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99

February 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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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99
일시:2/7/2020

1.덜떨어진 청년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다 말고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사님의 의도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예. 우선 죽어야 합니다."
약간 모자라는 청년의 대답이었습니다. 이런 청년을 덜떨어진 청년이라고 부르지요. 비행기가 공중에서 땅에 추락해도 죽지 않을 청년이지요.
비행기 추락에도 끄떡 없이 살아 남은 일가족 이야기:제비족, 날라리,덜떨어진 아들,비행청소년!

천국 가리라는 확신?
카톨릭교회 신부가 죽어 가는 환자의 종부성사(임종예배)를 집례하고 있었습니다.
신부가 환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 악마를 저주하고 그대가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그러나 환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해진 신부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악마와 그 죄스러움을 저주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환자가 대답하기를
"제가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에게든지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세상 끝에는 두 종류의 세상이 존재한다:천국과 지옥!
시1:5, 죄인들의 모임과 의인들의 모임! 서로 섞일 수 없다./눅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도 두 세계가 있는데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가 있는데, 이 두 실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내왕할 수 없다. 지옥의 상황은 불로서 뜨거움을 당하고 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 마13:43절/죄인들과 악인들은 마8:12, 마13:42, 13:50, 22:13,24:51, 25:30, 눅13:28의 공통적인 표현(풀무)불 속에서 또는 어두움 속에서! 절망에서 나오는 분노가 육체적인 반응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천국에로 부름은 받았지만, 천국에 결국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의 때 늦은 후회를 가리키는 관용구! 지옥의 캄캄한 어두움과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흘러 나오는 두 종류의 소리:껄과 으드득 소리!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그것은 늦었다. 그것을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회는 후문으로 들어왔다가 정문으로 나간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천국 문에 들어갈 때에 잘 못 산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야겠다. 영원세계로 들어갈 때에 예수 안 믿은 것을 지옥에서 후회해 보았자 소용없다. 여러 번 예수 영접할 기회가 있었지만(초대장을 받아 들었지만), 거부해 버렸다. 그것을 영원의 세월 동안 지옥에서 후회하게 될 인생들이 많다. 인생은 윤회가 아니기 때문에 단 한번의 직선적인 삶이기에 결코 돌이킬 수가 없다. 지옥은 차차 믿지요 하던 사람이 아차차 하는 곳입니다.

오솔길을 따라서 두 사람이 앞을 향하여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개 한 마리가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누가 개 주인일까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개가 어떤 때는 이 사람 편에 붙었다가 또 어떤 때는 저 사람 편에 붙어서 따라 갑니다. 원래 집 안에 있던 개를 풀어 놓으면 주인을 따라 가면서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주인을 따르지요. 왼쪽에서 킁킁 거리다가 오줌을 조금 싸고, 그 다음에는 오른쪽에서 킁킁 냄새 맡고 오줌을 조금 싸고 그리고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런 행동을 반복합니다. 오줌을 그렇게 왼쪽 오른쪽에 자주 싸는 것은 영역 표시 때문에 하는 행동이지요. 이렇게 두 주인을 따라 가는 개의 주인이 드러나는 때는 언제입니까? 갈림길에 왔을 때입니다. 갈림길에서 두 사람이 갈라 지면서 길을 간다면 개는 주인을 따라 가게 마련입니다. 우리들 예수 믿는 이들이 죽음이라는 갈림길 이후에는 우리의 주인 이신 우리 주님을 따라 천국에 들어 갈 수 밖에 없지요.마귀의 아들들은 그들의 아비 마귀를 따라서 지옥에 들어 갈 수 밖에 없지요.

