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88

November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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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88
일시:11/22/2019

우리들의 정체성? 우리의 Id! 그리스도인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일컫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1세기 수리아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면서 그것이 우리의 이름이며 우리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이름이 자랑스러운 이름은 아니고 경멸적인 이름이었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대단히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ST(양도둑)이 ST(성자)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또 다른 우리들의 정체를 나타내는 정의를 성경으로부터 본다면;
눅23:49절/
어떤 상황이지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운명하실 때의 상황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7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가 마지막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께서 십자가로 처형 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사형 집행관인 백부장도 있었고,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있었고, 또한 예수를 아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본 구절에 나오는 예수를 아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릭으로는 ‘호이 그노스토이 아우토’라는 구문인데, 번역이 조금 이상하게 되었네요. 예수를 아는 자들이라기 보다는 그에게 알려진 자들 즉 예수께 알려진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누구일까요? 우리들도 지금 저 하늘 보좌에 앉아서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주 예수께 알려진 자들입니다. 즉 우리들은 주 예수께서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으로 남과 구별되는 나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온 우주의 왕, 왕의 왕이 나를 알고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내가 예수를 아는 것과 예수께서 나를 아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나는 예수를 잘 안다고 말하는데, 예수께서 나를 보시면서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한다면… 이런 경우에는 참 난감하지요. 내가 주님 사랑한다고 하면서 온 정성을 다해서 섬겼지만, 주님이 나를 모른다고 한다면 억장이 무너지지요.
마7:22-23절에 의할 것 같으면;
이렇게 능력과 은사를 받아서 귀신을 쫓아 내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수 많은 권능과 이적을 베풀었지만, 우리 주님이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또 뭐라고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하면서 나를 떠나라는 저주의 말을 하십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는 이 만큼 열심히 하면 주님이 나를 기억해 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누구를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님이 알아 주시나요? 마7:21절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계시지요. 우리 주님이 아시는 자들은 이 땅 위에서 바로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누가 알아 주던 안 알아 주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진리의 말씀을 따라 묵묵히 순종하면서 따르는 사람들을 우리 주님이 하늘에서 보시면서 내가 안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id가 무엇이라고요? 우리는 우리 주님에게 알려진 자들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우리들의 id를 알고 있어서 우리들을 섬겨 주고 있고요. 지옥의 권세들인 어둠의 영들도 우리가 우리 주님에게 알려진 자들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보스톤 땅 이 구석에 살고 있어도 말입니다. 우리 이 땅에 사는 동안 좀더 당당하게 행합시다.

* 골3:1-2절/
딤전 6:10/

한 세상 살고 난 후에 모두 다음 세계로 들어 갑니다. 다음 세계로 가는 것은 이민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 세계로 이민을 떠날 때에 놓고 갈 것이 있고 가지고 갈 것이 있습니다. 놓고 갈 것들은 돈, 명예, 권세, 남편도 아내도 아들도 딸과 같은 세상 것들은 모두 뒤에 두고 떠납니다. 또 무엇을 놓아 두고 가나요?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했던 것은 내 몸둥아리입니다. 그것도 놓아 두고 내 영혼만 하늘 세계로 올라 갑니다.
그러면 가지고 갈 것들은? 주 예수를 아는 지식(예수 체험)은 영원 세계까지 가져 가는 값진 것이다. 또한 변하는 것, 유한 한 것인 돈(물질)은 모두 땅에 두고 간다. 그러나 이것을 죽음 저 너머의 세계에 가지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고 주를 위하여 쓸 때이다. 이것은 일종의 장기 투자인 셈이다. 지난 주에 잠언 말씀 잠19:17절/ 돈을 투자 했다가 사업에 실패하여서 자본마져도 회수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웃을 구제하는 투자는 돈 떼어 먹힐 일이 전혀 없습니다. 구제 하는데 많이 투자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진 유한 것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얻는데 투자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라. 영생을 추구하고 천국을 추구하고 하늘의 것,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을 추구하라.
가장 영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놓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을 구별하지 못한 채로 사는 사람이고, 변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변하지 않는 가치 있는 것을 희생하고 버리는 사람이다.

