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60

April 12, 2019
설교자:
Service Type:
  1. 지난 구역장 모임에서 지난 주 설교 본문을 가지고 구역 모임 공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질문이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질문과 오해에 대하여 일일이 대답하기 어려워서 오늘 전체를 상대로 질의에 대한 답을 해 보고자 합니다.

빌3:7-9상/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그의 삶의 목표이고 전부였다! 그가 이전에 가지고 누리던 모든 인간적인 조건과 또한 그가 좋아하면서 추구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이 가진 조건들, 남들과 비교 우위에 있는 삶의 조건들을 사용해서 그를 사용하여서 기독교 사상의 초석으로 삼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와는 비교가 안되는 영향력을 후대에 끼쳤습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아볼로는 그 영향력이 미미하고,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도 크리스천 공동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바울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기독교가 예수의 종교인지, 아니면 바울의 종교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기독교에 크나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지난 주 설교 중에서 오해를 일으키는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설교 중에서 세 번째 사항은 예수 만남으로써 내려 놓았던 이전의 나의 것, 옛 것을 다시 들어 올려서 사용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 만나기 위하여 이전에 내가 버렸던 옛 것을 다시 찾아서 나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 하는 말입니다.

우선 내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써 버렸던 옛 것들의 첫 번째 목록은 나의 죄악들입니다. 이 죄악들에서 이미 손을 씻고 버렸기에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는 두 번 다시 그런 죄악들을 행해서는 안됩니다. 남의 것을 도둑질 했다거나, 사람을 죽였다거나, 남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해롭게 했던 모든 일들은 옛일이면서 죄악입니다. 이런 죄악들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고 나서는 모두 손을 깨끗이 씻고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는 죄는 아니나 그리스도인들로서 품위를 못 세우거나 덕을 못 세우는 행위들, 예를 들면 술,담배에 찌들어서 살았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약에 어딕 되어 있다거나, 춤과 도박, 또한 월크홀릭 같은 온갖 종류의 중독에 물들어 있었는데, 예수 믿으면서 그런 옛 사람의 일을 모두 버렸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믿으면서 그런 옛 사람의 행동을 다시 취하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런 모든 중독들도 깨끗하게 손을 털고 씻고 두 번 다시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예수를 믿고 나서도 그런 중독으로부터 벗어 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은 탄식하면서 버려 지도록 기도해야 할 부분이지요.

 

그렇다면 예수 믿고 나서 내가 버렸던 옛 것을 다시 들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가 추구하던 내 인생의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을 내려 놓아야 예수를 제대로 믿게 된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전에 나의 삶의 목적이 아니었던가요?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자신은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고 멋진 인생을 살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업을 했는데, 그만 망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사업, 돈보다 귀한 예수를 기도 중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인생의 전부였던 사업과 돈을 내려 놓게 되자, 새로운 인생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예수를 믿고 아는 것이 돈보다 훨씬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합니까? 사업을 내려 놓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예수를 만난 다음에 이전에 자신이 추구하던 사업을 버렸습니다. 누구처럼 말입니까? 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All in!했습니다. 다드림 선교 회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분과는 다른 분이 있었는데, 다른 분은 사업이 실패로 인하여 기도하다가 돈과 사업보다 귀한 예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업을 내려 놓게 되었고, 예수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만난 후에 다시 일어 났습니다.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사업적인 수완과 인맥을 사용해서 사업을 다시 일으켜서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이 분은 자신이 예수를 영접하면서 내려 놓았던 사업을 예수를 영접하면서 다시 취하였습니다. 이 분에게 있어서 예수 믿은 후에 사업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전에는 자신의 사업이 자신의 세속적인 행복과 성공이 목적이었지만, 예수 믿은 후에는 예수를 기쁘시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업을 합니다. 자신의 사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것이라는 의식과 깨달음을 가지고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사업을 통하여 선교하고 구제하는 그런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전에는 십일조만을 드렸는데, 이제는 소득의 9/10를 주의 일을 위하여 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분은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에 이전에 자신이 버렸던 그 옛 것을 다시 들어서 사용했지요. 이분도 다드림 선교 회원이 되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외침:회개의 촉구, 군병들에 대하여~

부자 관원 이야기(되돌아 간 사람), 파코미우스(수도원 운동의 효시), 삭개오 이야기

다른 길로 간 사람들-동방박사들 이야기

나의 이야기

바울 이야기

다드림 선교회/덜 드림 선교회

영원한 세계에서 후회할 짓을 하지 말고, 확신 가운데 행하자!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내가 좋아하던 일을 내려 놓고 예수를 영접하고 믿었던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라! 내가 좋아 하던 일을 내려 놓은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간 기도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내 좋아하던 일이 내려 놓아 지게 됩니다. 그렇게 내려 놓아 지게 되어 빈 손이 될 때에 예수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와 내가 좋아 하던 것을 동시에 잡을 수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베냐민을 내려 놓을 때!

