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87

November 15, 2019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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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어저께, 갑자가 날이 많이 추어졌습니다. 모두들 감기 안 걸리시고 건강하신가요? 저도 수요일부터 목이 아프고 기침 나고 콧물 나고 이틀 동안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조금 날이 풀렸습니다. 모두 건강들 잘 챙기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일날 교회에 오실 때에 무엇을 가지고 오라고 했지요? 과일 하나씩 가져 오라고 했습니다. 가정당 하나가 아니라 개인당 하나씩 가져 오기를 바랍니다. 오곡백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만 아니라 내 삶에도 이런 풍성한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추수감사절
1. 조크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설교 초대를 받아 가는 도중에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옆에 앉더랍니다. 이 여자가 아이들을 앞세워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 제목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인데 이런 경우에는 뭐라고 감사해야 하나 고민했답니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옆의 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2. 감사 할머니
지도책;필리핀의 마리아나 해구;10km정도!
미7:19절/

3. 잠19:17절/
가난한 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는 여호와께 돈을 빌려 주는 자이니 하나님이 그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가난한 내 이웃에게 물품을 건네 주는 구제사역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지난 번에는 구제가 우리의 동정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구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기에 한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불행을 당하고 있는 가난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차원에서 구제를 행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잠19:17절은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일은 하나님에게 돈을 꾸어 주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 돈은 떼어 먹힐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에 직업을 잃게 된 조는 죽기보다 싫은 구걸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어느 고급식당 앞에 서서 한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미안하오. 잔돈이 없소"하며 남자가 퉁명스럽게 거절하자, 함께 가던 부인이 "이렇게 떨고 있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죠? 여기 1달러가 있어요. 음식을 사 잡수시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직업을 찾도록 기도하겠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인은 나에게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그가 말하자 부인은 "당신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는 거예요. 이 떡을 다른 이에게도 줄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라고 다정히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1달러를 받은 조가 50전을 남기고 50전으로 요기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한 노인이 자기를 한없이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머지 50전을 꺼내어 그 노인에게 빵을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조금 떼어 먹던 빵을 종이에 싸고 있었습니다. "내일 먹으려고 싸갑니까?"라고 묻자 "아니오. 저 길가에 꼬마 신문팔이가 있어요. 그 놈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오." 두 사람은 빵 조각을 가지고 그 아이에게 갔습니다. 아이가 허겁지겁 빵을 먹는데 왠 길 잃은 개 한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그 아이는 나머지 빵 조각을 개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년은 기쁨으로 신문을 팔러 뛰어가고 노인도 일감을 찾으러 뛰어갔습니다. `나도 이렇게 있을 수 없지'하며 조는 길 잃은 개의 목에서 주소를 찾아 그 주인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주인은 너무 고마 와 10달러를 주면서 "당신 같은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십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신앙과 은총의 선물만을 가지고도 이웃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부자임을
잊지 말고 불우한 이웃을 돕고 기도하기에 힘씁시다. 십시일반! 빌어 먹을 힘만 있으면 이웃을 구제할 수 있다라는 옛말이 있지요. 부자는 구제를 못해도 가난한 자는 구제할 수 있다는 옛말도 있지요.

