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62

May 3, 2019
설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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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도 요한이 성육신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은혜와 진리의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은혜와 진리!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세상에 나오기 전, 영계에는 어떤 형태로 있었을까요? 빛과 사랑! 저 영계에는 빛과 사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고,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 자체이십니다. 영계에 가득 차 있는 하나님 사랑이 이 땅에는 은혜로 나타났고, 영계에 가득 찬 신령한 빛이 인간 세계에는 진리로 나타났습니다.

성도들인 우리의 삶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진리를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자:

VBS:여름 성경학교 교가/흰구름 뭉게 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 오른다/손에 손 마주 잡은 우리 어린이 발걸음 가벼웁게 찾아 가는 길/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아 진리의 성경 말씀 배우러 가자!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경 말씀에 관심이 없었고, 재미 있는 게임, 즉 소창 시간이 제일 기다려 졌지요.

Very boring school/vacation bible school

 

진리가 무엇인가?

세상이 말하는 진리는 누가 보아도 보편 타당성이 있고 어느 시대에서도 보편 타당성이 있었고, 세계 어느 곳에 놓아두더라도 보편타당성이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시각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지면 달리 보이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돌을 가지고 사냥하던 옛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최첨단의 과학 기술 문명을 다루는 현대인들에게도 똑 같이 옳다라는 것이 진리입니다. 앞에서 보거나 뒤에서 보거나 중간에서 보더라도 달리 보이지 않은 것이 진리입니다. 어제 보아도 오늘 보아도 그리고 내일 본다고 할지라도 바뀌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여자가 보던 남자가 보던 아이가 보던 어른이 보던 동양인이 보던 서양인이 보던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찾고 찾아서 가지고 있는 물리법칙, 화학법칙, 또한 경제 원리들 이 모든 것들은 이 세상이 변화되면 무용지물, 한시적인 진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리인가? 무엇이 진리가 아니라 누구가 진리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석존이 진리인가? 아니다. 공자가 진리인가? 아니다. 마호메트가 진리인가? 진리 일리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가 진리인가? 오직 예수가 진리이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 보고 독선적이라고 말할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예수께서 유일한 진리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요14: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선언은 우리 주님 예수의 입에서 나온 선언입니다.

히13:8절<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느라>

현 세상에도 예수는 진리이고, 다음 세상, 즉 내세에도 예수는 변함이 없는 진리이십니다.

 

빌라도처럼 살지 맙시다. 빌라도는 자기 앞에 있는 진리를 보았지만, 진리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리는 장식품일 뿐!

요18:37절/<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에서 우리 주님이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하자,

요28: 38절/<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우리 주님은 자신이 진리 자체임을 밝혔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곧바로 관정 밖에서 떠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로 나가 버리지요.  진리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눈 어두운 자들의 대표격이다. 어두움을 밝히는 불빛은 맹인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진리는 장식품일 뿐! 돼지에게는 진주보다는 먹는 것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빌라도 타잎의 인생들이 교회 안과 밖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떤 벼락부자-품위 있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책방에 들러서 책을 사는 데 사는 의도가 집안을 장식할 장식품으로 책을 샀다는 것 아닙니까?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씀들이 또한 진리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신 구약 성경 말씀이 진리입니다. 성경 말씀은 오고 가는 모든 세대에 있어서 진리입니다. 인류가 지은 죄로 파멸에 이르렀을지라도 이 성경 말씀만 있으면 현재의 문화와 문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40:8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변함이 없는 우리 하나님의 말씀!

 

*약1:18절/<그가 피조물 중에 우리로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 모두는 진리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을 거슬러 살 것인가? 세상과 더불어 살 것인가? 세상과 타협하면서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 것인가?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일과 방종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세상 가운데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교회 와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중적인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삶이다. 세상의 행사를 따라 가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행사가 악하다고 책망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따라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진리를 위하여 살자! 세상과 더불어 살 것인가? 세상을 거슬러 살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양자 택일, 어떤 가치관을 따라서 한 평생을 살 것인가?

