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55

February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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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 14절/<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직역-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민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a[gontai삶을 살아야 한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원한다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 없이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신앙생활이 고달플 밖에 없다.

 

가. 인도a[gw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도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반대 개념인 몰아간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한번 점검해 봅시다.

몰아간다? 돼지를 돼지 우리에서 꺼내서 도살장으로 보낼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돼지의 가는 앞길에 삶은 콩을 떨어 뜨려 주고 뒤에서는 회초리를 들고 때려서 도살장으로 몰고 갑니다. 돼지는 사람이 앞에 가더라도 결코 사람을 따라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뒤에서 회초리를 들고서 몰아 갑니다.

그러나 인도라는 말은 guide 인데 이끈다는 의미인데, 앞에서 인도자가 가면 뒤따라 가는 것이다. 목자가 양떼를 데리고 푸른 초장으로 갈 때에 인도한다. 앞서 간다. 그러면 양떼들은 뒤따라 간다. 목자가 양떼 뒤에서 회초리로 때려서 목자가 원하는 곳으로 양떼를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요10:3-4절<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성령이 성도들을 인도한다고 했는데, 성령이 누구인가?

 

성령인도-수사적인 표현인가? 내가 내 의지대로, 내 판단대로 내 모든 일들을 하면서도 성령이 인도했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인가?  이런 분들은 성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의식이 강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인정하기는 하는데, 성령이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힘,세력,능력 정도로 이해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내가 성령을 이용하여서 내 사업, 내 인생의 영달을 위하여 사용하는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령에 대한 온전한 성경적인 이해: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제 3위를 점하고 있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고, 또한 완전한 인격이시다. 찬송 받으실 실존이시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내신 분이 성령님이시다. 성령은 지정의를 갖추고 있는 실존. 육체는 없지만 완전한 인격입니다. 인격의 삼요소인 지식(생각), 감정, 의지도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처럼!

 

지성-성령/고전2:10-11, 롬8:27/성령의 생각!

감정-<사랑,탄식>/롬8:26

의지-허락,거부/행16:7,인격자처럼 행동하신다. 인도, 간구,파송…

 

롬8:26-27절/<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한다. 탄식은 감정적인 영역이다.

성령의 생각을 하나님이 아신다. 성경이 로버트가 아니라 성령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간구한다. 간구하는 행동은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방언기도!

성령이 지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격의 삼요소!

 

 

범죄한 인류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예수 그리스도.-세상에 주신 선물(요3:16).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대의 선물:성령님.-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사역자들, 주의 일을 하는 분들, 봉사자들, 헌신자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반드시! 성령 없이 사역하는 사역자들은 사역을 잠깐 내려 놓고 위로부터 내려 오는 성령의 능력을 먼저 받으라.

 

눅24:49-떠날 때가 아니고 머물러서 능력을 받아야 할 때이다.

 

나. 성령의 인도란 무엇인가? 성령의 이끄심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1. 만사형통인가? 인생의 실패라는 것이 없고 성공만 있는 것이 성령인도인가? 예수를 믿게 되면 몸에 병들지 않고, 사고 한번 당하지 않고, 승진이나 입학시험에 실패하지 않고, 사업에 부도 한번 안 나고, 승승장구하는 것이 성령인도인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이방인에게 닥친 불행이 예수를 믿고 나서도 우리에게도 닥친다. 불치의 병(암), 감기 몸살, 교통사고… 이런 일들은 일상적인 일들입니다.

찬송가 384장 1절 마지막 소절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이것은 신학적으로 틀린 가사다. 성령께서는 육신적으로 안일하고 평안한 상태로 우리를 인도하사지 않습니다. 가끔씩, 성령은 우리를 불행.재난.시련 속으로 데리고 갈 때가 있다. 재난 속으로 들여 보내는 것이 성령 인도가 아니라 재난 속에 들어와 있지만 속에서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을 성령인도라고 말한다. 푸른 초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목자인 우리 주님이 먼저 그 골짜기에 들어가면 우리들도 목자의 인도를 따라서 그 으스스한 골짜기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1. 바로 이런 성령인도를 받은 성도들의 예를 한번 살펴 볼까요.

 

요셉/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마지막 족장<아브라함, 이삭,야곱…>

 

만약 당신이 시나리오 작가라면 강대국 애굽의 한 변방에 살고 있는 소와 양떼를 방목하는 족장의 아들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면 어떤 플롯을 써서 만들 것인가? 왜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았을까?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는데 다른 길이 없었을까? 그 길이 최선의 길이었다.

과연 요셉이 두 개의 꿈(비전)을 17세 때에 꾸고 난 다음에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힐 때에 그가 그것을 성령 인도로 인정할 수가 있었을까? 없었다. 하나님이 야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노예로 팔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형들의 손을 빌어서 나를 애굽에 팔았다. 무엇하기 위하여 뭇 생명들을 기근에서 살려 내기 위하여!

창39:3<여호와께서 그로 형통케 하셨다>/이 말은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되었을 때에 했던 평가입니다.

창39:23<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이 말은 감옥에서 했던 평가입니다.

