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66

June 7, 2019
설교자:
Service Type:

이번 주일이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성령이 임하신다면,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1. 성령이 임하시면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수학.물리.공학에서는 스칼라와 벡터라는 용어가 사용이 됩니다. 스칼라는 단지 크기만 있고, 벡터는 크기뿐만 아니라 방향도 가지고 있습니다. 방향과 크기를 가지고 있는 물리량인 벡터는 우리의 실 생활에 대단히 요긴 하지요.
성령을 받기 전의 나의 삶은 크기만을 가지고 있는 스칼라입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의 내 삶은 보다 분명한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내 삶은 방황하게 되지요. 여기도 기웃거리고 저기도 기웃거리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요? 성령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내 삶은 가지런히 정리됩니다. 새롭게 깨닫게 된 내 인생의 목적을 위하여 나의 전 에너지가 집중이 됩니다. 내 에너지를 다른 데 낭비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 삶의 방향이 설정되고 나는 그 방향으로 달려 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면 내 삶은 스칼라에서 방향이 생겨난 벡터로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경우;
삼상16:13/

어떤 배경이지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왕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국부인 사무엘에게 사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될 재목으로 다윗을 선택하게 되지요. 사무엘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베들레헴 촌 구석에 살고 있는 이새의 아들들을 모두 불러 모았고, 그 중에서 막내 아들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부음이 있고 난 후부터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즉 성령께서 다윗에게 힘차게 내려 왔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이후부터 다윗의 삶에는 꿈, 즉 비전 생겨났다. 그 꿈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양이나 치면서 한 세상 살아야 할 목동이 임금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이지 않겠는가? 다윗은 이 날 이후부터 이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되지요. 자신의 전 에너지를 어디에 쓰게 되었을까요? 왕이 되는 데 썼겠지요. 온 종일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루는데 전 삶을 투자하였지요.

모세의 경우;
출3:2/

어떤 배경이지요? 모세가 40년간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모든 학술을 다 연마한 후에 왕궁을 떠나서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지요. 그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목동의 삶을 살지요. 40년이 마쳐지는 어느 날 모세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지요.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떨기 나무가 후루룩 거리면서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 가운데서도 떨기 나무는 사라지지 않지요. 떨기 나무에 붙은 불은 자연적인 불이 아니라, 성령불이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불붙은 가시 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 불이 무엇이라고요? 불 같은 성령, 즉 성령불! 이 성령불을 받은 후에 모세는 이드로의 양떼를 돌보는 목자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여호수아의 경우;
신34:9/

어떤 배경이지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자 했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범죄함으로써 이스리엘 백성이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지요. 출애굽 한 1세대가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에게 가나안 땅 정복 사명이 주어지지요. 출애굽 한 후에 세월은 이미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세가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지요. 모세의 뒤를 이을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을 지도자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차기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무엇이 임합니까? 지혜의 영이 여호수아에게 임하였습니다. 그 지혜의 영이 무엇이라고요? 우리들이 받아 누리고 있는 성령님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무슨 삶의 목적이 주어졌다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서 요단강을 건너게 한 후에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는 과업을 이루게 하지요. 여호수아에게 성령이 임하므로써 생겨나게 된 삶의 목적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임한 지혜의 영인 성령은 이후에 예언자들에게로 들어 갔고, 예언자들에게 임하였던 성령은 먼 미래에 오게 될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게 되었지요.

우리 주님의 경우;
마3:16-17/

어떤 배경?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론 이 세례는 침례교회에서 주장하듯이 요단 강물에 몸 전체를 침수하는 그런 세례였습니다. 머리까지 요단 강물에 잠근 후에 수면 위로 머리가 올라 올 때에 우리 주님 예수께 하늘이 쫙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그리고 갈라진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의 머리 위에 내려 오셨지요. 그렇게 내려 오는 모습이 마치 비둘기가 땅에 내려 앉는 그런 모습이었다는 말입니다. 비둘기 같은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의 머리 위에 임하시므로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지요. 예수의 공생애가 무엇이라고요? 인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그 일이 그의 공생애의 목적입니다.12제자를 키우고, 훈련 시키고 병자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추방하는 사역도 있었지만, 그의 공생애의 백미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에서 목자로 바뀌었습니다.

