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65

May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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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부흥회 때 은혜 많이 받았지요. 1주일 정도 지났는데, 받았던 말씀들이 기억 저 너머로 가물가물 해 가고 있지요. 그래서 오늘은 네 번의 집회에서 받았던 말씀들을 리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수련회 때 받았던 말씀을 다시 기억에 떠 올려서 영구적인 기억으로 만드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첫 전째 집회는 복된 사람의 능력, 두 번째 집회는 친밀함의 능력, 세 번째 집회는 작은 자의 능력, 네 번째 집회는 바른 소원의 능력입니다.

첫날 집회:창40:1-8절 말씀이 본문입니다. 제목은 복된 사람의 능력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요셉이 감옥에서 옥살이 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요셉이 애굽이 총리가 될 때까지 그의 삶이 승승장구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인생의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17살 때 형들에 의하여 애굽의 노예로 팔렸고, 다른 하나는 모함을 받아서 깊은 감옥에 갇히는 시련과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일약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는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두 번의 시련을 겪고 있었을 때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그가 형통하였더라!
보디발 집에 종살이 하고 있었을 때에;창39:2절/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종살이 하는 수 년 동안에 그가 그의 주인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아서 올라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그 집의 가정총무 자리까지 올라 갔습니다.
감옥에서 옥살이 하고 있었을 때에;창39:23절/`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이 갇힌 감옥은 소매치기나 사기범이나 도둑놈 같은 잡범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고, 정치범 수용소입니다. 고위 공직자들을 가두는 곳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와 만나게 하기 위하여 그 옥에 요셉을 집어 넣었지요. 그 옥중에서도 좌절하여서 낙심하지 않고 성실하였습니다. 요셉은 옥중의 최고 실세인 간수장에게 인정을 받아서 옥중의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가지요.

요셉이 종살이와 감옥살이의 나락에서도 작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그가 형통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두 시련은 그가 애굽의 총리자리에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서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기 원하셨는데, 거기에 이르는 징검다리 돌들이 바로 애굽의 종살이와 감옥살이였다는 말입니다. 한 평생의 긴 인생살이의 물줄기 속에 소용돌이가 있어서 강물 줄기가 꺼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소용돌이가 도도한 물줄기를 바꿀 수 업지요. 결국은 마침내 그 강물은 바다에 도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옥에서 옥살이 하는 요셉! 요셉이 자기 코가 석자인데, 감옥에 갇혀 있는 이웃을 돌보고 섬기고 있습니다. 남의 일에 간섭을 잘 하는 분을 오지랖도 참 넓다고 말하지요. 요셉이 감옥 안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얼굴을 보자 그들의 얼굴에 있는 근심 어린 빛이 있음을 알게 되지요. 요셉도 자신의 처지가 딱하지만, 남의 근심을 헤아렸습니다. 그들에게 그 근심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자신들이 꾼 꿈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요셉은 그들 각자에게 그 꿈들을 해석해 주었고, 요셉의 해석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빵 굽는 관원장은 사형 당하였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지요. 나중에 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하여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지요.

비록 우리의 삶에도 시련이 있고, 염려 근심이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 보다 더 큰 어려움 속에 놓여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배려하고 섬기도록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도와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에 데려다 놓은 그 한 사람을 힘써서 도와 주면 됩니다. 내 코가 석자인데 하면서 내 앞에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하나님이 내 앞에 놓아 두었다면 그 사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처처불상,사사불공;어떤 성공한 기업가의 삶의 철학이 나타나 있는 말입니다. 이 분은 불교 신자입니다. 처처불상이라는 구문은 곳곳마다 부처님이라는 말인데, 사람들을 섬기는데 자신이 부처님을 대하듯이 대하겠다는 말입니다. 사사불공이라는 구문은 자신이 사업을 할 때에 모든 일들을 불공드리듯이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기업가가 성공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비록 우리에게는 이교도인 불자이지만, 우리들도 불신자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대하듯이 섬기라는 말이고,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하라고요? 예배 드리듯이 하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섬기는 불자들도 이런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의식이 이런 분들보다 낮아서야 안되겠지요.