예수 그리스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1.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창1:26-28/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5:1절/<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창9:6절/<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라틴어). The Image of God!  신학적으로 구약 신학에서 있어서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성경에는 간결하면서도 확정적인 인간 이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창조 설화에 나오는 간결한 인간 정의: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존재!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은 흙으로 된 피조물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생명을 부여 받은 존재이고, 모든 다른 피조물보다 우위에 있는 차원에 속하는 피조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존엄한 존재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우리 주 예수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제 2의 아담이라고 재해석을 하고 있지요. 오늘 설교는 신약 성경은 배제하고 단순히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가를 알아 보고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적용할지를 찾아 보지요. 구약이라는 틀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보도록 하지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창조 될 때에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우리가 부여 받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과연 신의 본질 혹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어느 부분을 부여 받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 옵니다. 이런 이해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유비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제기된 물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아나로기아, 즉 하나님의 본질이나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는 유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과제를 부여 받았다는 관점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했나요? 우주를 다스리게 할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26절에서 중대한 결심을 하십니다. 이것을 비상한 결심이라고 보면 됩니다. 첫 창조에서 빛을 만드시고 여섯 째 날에 생명체를 창조하실 때까지 모두 소원형을 사용하였지요:있으라!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시면서 창조하시다가 인간 창조에 이르러서는 동사의 꼴이 자원형으로 바뀝니다. 무엇 무엇 하자!라고 말입니다. 인간 창조를 하실 때에는 우리 하나님의 비상한 결심으로 되어진 일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을 창조가 하나님의 마음에 그렇게도 중대한 일이었기에 어떤 모양으로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자기의 모양으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형상과 모양이라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깍아서 만든 조상을 의미합니다. 신을 물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분인데, 신의 형상을 물상으로 표현하는 형상과 모양이라는 글자로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쓴 기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쓸 때에 물질적인 형상, 가시적인 형상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육신적인 이 모습 그 자체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주를 초월해 계실 뿐만 아니라 우주 가운데 내재 하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그런 하나님을 우주 가운데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배후에 숨어서 온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 이사야 45:15절에는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서 하나님을 만나 뵙고 십계명을 받았지요. 그 때에 시내 산은 빽빽한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고, 우레와 번개가 산 위에서 있었고 시내 산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덮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흑암 가운데 있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은 들을 수 있었으나, 하나님을 육안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출20:21절에는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피조 세계, 자연 세계, 즉 온 우주를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은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불가시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육안으로 보이는 우주를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온 우주를 통치하기 위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았습니다. 우리들의 인간 사회에도 이런 기능을 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나요? ‘바지 사장’이라고 부르지요. 요즈음 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스라는 회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재판하고 있지요. 대통령 재임 시절에 본인이 다스를 경영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누구를 세워서 다스를 경영해야 하잖아요. 그렇게 경영을 위하여 세워 놓은 사람을 바지 사장이라고 하지요. 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를 지켜 보아야 하겠지요.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한 주권과 통치권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형상을 하나님의 모양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단어로 나타냈습니다. 인간이 우주 통치의 과제를 위임받았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난 다음에 창1:28절에는 하나님의 문화 명령이 리드미칼하게 나오고 있습니다: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인간은 피조물의 모든 세계(온 우주)를 다스리는 능력과 권한을 위임 받은(하나님의 주권의 상징을 몸에 지닌)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피조물이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위임 통치하는 피조물이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하나님의 형상 속에는 통치의 과제가 들어 있습니다. 통치는 물론 통치 권한을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을 뿐입니다. 이것을 통치의 수임성이라고 부르지요.  다른 피조물보다 우위에 서서 다른 피조물을 통치해야  하는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 위임통치! 이 사실을 시8:5-8절에는’ 당신이 ~하게 하셨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시8:5-8절/<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   시편 8:5-8절에 나오는  ‘발 아래’라는 표현과 통치(mashal/  )라는 동사에서 위임 통치임이 명백하게 재해석 되었다. 창세기의 27절의 다스린다는 동사는 히브리어 라다라는 동사인데,이것은 짓밟는다는 의미의 개념이지만, 위임통치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위임 통치이기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책임적인 대리 행위이다. 위임성과 수임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주님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땅에 계시던 33년 동안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렸습니다. 풍랑이는 갈릴리 바다를 저벅저벅 걸어 가셨고,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켜서 배고파하던 5천명이나 먹이셨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던 환자들을 우리 주님이 고치셨고, 악령들에 포제스 되어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악령들을 추방하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육신적인 죽음을 죽은 자들을 살려 내셨습니다. 야이로의 12살 난 딸을 살렸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 청년을 살려 냈고, 죽은 지 나흘 되었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 내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무덤에 장사 되었다가 죽은 지 사흘 째 되던 날이 무덤의 문을 열고 다시 변화된 육신으로 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최대의 최후의 원수인 죽음을 정복하신 사건이지요. 십자가와 부활 사건! 우리 주님이 땅에서 사역하시던 공생애 3년 동안은 부분적으로나마 자연 세계를 정복하셨고, 다스리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자연 세계를 완전히 다스리고 정복하실 때는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이 재림 사건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 주님의 세계 통치는 완성됩니다.  우리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지요. 마28:1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께 위임되고 위탁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께 온 우주를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예수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어서 이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언제부터 말입니까? 지금부터 말입니다. 예수 믿는 지금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시작점이고 그 마지막은 우리 주님이 재림해 오실 때에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 점이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셔야 자연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이 완성되기에 우리가 하던 일을 모두 내려 놓고 하늘을 바라 보면서 예수님의 재림만 기다려야 합니까? 아니지요! 우리들이 현재에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전공 과목을 가지고 그리고 우리의 직업을 가지고 자연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연 환경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지 않습니까? 땅에는 지진과 화산이 있고, 태풍과 허리케인, 그리고 눈폭풍, 바다에는 쓰나미가 있고, 그리고 하늘에는 소혹성, asteroid가 날아 들 수가 있고, 또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로 인한 전염병이 순식간에 우리의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하고요. 또한 인간의 악함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전쟁으로 수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이런 자연의 무시무시한 재앙을 우리들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님 다시 오시면 모두 통제 되겠지만, 지금은 우리 주님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무거운 머리를 우리의 몸에 붙여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악한 환경을 바꾸어서 우리의 생존을 위한 유익한 환경으로 만들어 가라고 하나님의 형상을 주었습니다. 동물들은 자연 환경을 바꾸어 놓지 못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하신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말입니다. 인간은 부단히 인간 자신이 우주 안에서 생존뿐만 아니라 또한 온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과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열심히 그리고 쉬지 않고 자연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해 나가야 합니다. 그 통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학문과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자연과학과 공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또한 의사들은 의술을 발전시켜서 우리를 위헙하는 세균들을 다스리고 통제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즈음 보세요. 의술이 발전해서 100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80세 이후부터는 삶의 질이 너무 떨어져 있잖아요. 그저 연명하는 정도입니다. 이제는 연명에서 그쳐서는 안되고 삶의 질이 젊을 때처럼 되게끔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사업가들은 부단히 기업활동을 하여서 돈을 벌고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게끔 돈으로 밀어 주어야 합니다. 교육가들은 인류가 지금까지 가진 지식들을 체계화해서 후손들에게 전승시켜야 하고요. 정치가들과 법조계 인사들은 사회가 안정되게끔 법과 원칙을 잘 만들어서 지켜 나가야 하고요.  환경 미화원은 그러면 무슨 일로 사회에 공헌하는가? 지구 한 모퉁이를 쓸어 내서 우리의 사는 곳을 청결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만약 그분들이 없다면 온 도시가 쓰레기 더미로 악취가 풍기고 여러 가지 감염병이 시달리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들의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 필요합니다. 목사와 선교사만이 하나님의 콜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직업이 콜링입니다. 거룩한 부름입니다. 그 부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완성하는 길로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대리하여서 온 우주를 통치하는 위임통치입니다. 키가 2m도 채 되지 않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이 지구인들이 장차 온 우주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그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입니다.