모세에게 미디안 광야에서 임하였던 성령께서는 출애굽의 과업을 완성했고, 그 성령 불은 여호수아에게 임하여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는 과업을 완성했습니다. 그 성령은 예언자들에게로 그리고 다윗 왕의 후손들에게로 들어 갔고, 역사의 종말에는 주 예수에게로 임하여서 인류 구원 사업을 마침내 완성하셨습니다.

Life is wonderful:인생은 경이(wonder)로움으로 가득 차(full)있습니다. 성령불을 받은 사람들은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불을 받아서 삶의 목적이 생긴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크기로만 존재하던 자신의 삶에 방향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자신의 전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루라고 주신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 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에 목적이 없고, 방황하고 부평초같은 삶을 산다면 당신은 성령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20:22 이 명령은 부활하신 우리 주님 예수의 명령입니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잡으라, 취하라, 붙들라! 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삶은 가지런해질 것이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요? 크기만 있는 스칼라에서 방향도 가지게 되는 벡타로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2. 성령이 임하면 내 삶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영안이 열린다.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영안이 열리면 이 세상을 바라보되 영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2:17-18절/

예언과 환상과 꿈! 구약 요엘 선지자 시대에 예언되었던 이 일들이 우리 주님이 오시고 나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모두 성령이 임하므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다윗: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사울 진영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골리앗의 장대한 키와 그의 무장을 보고서 겁에 떨었습니다. 골리앗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용사 중에 용사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외면적인 것만 보았지요. 그러니 참호 속에 박혀서 두려움에 떨었고, 감히 골리앗을 상대로 1:1 승부를 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의 눈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골리앗의 장대한 위용이 있는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할례 없는 백성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시체나 다름 없다고 다윗은 판단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담대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갈렙/민14:9,민13:33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12명으로 구성된 스파이를 보냅니다. 그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돌아 다니면서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조사하지요. 그들이 그 땅에 대한 탐사를 마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보고하지요. 그들의 보고는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한 부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나머지 열명이 낸 보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악평했고,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나 크게 보았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민13:33절에 나와 있는 데로 그 땅에 있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을 보았기에 자신들은 메뚜기 같은 존재들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혀 다른 보고를 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은 정말로 아름다운 땅이고, 그들이 비록 거인족으로 기골이 장대하나, 그들은 우리의 밥, 우리의 먹이감이다.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두려워 말라고 선포하였지요. 같은 대상을 보았지만, 10명의 대표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은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40년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시길 기도해야 겠습니다:우리의 마음 눈, 즉 영안을 밝히소서!
엡1:17-18절/
마음 눈, 영안이 밝아져야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명백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마음 눈이 어떻게 밝아 지나요?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이 임할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3. 성령이 임하면 또 내 삶에 무슨 일이 생기는가?
담대함&당당함이 생긴다. 어떤 일을 만나도 쫄지 않는다. 내 손에 있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엄청난 일을 하나님이 하게 하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다윗의 물매돌
삼상17:39-40, 삼상17:45-50/
다윗의 물매돌 날리는 실력! 이것은 그가 목동 시절에 갈고 닦았던 실력이다. 이것이 골리앗을 제압하는데 사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윗이 시내가에서 매끈매끈한 돌을 다섯 개를 골랐다. 적어도 다섯 개 가운데 하나는 골리앗을 맞출 수가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골리앗의 약점도 한 눈에 간파했다. 면상(이마)이 약점임을 알았다. 물매 돌을 하나만 가지고 나갔다면 다윗의 믿음은 허황된 믿음이다. 그러나 5개를 골랐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다섯을 취한 것은 아니다. 믿음과 함께 자신의 기술이 결합되었다. 물매돌은 쿠르즈 미사일이 아니다. 다윗이 실수했다면 골리앗을 죽일 수가 없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겼습니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이 나타나 있습니다: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내가 나의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우리의 손에 넘기실 것이다. 이런 담대햔 신앙 고백을 하고 난 후에 골리앗에게로 달려 나가면서 물매돌을 날려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골리앗과의 싸움을 일으키신 것은 다윗이 성령을 받은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므로 그에게 이런 담대함이 생긴 것이지요. 모든 이스라엘 진영이 골리앗의 위상 때문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사울도 두려워 했고, 사울의 군대 장관인 용사 중의 용사인 아브넬도 떨었던 골리앗이었습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에게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그가 담대하게 되어서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물매돌로 말입니다.

