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98

January 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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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98
일시:1/31/2020

1.요한 계시록에 보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은 어떤 전쟁입니까?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풀이해 보면 아마는 아마도 이고 겟돈이라는 말은 계조직을 하여서 돈놀이를 하는 분들에게 일어나는 전쟁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선교회원들 간에 계돈 놀이하다가는 싸움질하게 되지요. 그러면 교회가 폭망합니다. 세계 삼차 대전은 바로 교회 안에서 계돈 놀이하다가 교인들간에 싸움이 나면 세상이 망한다는 말로 해석이 됩니다.
예수님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남자이지요. 1세기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유대 평민 남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섬기는 우리 하나님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우리가 부르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남성일까요? 하나님이 여성은 아닐까요?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은 용사라고 표현되어 나오지요. 남성형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병아리를 품고 있는 암탁의 이미저리를 사용해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구약에는 남성형 이미저리를 사용해서 동시에 여성형 이미저리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하나님을 남자로 표현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창세기와 히브리서에 나오는 멜기세댁은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멜기세댁은 하나님과 방불한 존재입니다. 아리까리합니다. 새댁은 갖 결혼한 여자이기에 멜기라는 새댁 곧 여자입니다.
하나님은 장사꾼입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대로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세일하시는하나님! On sale! 복음을 공짜로 파신다.
모두 난센스 퀴즈였습니다.

2.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볼 때에 천하고 못나고 약하고 심지어 악하게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좋은 결과를 맺습니다.

사울왕 대 다윗 왕!!
사울은 왕으로 선택될 때에 탁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상10:23절
사울은 사람들 마음에 든 왕이었다. 사울은 길보아산 전투에서 블레셋 군대에 패배하여서 수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았고, 자신의 가족들도 모두 죽였고, 자신도 자살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다윗은 어땠나? 다윗은 사무엘이 베들레헴에서 제사를 집전할 때에 제사에 참여하지도 못할 정도로 집안에서의 위치는 별 볼일 없이 낮았고, 들에서 양떼나 돌보는 그런 지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 2대 왕으로 선택했고, 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막내 아들, 무시 받는 아들이었지만 그는 선택 되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이방 나라들을 정복하였고, 메시야가 그의 후손으로 태어 나게 되었지요. 좋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삼상13:14절/ 누구의 말인가? 사무엘의 말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불순종했을 때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선포한 말입니다.
사울은 사람에 의하여 선택되어 왕노릇(왕질)을 하다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아서 멸망당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선택되어서 지도자가 되었고, 유다의 왕이 되었고, 나중에 사울을 뒤 이은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다. 다윗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을 알아야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닙니까? 원문을 살피면 하나님의 마음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좋다고 하는 의견을 수렴하여서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 지를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 길이 옳다고 해도 하나님이 틀렸다고 하면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과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이렇게 살기는 참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탁월한 재능과 능력이 없고, 가문이나 배경도 없는 흑수저 물고 자라났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고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면 당신의 삶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행13:22-23/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뜻을 모두 헤아려 알고 그것을 누구 이룹니까? 다윗이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다윗의 먼 후손인 예수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왕으로 통치할 때에 약속해 주신 것이고 천년 후에 하나님께서 그가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 내셨습니다.
시89:19-20/23-24절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3. 지 지난 주, 그리고 지난 주에 아벡 전투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약 주전 11세기에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배했습니다. 이 전투로 이스라엘은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법궤가 블레셋 진영에 들어 가 있는 동안에 블레셋 나라 안에서는 큰 재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큰 재앙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기도 하고, 벱궤 때문에 일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적어도 블레셋 족속들에게는 아리송했습니다. 아뭏튼 블레셋 족속은 법궤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숙고하게 되지요. 그냥 부수어 버리자니 더욱 두렵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독한 종기로 고생하고 있는데, 만약에 법궤를 부수어 버렸다가는 더욱 큰 재앙이 임할 것 같아서 그렇게는 못하겠지요. 그렇다면 법궤가 원래 있던 이스라엘 족속으로 돌아 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족속은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어떻게 법궤를 돌려 보낼 것인가를 말입니다.블레셋 족속의 제사장과 복술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되지요.
블레셋 족속들에게 있어서 법궤는 이스라엘 신과 동일시 되기에 법궤를 돌려 보낼 때에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냈다가 이스라엘 신의 진노로 또 다른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요? 삼상 6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속건제를 드려야 한다. 그렇게 드리는 이유는 독종이라는 질병에서 낫기 위하여 말입니다. 그 속건제는 금으로 만든 독종 다섯과 금으로 만든 쥐 다섯 마리 형상을 만들어서 법궤와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건제라는 것은 속죄제와 비슷합니다. 속죄제는 지은 죄에 대하여 양과 염소를 죽여서 피를 드리면 끝나지만, 속건제는 손해 배상을 하는 제사입니다. 법궤를 포로로 잡았기에 이스라엘 신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 상처를 위로하기 위하여 보상 즉 선물을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법궤를 둘려 낼 때에도 정성을 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레를 새로 만들어서 멍에를 한번도 매어 보지 아니하는 젖 나는 소 두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그 수레에 법궤와 함께 우리의 선물을 같이 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벱궤를 둔 수레가 법궤가 있었던 원래의 곳으로 가면 이 재앙은 우연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신이 야훼께서 우리에게 내린 것이고 만약 법궤가 엉뚱한 곳으로 가면 이 재앙은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여기면 된다는 말입니다.