 

진리를 거슬려 살지 말고, 진리를 위하여 살고, 진리에 순응하여서 살라! 고후13:8<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성도는 세상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성도는 세상과 짝이 되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 풍조와 세상 사람들이 사고 방식과 세상 사람들이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 가치관을 따라서 살게 되면 교회는 성령 불을 잃어 버리게 되고, 성령불이 꺼져 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지옥불 속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교회가 세상과 같아지면 교회 안이나 교회 밖이나 같아지지요.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교회에 들어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어제 신문에 한국 강남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문짝 만하게 보도 되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집단 패싸움’강남 교회, 주말 수 백 명 2차 충돌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게제 된 사진과 그림은 어떤 사람이 소화기로 창문을 깨는 사진이 실려 있고, 아래 쪽 사진에는 취재현장 사진이 게재 되어 있는데, 사진과 함께 이런 제목이 실려 있습니다:네 이웃을 줘패라? 대치동 대형 교회 패싸움! 강남의 이 교회는 약 2만명 정도가 모이는 큰 교회입니다.   이 사건은 원로목사파와 담임목사파 사이에서 일어난 집단 패 싸움입니다. 거친 몸싸움으로 부상을 당해서 몇 사람이 병원으로 이송되어 간 모양입니다. 수서 경찰서 기동 타격대가 현장에 출동한 모양입니다.

이 사건의 보도를 들으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합니다. 이런 집단 패 싸움을 한 사람들이 그 교회 전부 2만명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 열심이 특심한 분들 약 70명이 얽혀서 싸웠던 싸움입니다. 담임목사파 50명과 원로목사파 20명 사이의 싸움입니다. 대 다수의 교인들 2만명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싸움입니다. 70명 때문에 전체 교인들이 싸잡아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 전체가 싸잡아 욕먹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동 거지 하나 하나가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욕을 먹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래서야 쓰냐? 라는 말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 놓아야 합니다.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세상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켐연장 교회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세상 속으로 들어 갈지라도 세상 밖에서도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닮아서 되는 부정적인 그룹들;

분봉왕 헤롯(헤롯 안디바)처럼 살지 맙시다.

대 헤롯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는 세례요한을 참수했습니다. 대 헤롯이 자기의 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 헤로디아는 헤롯 안디바에게는 제수입니다만, 그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 결혼은 불의한 일이라고 책망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세례요한의 말을 달게 들었고 번민하면서도 그 결혼을 정리하지 못하고 거기서 빠져 나오질 못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진리대로 행하지 못했습다.  진리는 알았지만 진리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을 존경하기는 했지만, 자기의 체면 때문에 세례요한을 참수했습니다.

유대 총독인 벨릭스 총독처럼 살아서도 안됩니다.

행 24:25절/<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 벨릭스 총독이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전해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 틈이 있으면 부르겠다고 말합니다. 벨릭스가 진리는 알았지만,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리를 알았지만, 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면 진리가 주는 혜택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아니 성경 말씀인 요한 복음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진리의 세계에 안 들어가고 진리를 알기만 해도 진리가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까? 없지요!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지적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릭 단어는 단순히 지적 인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하며 깊이 체험 하여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피상적으로 아는 삶을 삽니다. 소금쟁이 인생을 산다는 말입니다. 소금 쟁이는 물 표면만 있으면 됩니다. 깊은 물이 필요 없습니다. 진리의 세계는 큰 바다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로 들어간다면 현재에 누리고 있는 것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진리의 세계로 선뜻 들어 설 수 있는 결단을 못합니다. 그냥 어디에서 놉니까? 해변가에서 조개 껍대기나 주으면서 삽니다.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해변가에서 누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진귀한 것이 많은데도 그것을 누릴 생각은 못합니다.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두려움  때문에 말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깊고 넓은 바다로 나아갑시다.

 

닮아야 그룹들은?

진리를 듣자 곧바로 영접하고 그 진리의 세계로 결단하여서 들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의 12제자들, 70인 전도단, 니고데모, 공회원 요셉, 교회사 시대의 수많은 순교자들,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모범을 보인 분들입니다. 고매하고 높은 인물들도 있지만, 아무도 후세대가 기억해 주지 못하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진리를 따라서 한 평생 살다가 천국에 들어간 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평신도인 우리들이 모범(model)으로 삼고 따라야 할 인물을 한 분 소개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요한 삼서에 나옵니다. 누구일까요? 데메드리오라는 분입니다. 모두다 이 분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요.