두 번째 집회 때:친밀함의 능력! 눅10:38-42절이 본문이었습니다. 시25:12-15절도 읽었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 즉 사역이 중요한가 아니면 관계가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라고 주신 일을 한 평생 열심히 일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부르지요. 그것 보다는 그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맺어 가는 것을 친밀함, 즉 사귐, 혹은 교제라고 부르지요. 어디에 더욱 역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칼라가 달라지게 됩니다. 마르다 같은 성도는 열심히 일하는 것을 즐기는 성도이고, 마리아 같은 성도는 일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 사귐, 친밀함을 나누는 것을 즐거워하지요. 당신은 어느 것을 할 때가 더욱 기쁘던가요?
킴벨 몰간이라는 영국 목사님의 예화가 소개 되었지요. 그 목사님은 매일 교회의 일과를 마치면 그의 딸과 함께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딸이 아빠인 몰간 목사님께 앞으로 몇 일간은 산책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지요. 그의 딸이 몇 일 후에 있을 아빠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아빠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생일날 서프라이즈 기프트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생일날 그의 아빠에게 생일 선물을 서프라이즈로 주었지만, 그의 아빠가 이런 말을 했다지요:나는 이 생일 선물보다는 너와의 산책이 훨씬 더 즐겁다고 말입니다.
이 예화가 무엇을 말하지요? 사역보다는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보다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3:13-15절/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신 목적이 열 두 명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하려고, 둘째는 전도하게 하려고, 세 번째는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가지게 하려고 입니다. 전도와 귀신 쫓아 내는 것은 일입니다. 주 예수께서 자신이 하는 그 일을 12명의 제자들을 조수로 사용하기 위하여 선택했습니다. 그 일이 첫 번째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 첫 번째 목적입니까? 예수와 함께 있게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 12명을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하신 첫 번째 목적이 그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싶어서 있습니다.
누가복음 10: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요지가 무엇이지요?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은 사역을 의미하지요.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은 관계를 의미하지요.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 졌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라는 말이지요.
예수께서 70인 전도단을 만들어서 두 명씩 짝을 지어서 동네로 보냈습니다. 이들이 동네에서 사역을 해 보니 병자들이 나을 뿐만 아니라 또 무슨 일도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에게 포제스 되어 있는 귀신들도 추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70인 전도단이 기뻐 돌아와서 우리 주님께 선교 보고를 했지요. 병고침만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귀신들도 항복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보고를 듣고 우리 주님이 사역으로 인한 기쁨보다는 무슨 기쁨이 더욱 크다고요?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주의 이름으로 일하여서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이것보다 더욱 큰 기쁨은 천국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사역보다 더욱 귀하다는 말이지요.

시25:14-15절/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 지면 질수록 우리의 삶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 내가 나의 모든 방법을 다 써서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나를 지키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믿음을 사용해서 힘써 사역함으로 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시 25:15절에는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 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열심히 그물에서 벗어 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 일은 내 눈이 우리 주님을 주목하고 항상 바라 볼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윗의 경우: 사울에 쫓겨 다니던 시절에 그가 사울 왕에게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23:14절/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어떻게 이런 구원이 일어났는가? 다윗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집회:작은 자의 큰 능력. 본문이 왕하5:1-7절이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나병 치유 기사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사를 만남으로써 그의 나병이 치유되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인가? 나아만 장군의 집에 있는 한 소녀였습니다. 이 소녀는 옛날에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에 쳐 들어 갔을 때에 전쟁 포로로 잡아 온 소녀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를 찾아 갈 때에 가지고 간 선물이 은 십 달란트, 금 육천개, 의복 열 벌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엄청난 선물입니다. 동시에 아람 국왕의 친서까지 가지고 가게 됩니다.

어떻게 나아만 장군이 자기 집의 어린 계집종의 말을 그렇게 신뢰할 수가 있었을까요? 미스터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 계집종이 비록 미미했지만, 나아만의 집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적어도 나마안 장군이나 그의 부인이 이 여아를 신뢰하지 못했다면 그 여자 계집종의 말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나아만 장군이 이 계집종을 평가할 때에 믿음직했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이 계집 종이 적국의 포로로 나아만 장군 집에 종살이 하고 있지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이 계집 종의 모습이 현대 사회 속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 안에서 비록 작은 자들이지만, 우리들이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성냥불 하나가 온 사람을 불태우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이 사회 내에서 작은 자들이지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 안에서 있으나 마나 한 사람들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인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있으나 마나 한 인물은 양복 소매의 단추와 같은 인물이고, 맹장과 같은 인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작은 자들이지만, 이 사회의 지도자를 움직이는 방법이 무엇이라고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입니다.
딤후2:2절/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미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우리들의 위치는 작은 자들이나 우리들이 미국 정책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네 번째 집회 때에는 바른 소원의 능력이었습니다. 본문이 마가복음 1:40-42절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나아만 장군처럼 어떤 나병환자 이야기입니다. 이 나병환자가 우리 주님 예수께 나아와서 고침을 받게 되지요. 그 나병 환자는 우리 주님께 나아와서 우리 주님이 원하시면 자기를 고쳐 달라고 간청하지요. 그랬더니 우리 주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면서 즉시 나병에서 그는 치유가 되어서 그러던 가족에게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간구해야 하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 놓으라는 것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내신 시험 문제에 우리가 답을 쓰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채점은 누가 하지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어떤 귀부인이 일류 목수를 채용해서 돈을 주면서 집을 귀부인이 원하는 대로 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수가 자기의 원하는 대로 집을 지었다면 어떻게 되나요? 말이 안되지요. 우리 인생도 이 목수처럼 우리 마음대로 우리 인생을 설교하면서 우리의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가지요.
찬양 팀 앞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강사문 교수의 말? 자네 뜻에서 멀면 멀수록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의미 있는 가르침을 받았었다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 뜻을 내려 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우리 주님은 내일을 챙겨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행동하기 전에 서라.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확신이 생기면 행동으로 옮기길 바랍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실족하면 상처가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