따라 해 봅시다.
잠언 19:17절 말씀! 우리들이 얻은 풍성한 은혜를 약간 떼어서 우리의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4. 눅17:11-19절/
12절/한 촌=나병환자 촌인데 마을 밖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환자들은 부정한 병이라 마을 밖으로 추방되어서 삽니다. 생필품은 마을에서 그들에게 제공이 됩니다. 이 나환자들은 머리를 풀고 윗 입술을 가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면 저 멀리서부터 소리 높여서 부정하다 부정하다라는 말을 하면서 지나 갑니다. 왜요? 접촉을 피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나환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요? 몸이 썩어 문드러져서 떨어져 나가는 고통일까요? 나병은 그리 큰 육신적인 고통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가족들과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고독과 외로움이 가장 큰 고통이지요. 죽음을 코 앞에 두고서 살아 가는 분들이 바로 나환자들입니다. 원래 사마리아인과 유대인들이 어울려서 함께 살아 갈 수가 없는데, 이 나환자들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죽음 앞에 서 있으면 그런 미움과 증오와 같은 해묵은 감정은 의미가 없지요.
이 10명의 나환자들의 믿음이 참 대단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 한 마디를 믿고서 제사장에게 가다가 10명 모두가 집단적으로 치유가 되었지요. 굉장한 믿음입니다. 우리들 같으면 증거를 보여 주셔야 제사장에게로 가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제사장에게 갔는데 낫지 않았다면 그런 낭패가 없습니다. 제사장에게 가다가 마을 사람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돌팔매질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눈에 아무 증거가 안 보였지만 믿음으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모험하였을 때에 이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믿음의 순종에는 기적이 따릅니다. 모험을 해야 기적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0중에 9명은 유대인이었습니다. 나병에서 낫자 그들은 예수께로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에게 곧 바로 가서 제사장의 검진을 받고, 소정의 절차를 거쳐서 곧바로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1명이 이방인, 사마리아인 만은 자신의 병이 기적적으로 낫자 제사장에게 가던 길에서 돌이켜서 곧 바로 우리 주님에게로 먼저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 감사 찬송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나머지 9명의 유대인들에게 이런 탄식의 말을 하였습니다:너희 10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우리 주님의 말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 속에는 우리 주님의 실망이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이 주는 것을 믿음이 있어서 받을 줄은 아는데, 그것을 주신 분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없기에 우리 주님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우리 주님 예수의 질문은 에덴 동사에게 첫 사람인 아담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이 했던 물음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는 물음과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물음은 단순하게 그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대한 물음일 뿐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으로 인식이 됩니다. 아담은 무엇이라고 대답했나요? 내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서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지요.
사실 이 질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상태인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이 기도회의 현장에 오셔서 우리에게 너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믿음이 크기 때문에 기적을 얻어 낼 수 있어서 나는 기쁘고 만족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은 무엇으로 기뻐하나요? 내게 그런 기적을 주신 주님께 감사 찬송드릴 때에 우리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들에게 있는 이 모든 것, 만가지 은혜로 인하여 우리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인명구조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를 하러 찾아온 친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명구조원을 하면서 이때까지 자네가 목숨을 구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지?"
"단 두 명 뿐이라네."
친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삼 십 년을 넘게 일한 자네가 단 두 명 밖에 못 구했다구? 농담하지 말게나."
인명구조원은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물론 구해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지. 하지만 그 후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날 찾아온 사람은 단 두 사람 뿐이었네. 난 그 두 사람만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누가복음 17:17)

살전5:16-17절/
라는 책을 펴낸 어떤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책에서 ‘3가지의 감사’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째, ‘만약(if)’ 감사, 둘째, ‘때문에(because)’ 감사, 셋째,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 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의 ‘만약(if)’ 감사란, 다른 말로 조건부 감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1차원적인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바라는 그 무엇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을 안 주면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하는 감사입니다.
두 번째의 ‘때문에(because)’ 감사란, 뭔가 소망하는 일이 이뤄졌을 때 그 결과에 대해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건강을 주셔서 감사하고, 가족 주셔도 감사하고, 필요한 양식 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직장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은혜들을 헤아려 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란, 절대적인 감사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를 바치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상황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큰 사고를 당하거나 잘 되던 사업이 한 순간에 부도가 나서 알거지가 되는 경우에도 감사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불구하고도’의 감사입니다.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사람이 “나머지 한 쪽 다리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그저께는 감기 때문에 자리에 누웠는데, 콧물 때문에 한 쪽 콧구멍이 막혀서 숨쉬기가 여간 불편하기 않았습니다.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감사하데요. 콧 구멍 양쪽이 막히면 어쩔뻔했는가? 그래도 코구멍 하나는 열어 주셔서 숨쉬게 해 주시니 감사하데요. 베네드릴 한 알 먹고 누우니 곧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불구하고도 감사하면서 살았던 신앙의 인물을 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보아 왔습니다. 특별한 인물-하박국 예언자!
합3:17-18절
감사 지수를 높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선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thank you’를 안 하면 아이를 붙잡고 반드시 가르칩니다. 어려서부터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5:20절/ ‘범사’라는 말과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감사라는 말에 ‘범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부담이 됩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라는 말 앞에 ‘항상’이라는 단어 붙으면 기가 팍 죽습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좋은데 어떻게 모든 일에,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이것이 솔직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어떻게 범사에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에 그 답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름으로’라는 말은 ‘때문에’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은 다 안 좋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만 있다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빼앗길 수 있지만 내 안에 계시는 예수만은 어떤 상황에도 빼앗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찬양팀 앞으로!

많이 가졌다고 감사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불평이 더 나오지요. 감사는 오히려 없는 사람의 입에서 많이 나옵니다. 건강한 사람 중에 감사하는 사람 별로 많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더 감사합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 입에서 감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진짜 감사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12월이 다 가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의 이웃들에게 감사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찾고 감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