장차 인류가 필리핀의 마리애나 화구에도 집을 짓고 살 수 있게 될 것이고, 에베레스트 산에도 집을 짓고 살게 될 것이고, 또한 달과 화성, 그리고 태양계를 넘어서 온 우주로 우리 주님이 허락하시면 뻗어 나가서 온 우주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런 상태에서 우리 주님이 오시면 이런 상태에서 온 우주를 통치하는 일이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각자의 직업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데 사용되는 거룩한 부름입니다. 또한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인내와 같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속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고요? 온 우주를 다스리라는 위임 통치를 나타내 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의 8번째의 기도 제목이 무엇이던가요?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이것이 자신의 전공 과목을 살려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직징일이나 전공과목의 일을 소홀히 하면서 직장에서 성경 펴 놓고 열심히 전도하는 일이 옳은 일이 아닙니다. 직장과 학교에서는 열심히 삶의 전부를 다바쳐서 연구하고 일하십시요. 성경 펴 놓고 기도하는 일은 목사와 선교사에게 맡겨 두고요.

 

찬양 팀 앞으로!

두 개의 과제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될 때에 부여 됩니다. 하나가 우주에 대한 위임 통치이고 다른 하나는 공존의 과제입니다. 무엇에 대한 공존입니까? 하나님이 처음이 인류를 창조하실 때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한 몸에 양성을 지니고 있다가 분화되어서 후대에 남녀가 된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1장 27절의 그들을 창조했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문에는 있지만 번역된 개역 성경에는 없습니다만 그들을 창조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존여비는 타락한 후부터 생겨난 병폐이지요. 남자가 존재하는 한 여자는 비참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피조물은 단지 유(species)를 따라서 창조되었지만 인간은 유를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즉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졌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류를 초월한, 공존을 특수 과제로 부여 받은 존재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