다음의 본문을 읽읍시다.
삼상6:10-16절/

이 본문은 아마도 헌신 예배에서 많이 읽은 본문입니다. 두 마리의 젖나는 암소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기 때문입니다. 이제 출산한지 얼마 안되는 두 마리의 젖나는 암소에게서 송아지들을 떼어 놓습니다. 두 마리의 암소는 법궤가 실려 있는 수레가 장착됩니다. 두 마리의 암소는 수레를 끌고 유대 땅 벧세메스 길로 가면서 음메 거리면서 울고 가는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곧 바로 올라 가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블레셋 방백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두 마리의 암소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사명자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세상 것을 다 버려 두고 사명의 길을 갑니다. 다 간 후에는 무엇이 되나요? 제물이 됩니다. 수레는 제사에 불 붙일 화목으로 쓰고, 두 마리의 암소는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로 드려 집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읽으면서 헌신하는 제자도를 선포하지요.
저도 청년 시절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이런 유형의 설교를 듣고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설교가 성경 전체의 맥락으로 볼 때에는 틀리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들어 있는 보다 큰 문맥 안에서 보면 틀렸습니다. 이 이야기의 해심은 무엇일까요?

과연 오늘 본문 말씀이 제자도의 헌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제자도의 헌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상황을 투영해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오늘 본문 말씀의 의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마음의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리의 말 못하는 암소를 주장하여서 자신의 원하는 대로 법궤를 원래의 장소로 이끌어 갔다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나요? 우리들이 당한 독종은 우연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내리신 징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족속은 자신들이 당한 독종 재앙이 우연인지 아니면 법궤로 인한 재앙인지를 알고 싶어서 수레 뒤를 따라서 벧세메스까지 왔었지요. 수레가 벧세메스까지 오는 것을 보고 독종 재앙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족속에게 자신의 영광을 이렇게 나타내셨습니다.
블레셋 족속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인 다곤 신을 버렸을까요? 안 버렸지요. 단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신을 인정했을 뿐입니다. 자신들을 다스리는 신은 다곤신이지만 말입니다. 다신론을 섬기는 고대 근동 지방이기에 이스라엘 신이 열등한 신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을 뿐입니다. 만약에 여기에 여호와를 섬기는 선교사가 있었다면 블레셋 족속들에게 회개하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여서 다곤 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로 이끌 수가 있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냥 이스라엘의 신은 여러 신들 가운데 힘과 능력이 있는 신들 중에 하나로 블레셋 족속에게는 자리 매김 되었을 뿐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누구에게도 제약을 받지 아니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후대의 예언자인 주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는 사14:24절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14:24/
사 14:27?

우리 교회의 8개의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두 번째의 것이 무엇이지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막을 인생이 없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이룰 인생이 없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것을 못 하게 막을 인생이 없고 하나님이 안돼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인생이 없다. 모든 일을 그의 원하시는 뜻대로 하시는 분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세상 사, 모든 일은 예수의 허락 속에 우리의 삶에 이루어집니다.
공중에 날아 다니는 참새가 땅에 떨어져서 시장에서 사람의 손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공중에 날아 다니는 참새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참새도 그렇다면 우리는 참새보다 얼마나 귀합니까? 내게 일어 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늘에서 허락해야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의 눈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에게 쏠려 있습니다.

찬양팀 앞으로!
엡1:11절/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요? 모든 일들, 즉 인간 세계 속에서 일어 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르지요. 하나님의 계획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하나라도 하나님이 계획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면 인간 역사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