딤전 6:10/
돈은 악하지 않다. 돈은 중립적인 것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간 삶에 큰 유익을 끼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업인 영혼 구원 사업에도 멋지게 쓰인다. 악인들에게 돈이 놓이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권세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는 데 사용한다. 그러므로 열심히 돈을 버는데, 돈 버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난 다음에 돈 벌이에 힘써야 합니다. 돈 벌이가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야 하지 돈벌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돈을 벌기 전에 돈을 버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께 돈 달라고 요구하고 응답을 받고서 돈 버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돈을 벌고 난 다음에 시간이 없어서 돈 못 쓰는 불행한 사람도 있고, 또한 돈은 벌었지만, 같이 밥 먹어 줄 사람이 없어서 불행한 사람도 있고, 돈 벌었지만 몸을 망가뜨려셔 밥 한 공기도 못 먹는 그런 불행한 부자도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딤전 6:10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했다. 돈을 안 좋아하는 사람 있는가? 없다. 다 좋아한다. 이 구절의 말씀은 돈을 하나님보다 위에 놓고 사랑하는 탐욕을 금하라는 말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으라는 것이지 돈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다.
부자 청년? 한 가지 부족한 것?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을 떠났다. 영생을 놓쳤다. 무엇 때문에 세상 것에 대한 사랑을 주님에 대한 사랑보다 높은 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놓아 버린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가 한 세상 사는 동안은 그런 대로 살 수 있었지만 영원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그 순간부터 영원히 후회가 가득한 삶을 지옥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No God. No happiness// know God, know happiness!
*God is nowhere-무신론자들의 변/ God is now here-유신론자들의 변! 쌍곡선

자족이 무엇일까?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평 없이살 수 있고, 부하면 부요함이라는 격에 맞추어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자족이다. 졸부는 자신의 부를 따라서 행복하게 못 산다. 탐욕 때문에 돈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탐욕에 잡혀서 산다.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부유한 거지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즈음은 성공신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 있다. 돈과 권력을 얻으면 성공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삶이 우리의 삶의 전부라면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육신적인 삶이 끝나고 나면 그 이후에 영원이라는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돈과 권력만을 쫓는 괴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육신에 살고 있지만 영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원이 있다는 것이 믿어 지면 자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물질과 세상 권력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성공은 행복의 한 수단일 뿐이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 신화를 이루자. 그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을 보시면서 원하셨고 정하시고 바라시는 그런 모습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너 다운 너’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지 누구 닮은 너를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연예계의 인기스타의 얼굴로 성형하는 사람들;얼굴이 누구 닮은 사람!!/정신적인 멘토를 닮아 가는 것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유익한 것은 주 예수를 닮는 것이다. 주 예수를 닮는 것은 주 예수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닮아 가는 것이다. 흉내 내면서 자신이 닮아 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예수 닮은 것이 영적인 성공신화다. 당신은 성공 신화를 이루어 가고 있는가?

*무욕의 삶은 불교의 삶이고 의욕의 삶은 기독교의 삶이다. 자족과 탐욕은 반대다. 가난하더라도 자족이 있으면 부자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 진다. 부자가 자족을 갖는다면 탐욕이 없어지고 그로 인하여 삶이 스포일 되지 않는다.
자족을 누리기 위한 방안으로는 10개를 소유하고 있다면 다 쓰지 말고 9개만 쓰고 1개는 남겨 두라. 남겨둔 한 개를 가지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면 자족이 생긴다. 불행하게도 10개를 다 쓰게 되면 더 가지고 싶어진다. 탐욕이 발동한다는 말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가득 위장을 채우지 말고, 언제나 위장에 음식을 집어 넣더라도 빈 공간을 남겨 두면 오래 산다. 두루미나 학처럼 말입니다. 속 깊은 사람이 되지 말라! 속 깊은 사람은 밥 많이 먹는 사람!!
찬양 팀 앞으로!
*무소유냐 청빈이냐? 무소유는 기독정신이 아니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 같은 불가의 고승들이 추구하는 것이고 또한 일반 기독교의 수도승이 추구하는 가치다. 우리는 수도승도 아니고 불제자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정착 제자군에 속해 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앙적인 삶은 청지기 사상이 요구된다. 청지기 사상은 많이 벌어서 많이 저축하여서 이웃을 위하여 그것을 쓰는 것이 청지기 사상이다. 내가 많이 벌어서 저축한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우리 주님 것이다라는 사상을 말합니다. 내가 벌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고 살지만, 그것의 실 소유자인 우리 주님이 그것을 달라고 하면 드리면 되는 것이 청지기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