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53

February 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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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아시지요. 이솝 우화입니다. 저도 초등학교 다닐 적에 도덕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새롭게 납니다.

더운 여름날 개미는 영치기 영차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합니다. 그러나 베짱이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서 노래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다 가고 추운 겨울이 도래하게 됩니다. 베짱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개미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지만 개미가 도움을 거절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개미와 베짱이>이 이솝 우화는 여러 가지 변종이 생겨 났지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인 개미가 베짱이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 주고, 베짱이는 앞으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로 끝나는 버전도 있고요. 또 다른 버전은 베짱이가 개미의 도움을 받고 그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노래를 개미에게 들려 주는데, 그 추운 겨울을 개미들은 베짱이의 노래를 들으면서 보낸다는 상생의 교훈을 주고 있지요. 모두 원 작자인 이솝 우화의 변종입니다.

원래의 이솝이 주고자 교훈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언제나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이런 시각으로도 재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개미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과 베짱이와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개미는 앞날 대비형이고, 베짱이는 현재를 즐기는 형입니다. 사실 베짱이라는 곤충은 살아 보았자 6-8개월 밖에 못 삽니다. 여름 한 철만 사는 그런 베짱이가 겨울을 대비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베짱이는 여름 한철 시원한 그늘에서 노래하면서 즐깁니다.

 

베짱이 같은 삶의 방식! 80-90년의 삶을 살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면서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나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아차차’ 이런 분들은 노년을 위하여 번 것을 저축하지 않고 다 써 버립니다. 노년에 가서는 그 때 가서 걱정하도록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현재를 즐기자 하는 인생관입니다.

그러나 개미 같은 삶의 방식은 지금은 다가 오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기쁨 보다는 노년에 닥칠지도 모를 일들을 대비해서 살자는 인생관입니다.

 

베짱이 같은 인생관보다는 조금 지혜로운 인생관이 개미와 같은 인생관이지요. 그래서 제도적으로는 연금 제도가 생겨났고, 또 무엇요? 보험이라는 것이 생겨 났지요. 모두 다가 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인류의 지혜이지요. 노후 보장이 된 사람은 은퇴하더라도 별 걱정 없이 노후 인생을 즐길 수 있겠지요. 젊을 때 벌어서 노후를 위하여 저축하여서 연금 받으면서 사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혜를 영적인 데까지 확장한다면 죽음 후에 우리의 운명을 준비하면서 사는 것이 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겠지요. 이것을 사후 보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의 현실 세계가 우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여서 그것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전부를 all-in하면서 살아 갑니다. 이런 삶의 방식을 소금쟁이 삶의 방식이라고 부릅니다. 비가 온 다음에 웅덩이 같은 데 보면 물 표면을 스치듯이 다니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 벌레가 소금쟁이 입니다. 소금쟁이 벌레에게는 깊은 호수나 대양과 같은 바다가 필요 없습니다. 길가의 조그마한 웅덩이의 물 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물 표면 위를 떠 다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소금쟁이 같은 삶의 철학을 가지신 분들은 이 땅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돈, 명예, 세상 권세 같은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하여 죽어 라고 일만하지요. 끝없는 탐욕으로 세상 것들을 쌓아 놓았지만, 그것을 즐겨보지도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모아 놓은 것을 세상에 남겨 두고 떠납니다. 소금쟁이와 같은 인생관을 가지고 산 사람들의 비극이 거기에 있습니다.

 

남 태평양의 어떤 섬에 전래 되어 내려 오는 이야기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섬에 어떤 사람이 외부로부터 들어 오면 그 사람을 1년 동안 왕으로 떠 받들면서 그 사람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나 들어 준답니다. 그리고 1년 후에는 모든 것을 그 섬에 나두고 들어 올 때의 방식으로 섬을 떠나가야 하는 불문률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 섬에 들어 왔습니다. 들어 와서 그 사람이 했던 일은 집을 아름답게 왕궁처럼 짓고, 그 안에 값나가는 것들로 가구들로 장식해 넣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이 1년후에는 그 모든 것을 섬에 놓아 두고 난파된 배 조각을 타고 바다로 추방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1년이 되자 그 섬의 규율을 따라서 섬 밖으로 추방되어서 물귀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세월이 흘러서 또 어떤 사람이 표류하여서 섬에 들어 왔습니다. 이 사람은 이전에 온 사람이 만들어 놓은 큰 집에 기거하면서 자신이 1년 밖에 이런 호사스러운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섬 주민들에게 매일같이 산해 진미를 차려 올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죽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1년후에 이 사람도 섬을 온 그대로 떠나게 됩니다.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표류해서 섬에 들어 왔습니다. 그는 자기 보다 앞서 왔던 사람들이 했던 일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자기도 그와 같은 운명을 1년후에 맞을 것이라는 염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섬 사람들에게 그 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자신을 안내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산 꼭대기에서 동서 남북을 살펴 보았습니다. 저 먼 지평선 너머에 조그마한 섬이 보였습니다. 섬 주민들에게 요청합니다. 저 섬으로 자신을 안내 해 달라고 말입니다. 배를 타고 하루 종일 갔습니다. 그것은 조그마한 무인도였습니다. 그 사람은 섬 사람들에게 요구합니다. 이곳에 집을 짓고,밭을 일구고,소와 돼지와 가축을 옮겨와서 기르라고 말입니다. 1년이 되었을 때에 이 사람은 그 섬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자 배를 타고 자신이 준비한 그 무인도로 떠났다는 것 아닙니까?