십자가의 메시지
저의 미국 올 때의 경험입니다. 1989년도 미국 올 때에 North West라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가 이륙(take off)하기 직전에 여자 승무원이 나와서 안전수칙에 대한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범과 함께 영어로 안전 수칙이 어나운스되고 있었습니다.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터라 뭐든지 신기해서 스튜디어스를 통하여 들리는 말도 열심히 듣고자 했습니다. 어나운스 되고 있는 것은 비행기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따라야 할 수칙들입니다. 시범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 이해가 되는데 영어로 된 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주의를 집중해도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나운스되고 있는 안전 수칙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내용을 모두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 안전 수칙에는 만약 비행기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자기의 생명을 구원하게 될 메세지가 담겨 있는 데도 모두다 딴 짓을 하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즘 한국을 오가면서 비행기를 타실 때 스튜디어스가 보이는 시범과 안전수칙 어나운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시는 분 있나요? 그런 분이 있다면 아마도 촌뜨기 같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때에는 어나운스 되는 안전 수칙이 필요하지 않지만 emergency에 처하게 되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 되지요.
성도 여러분, 십자가가 그렇지 않던가요? 교회 지붕 높은 꼭대기에 달려 있는 십자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들의 믿음의 요약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십자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강이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잘 되어 나가고 있기에 교회로 부터 흘러 나오는 십자가의 도(the message of the cross)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마치 비행기 안에서 낭독되고 있는 안전 수칙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시련을 맞게 된다면, 예를 들면 중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면, 그 때에는 허둥지둥 거리면서 십자가를 붙들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 인생의 시련기를 지나갈 때에 십자가는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밤에 네온으로 되어 있는 십자가가 밝게 빛나듯이 말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안전 수칙을 숙지해 놓고 있으면 위험한 상황을 잘 대처해낼 수가 있겠지요. 십자가의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금 지나고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십자가 의미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굳게 붙드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지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죄 가운데 있기에 죽음과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고난과 역경 때문에 망한 민족은 없습니다. 번영과 풍요 속에서 망한 민족은 많습니다. 바벨론 제국, 앗수르 제국, 이스라엘, 유다, 파사 제국,헬라제국, 로마 제국,모두 그렇습니다. 토마스 칼라인(1795-1881)은’역경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백명이라면 번영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10:12절

그렇기에 가난하고 병들고 낮은 처지에 있을 때에 성도라면 번영과 성공을 꿈꾸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난하고 병들어 있고 낮은 위치에 있을 때에 성공을 위한 꿈을 꾸면서 기도하는 것은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낮은 위치에 있지만 성공한 후에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내다 보고 기도하는 자는 적습니다. 병들어 있는데,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을 받을 것인가를 꿈꾸면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자는 적다는 말입니다. 가난하기에 돈달라고 기도하는 성도는 많으나 부자가 된 후에 그 돈으로 어떻게 주를 위해 사용할 것인가를 꿈꾸면서 돈 달라고 하는 성도는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성공 저 너머에 있는 그 위험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성공만을 위해서 간구한다면 히스기야와 같은 결과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서 중년에 죽을 운명이었는데 그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15년의 생명 연장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15년간의 생명 연장 속에서 그에게는 므낫세라는 아들이 태어 나게 되었지요. 어떻게 보면 므낫세의 출생은 경사 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므낫세라는 아들이 히스기야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는데, 므낫세는 50년간 통치를 하는데, 유대역사에서 므낫세보다 더 악한 왕은 없었습니다. 이 므낫세 왕 때문에 유다 왕조는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내려 오다가 곧 바벨론에 망해 버리지요. 므낫세의 50년간의 통치는 우상숭배로 유다의 영적 타락을 조장했고, 영적 타락은 필연적으로 무슨 결과를 가져 오나요? 도덕적인 타락을 불러 오지요. 므낫세 이후에 요시야라는 선한 왕이 등극했지만, 므낫세의 50년간의 적폐를 없애는 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 유대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망해 버리지요.

