먹으라고 말했지요. 에스겔 2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 주면서, 에스겔아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하셨지요.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지요. 또한 요한 계시록에도 밧모 섬에 유배가 있는 사도 요한에게 한 천사가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먹어 버리라는 말을 합니다. 말씀을 들으라고 하기 보다는 말씀을 먹으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사실 앞에 차려 놓은 음식을 보기만 해서는 배 부르지 않습니다. 음식은 먹어야 맛을 알고, 음식은 먹어야 힘이 나게 되어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듣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받아 넣어야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우리의 육신의 귀에만 하나님의 말씀이 울리고 우리의 마음에 들어 오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기근.영양실조에 걸린 현대 교회 교인들이 많다. 말씀을 듣지 못해서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넘쳐 난다. 컴퓨터를 열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우리에게 몰려 온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무슨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먹어서 영적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폭풍우가 비를 뿌리면 산과 강과 시내에 물이 넘치게 됩니다. 홍수가 나지요. 아이로니칼 하게도 말입니다. 홍수가 나면 식수가 부족해서 갈증에 시달립니다. 온천지가 물인데도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온 천지에 말씀이 홍수처럼 넘치지만,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영으로 받지 않기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린 현대 교인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제 오늘에 일어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일입니다.

주전 8세기 아모스가 예언하던 북이스라엘의 성소인 벧엘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 암8:11-13절/<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몇 해전 뉴욕 노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 식사가 노회에 제공이 되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베걸과 빵과 과일들과 커피를 비롯한 음료수가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보통 아침은 베걸 한 조각에다가 커피 정도 마시지요. 그런데 어떤 장로님이 베걸과 빵과 과일과 커피를 비롯한 모든 음료수를 쟁반 위에 수북이 담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체격이 크고 아주 건장한 분이시지요. 나와는 각별한 사이라 내가 농담 삼아서 장로님 건물이 크시니 건물 유지하기 위하여 많이 드시는 모양이네요 라고 말하니까, 그 장로님이 목사님 그런 농담하지 마십시요. 자신이 몇 일전에 의사를 만나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영양실조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아침 상에서도 온갖 것을 모두 빠지지 않고 차려 먹는다고 말합디다. 영양실조라는 것을 어떤 영양소라도 한 가지가 빠지면 영양실조 걸린거라고 자신은 정의한다는 그런 농담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만나 같은 하나님의 말씀;

출16:3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매일마다 만나를 아침에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마다 그것을 거두어서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들의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만나처럼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1년치를 단 하루 만에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들이 먹을 만큼의 영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영의 양식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되고, 영 안 먹어도 문제가 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적당하게 매일 매일 먹어야 탈이 없습니다.

 

렘15:16절/<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이슬 같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과 관련된 또 다른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은 비와 이슬과 같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은 이슬이다.

신32:1-2절/<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내 입의 말, 내 교훈,내 말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비, 이슬,가는 비, 단비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들이지요. 비와 이슬이 초목에 내려서 초목에 생명을 주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의 영혼에 새 힘과 기운을 불어 넣어 준다는 말입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우리 영혼에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이슬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척박한 땅입니다. 하늘에 내리는 강우량은 아주 적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내리는 빗물은 농사에 풍족하지 않습니다. 이 부족한 강우량을 보충하는 것이 이슬입니다. 아침마다 풀잎이나 초목의 잎새에 맺히는 이슬이 식물을 살립니다.

식물의 잎새에 맺히는 이슬은 밤새 맺히지요. 아침이 되고 해가 뜨면 이슬은 곧 사라집니다. 이슬이 밤사이에 맺히듯이 우리의 삶이 밤과 같은 시련을 맞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시들은 영혼을 살립니다. 지금 밤 같은 시련을 맞고 있다고 생각 되는 분들은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이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십시요. 이슬은 1년치를 한꺼번에 맺히지 않고, 매일 매일 조금씩, 그날에 필요한 양만 맺힐 뿐입니다. 시련 가운데 있는 우리들이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게끔 오늘의 말씀을 이슬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캄캄한 밤 같은 시련 가운데 있는 분들은 이슬 같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요.