누가 가장 지혜로웠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세 번째 사람이지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역사의 시발점에 서서 역사의 종말을 보고 종말을 대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후세계를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 4:18절에서 고백하였듯이 그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사람들에게 육신적인 지혜가 있어서 ‘노후 보장’은 잘 해 놓았는데,’사후 보장’ 이 안된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 주님이 어리석은 부자라는 비유에서 이 사실을 지적하셨지요.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소출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곳간을 헐고 크게 증축하고 거기에 농사 지은 것들을 비축해 놓았습니다. 노후 보장이 잘 되었지요. 그러면서 그 부자가 하는 말이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너의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어리석은 자야! 세상적인 지혜로 우리는 우리의 노후 보장에는 지혜롭게 잘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후 보장이 안되었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노후 보장뿐만 아니라 사후 보장도 잘 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죽음 후에 사후 보장이 되어 있습니까?

요14:1-3절<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문제가 무엇입니까?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이것이 도무지 믿어 지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육신 세계 저 너머에 영적인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가 우리의 지성이 만들어 내 놓은 허구의 세계가 아니고 실존세계라고 생각하십니까? 천국에 가 보았습니까? 안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통하여 말입니까? 우리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말입니다. 천국은 거울에 비친 세계가 아니고 무엇이라고요? 유리창 너머의 세계라고 말입니다. 거울에 비친 세계는 거울이 깨어지면 거울에 맺힌 상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유리창 너머의 세계는 실상의 세계입니다. 유리창이 깨어져도 그 너머의 세계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천국은 바로 유리창 밖의 세계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신 후에 다시 사심으로 쳔국 거처가 예비 되었습니다. 천국은 이미 2천년 전에 건설되어서 완공, 준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삶을 마치면 준공되어 있는 저 천국에 들어가서 안식하게 됩니다.

 

어떻게 들어 갑니까?

요14:6절<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이라고요?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는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행4:12절<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공자도 석존도 마호메트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인류의 구원자는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은 가치 있는 삶을 지금 현재에 살고 있습니까?  당신이 죽은 후에 사후의 삶이 풍성하게 되도록 지금 현재부터 준비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사후에 풍성하게 사는 길은 영원세계에 들어가서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부터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 이민을 간다면 이민 갈 나라에 대하여 철저하게 준비해야 이민 가서 고생하지 않지요. 우리가 사후 세계에 들어 간다는 것은 일종의 이민 가는 것이지요. 영원한 천국살이를 위하여 지금 이곳에서부터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죽음 후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영원 세계에 가지고 갈 것과 이 땅에 놓아 두어야 할 것을 잘 구별해 놓고 살아야 합니다. 죽을 때에 이 땅에 모두 놓아 두어야 할 것들을 연연해 하면서 삶의 전부를 투자하면서 살았다면 영원세계에 들어가서 얼마나 후회막급이겠습니까? 돈 벌기 위하여 애써서 큰 재산을 모았지만, 죽을 때에 단 한 푼도 영원세계에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업적을 쌓았지만, 그 업적을 영원세계에 가지고 들어 가던가요? 그 업적을 후세대가 기억이나 해 주던가요? 또 세상을 떵떵 울리던 권세를 가졌던 영웅들을 누가 기억이나 해 줍디까? 이런 것들은 모두 땅에 놓아 두고 떠나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영원한 것들 인양 착각하면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빈손 쥐고 왔다가 빈손 펴고 세상 떠납니다.

다음 세계, 영원한 세계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 영원세계에 가지고 들어 갈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얻어 가지고 사후 세계에 들어 갈 것인가? 현재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영원하지 않는 것들을 사용해서 영원한 것을 추구하여서 얻는 자가 영적인 지혜를 가진 자입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쌓아 놓는 자가 아니라 쌓여 있는 돈을 선교에 사용하거나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는 사용함으로써 영원세계를 준비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을 영원세계로 가지고 가는 방법은 쌓아 놓는 일이 아니고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구제하는 일이고, 선교사역에 쓰는 일입니다.

십자가의 우편 강도처럼 겨우 천국 들어 가는 일로 만족하지 말고,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처럼 영화롭고 풍성한 구원을 이루어 천국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십자가의 우편 강도와 사도 베드로는 같은 천국이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 영원히 살아가겠지만 천국에서의 삶의 질이 다를 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의 삶의 질이 같다면 굳이 땅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던 사도 바울처럼 살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의 질이 십자가의 우편 강도와는 다른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보다 나은 천국 삶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히브리서 11:36-37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통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당신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한가?

눅10:20절<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배경?

찬양팀 앞으로!

이 말씀의 의미? 사역의 기쁨, 업적, 소유함으로써 기쁨도 있지만, 이런 기쁨은 한시적인 기쁨이고 진정한 기쁨, 영원한 기쁨은 존재론적인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었느냐로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귀의 자녀이었지만, 주 예수의 공로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입적이 됨으로 얻게 되는 기쁨입니다. 소유보다는 존재라는 기쁨이 더 크고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골3:1절<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하늘과 땅을 바라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