히스기야가 병 나음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어야만 했지요. 그것을 볼 줄 몰랐고, 그저 우선 병이 낫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 만을 목표로 기도했기에 그런 결과를 맞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켐연장 성도들은 성공을 위하여 기도하지만, 성공 그 이후에 해야 할 일을 바라보면서 기도해야 겠습니다. 성공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는 많지만, 성공 저 너머의 일을 미리 내다 보면서 기도하는 자는 적다는 하나님의 탄식을 봅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무엇을 남겨 두고 떠날 것인가? 예수의 자취, 예수의 흔적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산행을 가시는 분들은 옛날에 보면 바위에 자기의 이름을 새겨 놓는 분들이 더러 있지요. 아무 것이 다녀가다 하면서 말입니다. 호사유피요 인사유명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지금 펄펄 끓는 지옥에 들어가 있는 데 이 세상에서 큰 이름을 남기고 후세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들 무슨 유익이 지옥에 가 있는 사람에게 있을까요? 업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천국에 들어 가 있는 것이 훨씬 그 사람에게는 유익하지요. 아마도 지옥에 가 있는 분들은 자신은 차라리 아 내가 태어 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면서 영원한 세월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룟 유다에게 하셨던 말은?:차라리 태어 나지 않았더라면 저에게 좋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들이 한 세상을 살면서 남겨야 하는 것은 예수의 자취, 예수의 흔적을 남겨서 후세의 사람들이 내가 남긴 자취를 보고서 예수를 볼 수 있게끔 되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창12:7-9절
창13:1-3절
창13:18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거주하면서도 한 곳에 정주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안에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즉 그는 순례자의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가 옮길 때 마다 했던 일은 제단을 쌓는 일이다. 제단? 제단은 자연석 돌을 깔아 놓고 그 위에서 동물을 잡아서 불태워 드렸습니다. 따라서 제단을 쌓는 일은 제사 드리는 일, 곧 예배 드리는 일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입니다. 그가 제단을 쌓고 야훼 예배를 드리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어떻게 할까요? 제단을 허문 다음에 돌들을 나귀에 바리바리 실어서 다음 번 장소에 그 돌을 가지고 제단을 만들었을 까요? 아니지요. 아브라함은 떠났지만 무엇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까? 돌로 된 제단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났지만 그 곳 이방인 주민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나요? 야훼 신앙을 아브라함은 그 제단을 통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주민들은 모두 바알을 섬기는 원주민들이었지요. 그 주민들은 그 제단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섬긴 하나님이 야훼라는 것을 알았지요. 아브라함은 떠났지만, 무엇을 남겼다고요? 제단을 남겼다. 그 제단은 말없이 그 주민들에게 야훼 신앙을 증거해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어둠의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지금은 이곳 보스톤 땅에 우리를 머무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켐연장이라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짧게는 수년간 이곳에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있고, 길게는 40-50년 이곳에 머물다가 하늘나라로 이민 갈 분도 많습니다.

세례 요한:
요한복음10:40-42절/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하여 참수형을 당하여 땅에 없었지만, 그가 예수에 대하여 했던 증언들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기억나게 해 주는 사람;
내가 이곳에서 신앙 생활하는 동안 남긴 발자취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예수를 기억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켐연장을 섬긴 그 일들이 이웃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신은 이곳 보스톤 땅에서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우리는 미구에 이곳을 떠나지만 우리가 남긴 발자취를 통하여 켐연장에 들어와서 신앙 생활하는 무리들이 예수를 기억나게 해 주는 발자취가 되기를 원하노라! 어둠 가운데 빛이 무엇이라는 지를 보여 주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 내 주기를 부탁 드립니다.

고후2:14-16절

우리는 천리향, 만리향이 되어야 합니다. 스컹크처럼 악취를 내는 삶이 아니라 향기를 내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내 향기가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막장인생
강원도 태백.황지의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을 그렇게 부른다. 무연탄을 캐는 분들은 인생의 실패와 좌절을 겪은 다음에 태백이나 황지에 내려와서 탄을 캐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분들을 막장인생을 사는 분들이라고 부르지요. 탄을 캐는 분들이 땅 속 깊은 갱도에서 일하면서 병이 들리는데 그 병 이름이 규폐병입니다. 이 병은 폐에 탄 가루가 들어가서 쌓이면서 폐가 망가지는 병입니다.
찬양팀 앞으로!
보스톤 땅에 하바드, MIT혹은 BU, tufts등등의 학교에서 특히 biology전공하시는 분들, 물리학 중에서도 나노를 전공한 분들은 광부들과는 달리 고상한 것을 손에 만지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광부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인생의 끝자락인 막장 갱도 안에서 탄을 만지지만, 박사들은 성공한 분들로서 역시 막장에서 일하는 분들입니다. Ph.D도 역시 막장인생입니다. 단지 만지는 재료가 다를 뿐입니다. 광부는 탄을 만지고 박사는 무엇을 만져요?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세포를 만집니다. 만약에 그러나 박사 학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안 계시면 그들도 막장에서 탄을 캐는 막장 인생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갱도 끝에서 탄을 캐는 광부나 실험실에서 세포를 만지는 박사들이나 예수가 없다면 모두 비참한 막장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