모세의 경우;모세의 지팡이
출4:2,17절/
나무로 만들어진 말라 비틀어진 지팡이가 바로의 권세 있는 금홀을 이겼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고 있는 그 지팡이로 10번의 바로와의 싸움에서 모세는 승리했습니다.
고전 1:25절/

삼손의 경우;나귀 턱뼈
삿15:15-16/

오병이어 기적: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셨다.
요6:9절/

장정만 오천명이나 되는 군중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그것을 사용해서 물질을 불어 나게 하셨고, 그리고 온 군중으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 만드셨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 혼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자기가 먹지 않고 주께 드렸더니 주께서 그것을 사용하셔서 배고픈 오천명을 먹이셨다는 말입니다.

왜 물질창조의 능력이 있는 예수께서 물질 변형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보리떡을 밀로 된 빵으로 바꾸고, 작은 생선을 양갈비로 변환시켜서 대중들에게 주었다면 엄청난 찬사가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대중들은 보리떡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행복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물질 변형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그 아이가 주께 드린 것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우리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을 드릴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우리들이 드린 작은 것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이 물질창조의 능력을 행하실 때에 겨우 허기나 면할 정도의 양을 준 것이 아니라, 배가 터질 정도로 많이 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실 때에 쫀쫀하게 안 주십니다. 풍성하게 넘치게 주십니다.

세 번째로 우리 주님이 남은 것을 버리지 말고 모두 거두라고 명하셨고, 거두었더니 12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왜 주님이 이것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했을까요? 다음에 다시 물질을 창조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명하신 이유는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쓸 것을 넘치도록 주시지만, 그것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헌금을 풍성하게 사용하되 낭비하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싶으십니까? 나의 학식, 나의 돈, 나의 기술, 나의 경험, 나의 몸, 나의 시간, 그 어떤 것도 좋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면 우리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여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십니다.

당신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져 있나? 실력을 갈고 닦으라!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당신 손에 있는 작은 것이 큰 역사를 만든다.
나의 모든 경험 지식 기술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심지어 나의 약점까지도 사용하신다.

예수의 12제자들;
우리 주님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주님이 체포 될 때에 모든 제자들이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평시에는 호언장담했습니다. 주를 위하여 죽겠노라고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막상 죽음의 자리에 이르자 모두 뿔뿔이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약하던 제자들이 오순절을 지나자 강한 자들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서슬 시퍼런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전혀 쫄지 않았습니다. 채찍으로 맞는 것도 마다 하지 않았고, 옥에 투옥 되기도 했고, 예수를 위하여 고난 받는 일을 즐거운 일로 받아 들였습니다. 무엇이 사도들을 이렇게 변화되도록 했을까요?

찬양팀 앞으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 때문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눈으로 보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나약한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오순절날 임하신 성령 때문에 강하고 담대한 신앙인으로 바뀌었지요.
오늘을 살아 가는 켐연장 교회 성도들도 모두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담대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세상 때문에 쫄지 말기를 바랍니다. 쫀다는 것은 간이 콩알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