 

 

*다윗/사울에게 3년을 쫒기는 생활. 왜 그랬을까? 왜 다윗에게 그 고난과 환란이 필요했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연단시킬 필요가 있었다. 사울은 연단의 과정이 없었다. 범죄 했울 때에 사울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힘이 없었다. 죄를 지었을 때에 사울은 변명하고 이웃을 불레임하고 자기 합리화 하는 데 급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환난의 과정 속에서 그는 배웠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다. 그는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나서 주께로 나갈 수가 있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 사망과 생명은 한 걸음 차이라고 고백했다. 성령인도가 있었기에 칼날 위를 걸으면서도 죽지 않았다. 그 고난의 세월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뭔가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는 나중에 사울에게 좇겼던 수년간의 삶이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훈련기간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모세/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허송세월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기 위해서 필요한 기간이었다. 모세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40년의 광야 생활이 필요했다. 미디안 광야에서도 성령께서 그를 가르치고 인도했다. 성령이 무엇을 가르쳤나요? 겸손을 가르쳤다. 40년 후에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무력한자임을 고백했다. 무기력한 자가 아니고 무력한 자! 무기력은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고, 무력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신앙적인 체험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런 무력감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요.

 

*사도바울/다멕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난 다음에 그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머물렀고, 그 후에 10여년 동안을 그의 고향 다소에 머물러 있었다. 명상과 묵상과 기도 생활을 했지요. 복음을 전하면서 돌아 다닌 것이 아니라 은거 생활을 했다. 왜 그랬을까? 훈련의 과정이다. 성령의 인도가 거기에 있었다. 기독교의 기초를 놓는 준비 작업을 했다.

 

행16장/빌립보 교회의 개척, 마케도니야 인의 환상을 보고서 배타고 유럽대륙으로 건너감. 주단이 깔린 길인가? 빌립보 옥중에서 고생했다. 매맞고 투옥 당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다. 간수 가족, 점하는 귀신 들렸다가 나은 여종, 그리고 루디아 가족들…이런 분들이 빌립보 교회의 개척멤버가 되었다. 이길 밖에는 없었을까? 예 그 길이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최선이었다.

롬1:10/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는데, 최선의 길을 구했다. 그런데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들어갔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 최악의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하나님의 눈에는 최선의 길이다. 성령 인도!

 

우리 주님/

예수의 수난(십자가 고난)-피흘리고 죽었다.우리의 구원을 위한 다른 길이 없었을까? 없었다. 사탄은 부단히 유혹했다. 손쉬운 길이 있다고. 나에게 절만 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사탄은 우리 주님께 손쉬운 메시야의 길을 제시했다. 주님은 거부하셨다. 왜? 그런 고난을 통하여 범죄한 인류를 구속할 수 있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고난의 길을 갔다. 그의 3년간의 삶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었다.

 

당신은 지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령의 이끌림,즉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당신의 성공 뿐만 아니라 당신의 실패와 좌절과 눈물과 슬픔과 질병과 사고 속에서도 성령께서는 당신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다. 그런 시련을 주시는가? 그런 길로 인도하시는가? 하나님의 삶을 향한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가?

  1.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롬8:29, 갈4:19

요즈음 세속에는 삶의 목적이 well-being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웰빙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나요? 아니다. 내 삶 속에서 예수의 형상을 이루어 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Well-dying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는 자가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교회 안에 복 받기 위하여 교회를 출입하는 믿는 자는 많은데, 삶을 주께 헌신 하는 제자는 드물다.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문자적인 순교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순교정신을 가지고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떤 무당(점장이)의 고백/ 고척교회에서!

 

  1. 푸른 풀 밭, 쉴만한 물가로 가기 위해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한다.

시23편 해설

 

  1. 간증:나의 삶/방향을 바꾸어 주신 하나님/91년 11월 디스크 발병~94년2월20일 치유

 

  1. 롬8:29절/<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갈4:19절/<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을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히2:10절/<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라. 성령 인도의 결과(유익)

  1. 고치-à나방/어떤 곤충 연구가의 실험
  2. 고난은 연합(접붙임)을 강화한다.
  3. 진주조개/욥23:10<정금 같은 인격>
  4. 참숯이 만들어진다. 옛사람을 죽인다. 화력이 좋다. 연기를 내지 않는다.
  5.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된다. 고난 속에서도 그 의미를 알았기에 감사한다.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는 구나를 깨닫는다.

 

*앤소니 핸더슨이란 초등학생/George H. Bush 대통령”와 진짜다”

운전면허, 크레디트카드, 나중에 운동장에서 긴 리무진과 보디가드를 보고서야…

 

마. 언제 나의 고난(시련)은 끝날 것인가? 끝이 안보이고 곤고하다. “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평탄한 길 주옵소서”

  1. 마라(출15:22)과 엘림(출15:27)은 11km정도 떨어져 있다.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2. 은 제련업자/말3:2-3/<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찬양 팀 앞으로!

 

언제 불이 꺼지는가?제련업자의 얼굴이 순은에 선명하게 비쳐질 때에 은제련의 불은 꺼진다. 당신에게 임하여 있는 고난과 시련의 불은 왜 임하여 있고, 언제 꺼질 것인가? 우리 주님이 당신의 영혼을 보시면서 당신의 영혼 속에서 당신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시면 그 시련의 불을 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