데메드리오의 삶! 요삼1:12절/<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  -그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은 인물이라고 장로 요한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뭇사람은 예수 믿는 형제들을 가리키고요, 진리라는 잣대로 데메드리오의 삶을 재 보아도 데메드리오는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했던 일은 무엇일까요? 그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손대접! 자기 주위에 가난하고 밥 굶은 이들을 먹여주고 재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헐벗고, 굶주린 순회 전도자들을 집으로 모셔다가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성경에는 진리가 참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대접은 진리체계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입니다. 개별 진리들이 모여서 모든 진리, 즉 진리체계를 형성합니다. 데메드리오가 행한 손대접, 이런 선한 일이 오히려 심한 반대를 교회 안에서 일으켰습니다. 누가 데메드리오의 구제 사역을 반대했나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주축이 되어서 순회 전도자들에게 그런 접대를 못하도록 방해하고 금지하기 까지 했습니다. 순회 전도자들을 자기 집으로 모셔 와서 접대하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요삼1:8절애는 마땅한 일이다라고 장로 요한은 평각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거지에게 접대하는 일도 선한 일인데, 하물며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는 일은  선하고 의로운 일인데도 디오드레베가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반대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데메드리오는 손대접하는 것이 진리이기에 그 확신을 굽히지 않고 행했습니다. 보통 이런 반대에 부딪히면 말 나는 것이 싫어서 손접대를 그만 두어 버리지요. 그러나 데메드리오는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섬기는 일을 그만 두지 않았습니다. 순회 전도자를 집으로 모셔 들이고 잠자리를 제공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일은 큰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입니다. 집이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리는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내가 행하는 작은 일이 진리에 합한 일이라면 비방과 반대에도 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사수합시다. 진리 사수-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행동과 우리의 말이 진리의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라면 반대가 있을 지라도 굽히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진리 사수입니다.

 

*요삼1:8절/<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진리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있으면 우리는 그에게 힘을 실어 주고 그의 동역자가 되어서 진리를 파수합시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베소서 6

바울이 로마 병사의 무장을 소개하면서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무장 가운데서 바울이 제일 먼저 거론한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거론했겠지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진리의 허리 띠’!  왜 제일 먼저 나올까요? 모든 힘의 근원이 허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기 전에 헐렁헐렁한 허리 춤을 띠로 묶은 다음에 활동을 하지요. 디스크 환자? 신문지 한 장을 들 힘도 없습니다. 모래는 바람에 날리나 물 속에 있는 모래는 바람에 날리지 않는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진리를 믿는 데서 나옵니다.

성령을 받으라

깨달은 진리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되는 일은? 성령이 해답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살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이곳에 나왔습니다. 위로부터 능력이 덧입혀 져야 세상을 거슬러 살 수 있게 됩니다.  이 능력을 받지 못하고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세상 살이 동안 참된 삶이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번민하면서 살지요.

마치 소돔 성안에 살았던 롯처럼 고민하고 번민하면서 그러나 소돔성의 죄악을 거슬러 살 수는 없었지요. 의로운 심령이 상하면서 살게 되지요. 모든 것 다 잃어 버리고 겨우 롯은 목숨만 살았지요. 이렇게 살지 않기 위하여 오늘 우리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 능력은 성령의 능력! 우리 주님이 하늘로 가시면서 주시리라 약속하신 것! 허락되었으니 믿음으로 이 시간 간구하여서 그 능력이 덧입혀 지기를 바랍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 가지만, 구름에 달 가듯이 세상의 악들에게 굴하지 않고 세상을 거슬러 살아 갈 수가 있지요. 우리는 세상이 악하다고 하여서 산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절연하여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지만, 세상을 거슬러서 살아 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절간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한 복판에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요16:12-13절<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수 많은 진리들! 그 중에 하나라도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진리를 붙들고 한 평생 살기를 바랍니다. 데메드리오처럼 말입니다.

/요일2:27절<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기름부음이란?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현장에서 선악을 가르치고, 바르고 의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가정 생활, 학교 생활, 직장생활(사회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고 의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인지를 확실하게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찬양 팀 앞으로>

세상과 더불어 살 것인가? 세상을 거슬러 살 것인가? 결단하기 바랍니다. 세상을 거슬러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가? 이것은 의지와 결단의 문제다! 그런 소원이 있다면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성령의 능력을 갈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을 거슬러 사는 것이 오히려 영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줄 것이다. 큰 기쁨과 함께! 죽은 물고기는 물살에 떠밀려 내려 가지만, 살아 있는 송사리는 거센 물결을 차면서 거슬러 올라 있습니다. 교회가 크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영적으로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