 

  1. 하나님 말씀은 삶을 지탱해 주는 말씀

전12:11절/<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지혜자들의 말씀,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씀, 그리고 회중의 스승들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은 모두 한 분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들은 무엇과 같다고요? 찌르는 채찍(막대기, 짐승들을 모는 뾰족한  막대기)과 같고, 잘 박힌 못과 같습니다.

내 인생이 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우리를 인도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공중에서 울리나요? 아니지요. 하나님의 음성은 내 마음에서 들립니다. 내 마음에 들어와서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해 갑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뾰족한 막대기가 되어서 우리를 찌르고 때립니다. 바른 길에서 벗어 났으니 바른 길로 들어 가라고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 있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 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역할을 한다고요? 잘 박힌 못과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못을 벽에 많이 박아 놓습니다. 왜 못을 박습니까? 중요한 물건들을 거기에 걸어 놓기 위하여 말입니다. 만약에 못이 벽에 든든하게 박혀 있지 않으면 물건을 거기에 걸어 놓으면 물건은 땅에 떨어지고 맙니다. 미국 아파트의 벽들에 못을 박을 때 보면 장도리가 필요 없습니다. 차력사들처럼 못을 엄지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해도 못은 벽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립니다. 이렇게 박힌 못에는 물건을 걸어 놓을 수 없습니다. 단단한 벽에 장도리를 사용해서 못을 박아 놓으면 그 위에 무거운 것을 걸어 놓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잘 박힌 못: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이 큰 감동을 주면서 들어와서 꽉 박히게 되면 그 말씀은 죽는 날까지 뽑히거나 잊히어 지지 않습니다. 내 영혼에 새겨져 있는 바로 그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말씀에 나의 삶 전부, 내 일생을 걸어 놓아도 문제가 없는 그런 말씀을 가지고 있느냐 말입니다.

당신은 내 삶의 모토, 즉 내 삶의 좌우명이 된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28:20절/<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하늘로 승천해 가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리빙스턴 구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오지를 누비면서 복음을 전했던 리빙스턴이 이 말씀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롬1:17-18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이 진리가 로마서의 주제이면서 신약 성경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신칭의, 이신득구 사상!

마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의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사상과 싸울 때에 이 말씀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불을 지핀 성경 말씀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시34:4절/<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 구절은 누구의 구절이라고 부릅니까?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의 구절이라고 불리어집니다. 왜요? 그가 미국의 7년간의 남북 전쟁을 할 때에 이 구절을 붙들고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손 때 묻은 구절입니다. 전쟁 중이니 얼마나 기도할 제목이 많았겠습니까? 또한 얼마나 두려운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 때마다 링컨은 기도로 자신 속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링컨이 전쟁에 승리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었기에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말입니다.

 

미6:8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정의, 인자,겸손!

이 구절은 지미카터의 구절이라고들 부릅니다. 카터 대통령, 재임 시에는 별로 이름이 없었는데, 퇴임 후에는 가장 빛나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입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구절이 바로 미가 예언자의 이 구절입니다. 거의 지금 100세 가까이 되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멋진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빌4:19절/<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이 구절은 조지 뮬러의 귀절이라고들 합니다.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고아의 아버지입니다. 고아원을 세워서 고아들을 한 평생 돌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영적인 거인입니다. 그는 한 평생 수 만 건의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 구절의 말씀을 그의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섬김의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넉넉하게 풍성하게 채우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맡기신 사역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찬양 팀 앞으로!

당신은 어떤 말씀 위에 당신의 삶을 걸어 놓고 있습니까? 마땅히 생각나는 말씀이 없습니까? 나의 좌우명이 되는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마디의 말씀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말씀들을, 수 만 가지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 하나님이 성경 말씀으로 주시지 않았던가요?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 넣고 기도할 때마다 그 약속을 붙들고 부르짖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