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69

June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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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원리(법칙):하나님이 나를 떠나게 되면 나를 괴롭히는 대적들이 내게 달려 든다. 그러나 떠나 있던 하나님이 내게로 돌아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나를 괴롭히는 나의 대적들이 나를 떠나게 됩니다. 대적들이 나를 치기 위하여 한 길로 들어 왔지만, 일곱 길로 도망을 치게 된다고 신명기 28장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언제 떠나시는가? 내가 죄를 지속적으로 지으면 나를 떠나 하늘로 돌아 가십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하늘로 돌아가 계시는가요? 호5:15절에는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면 대적들이 달려 들고, 하나님을 내게로 모시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요? 정반대의 일이 일어 납니다. 대적들이 일곱 길로 도망을 가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늘로 돌아 가신 우리 하나님을 내 삶에 다시 모실 수 있을까요?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으면서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죄에서 돌이키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로 다시 오십니다.
지금은 하늘로 돌아가신 우리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다시 모실 때입니다.

의인의 마음(심령)을 주소서!
/의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의인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 갑니까? 의인은 즐겁고 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의인은 애통해 하는 자, 곧 우는 자들이다. 웃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멸망의 길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눈물 짓고 기도하는 자들이 의인이다.

바울의 눈물? 돈이 없어서, 병 때문에? 아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 때문에!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들인 불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일을 위하여 눈물 짓고 기도했다. 특히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일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울인데 어떤 열정을 가지고 원했는가?
롬9:3절에 의할 것 같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지옥형벌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원하는 것이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마음 출애굽 후에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 와서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을 때에 산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론의 주도로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대노하여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레위인들을 시켜서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을 그날에 3천명이나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다시 산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그 백성을 사하여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지요. 만약 하나님이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면 차라리 자기 이름을 생명 책에서 제하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백성들은 모두 지옥에 들어가 있는데 나 혼자 천국 들어가 있으면 뭐합니까? 나도 이 백성과 함께 지옥에 들어가겠습니다 하는 이야기이지요. 동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나오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심령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어땠습니까? 죄인들을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하게 통곡하면서 피땀 흘려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찌르는 무리들의 죄를 사면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는 만고의 의인입니다.
/노아의 마음? 방주에 들어가던 날 그의 심령은? 승리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은 무덤에 들어가는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홍수 가운데서도 살았지만, 다른 모든 사람들은 수장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겔9:4
의인의 마음-불신 세계의 죄악에 대하여 분노를 표출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고대로 죽는다면 영원한 지옥 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을 위하여 눈물짓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의인의 심령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의인의 심령이 되는가? 성령이 임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의인의 마음은 나의 본래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비로소 가지게 되는 마음입니다. 성령께서 창조해 주시는 마음입니다. 이웃이 자신이 지은 죄로 재난을 맞았을 때에 보통 세상 친구들은 혀나 끌끌 거리면서 몇 번 차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들의 재난이 바로 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재난을 걸머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영적 성장을 추구하라!
벧후3:18 명령형이지요. 자라가라! 성장하라! 영적인 성장을 가리킵니다. 예수 은혜와 예수 지식이 늘어 가기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예수 지식도 있어야 하고, 동시에 예수의 은혜도 있어야 하고요. 균형 잡힌 신앙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 믿고 난 후부터 얼마큼 영적으로 성장했는가?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체 되어 있는가? 아니면 믿음을 떠나서 배교했는가?

///인간의 외면적,육체적 성장은 20살 즈음에 멈춘다. 나무처럼 우리의 육신적인 성장이 죽을 때까지 일어난다면 큰일날 일이지요. 우리 인생이 죽을 때까지 외적인 성장을 한다면 몸무게는 kg단위가 아니라 톤 단위로 계산 되어야 하고, 몸무게 1톤, 2톤, 키는 cm 단위가 아니라 미터 단위로 측정되어야 하고요. 키가 10m, 키가 20m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집은 점보 주택으로 바뀌어야 하고, 우리는 식량난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20세 전후 하여서 성장판을 닫아 버리시니 육신적인 자람이 스톱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성장(우리의 내면 세계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사실 내면세계의 성장이 육체적 성장이 멈춤과 동시에 멈춘 이들이 많습니다. 이와 보조를 같이 하여서 정신세계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영적인 성장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영적 성장이 멈춘 이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천국 문에 들어 갈 때에 자라나지 못하여서 기저기 차고 젖병 빨면서 천국 들어가는 신자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교회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신앙생활 했지만 말입니다.
우리의 내면 세계는 마치 가든과 같습니다. 가든, 꽃밭을 망치자면 돌보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온갖 잡초들이 무성하게 가든에 자라나면서 꽃밭은 그만 망가져 버리지요. 가든을 이쁘게 손질을 매일 매일하지 않으면 가든은 망가지듯이, 우리의 내면 세계도 매일 매일 가꾸고 돌보고 해야만 내면세계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세 종류의 성도-예수 영접한 후에 자라지 못한 성도, 예수 영접한 후에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 버린 배교자, 예수 영접한 후에 매일 새롭게 자라나는 성도! 일신우일신, 정진 또 정진!

/// 첫 번째 타잎의 성도-영적 성장이 정체 되어 있는 성도! 옛 생활, 죄 된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 믿는 믿음을 가져서 성도가 되었다. 회심(회개+믿음)체험을 하고 나니 무슨 생각이 드나? 현재에 내가 누리고 있는 구원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현실에 안주해 버립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하지요. 미지의 세계, 깊은 저 바다 속=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냥 얕은 물 가에서 노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예화! {밤기차 타고 있는 어떤 승객/특실을 끊었지만, 붐비는 3등칸에 앉아 있는 승객 이야기}

///두 번째 타잎의 사람-배교자, 영성이 다운 그레이드 되면서 신앙 세계를 떠나 버리는 배교자에 대한 이야기, 이런 사람들이 이전에 회심 체험이 있었을 것인데, 그들의 회심체험은 가짜였을까? 가짜도 있었지만 진짜도 있었을 것이다. 가짜와 진짜의 구별은 영적으로 변화되었느냐 안되었느냐로 판별한다. 가짜는 영적인 변환(지정의-인격의 삼요소)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적(지성적)인 변환, 사고체계의 변환 정도일 것이다. 마음과 심령에 깊은 영적인 변환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반면에 진짜 회심은 영적인 차원에서 전환이 일어난 회심체험이다.

히6:4-6
한번 빛을 받았다는 것은 다멕섹에서 바울에게 일어난 그런 일이 그에게도 일어 났다는 말입니다. 이런 체험은 너무나도 분명한 체험이지요. Born again한 신자, 거듭난 신자입니다. 하늘의 은사, 즉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은사도 받았습니다. 방언도 하고 능력 행하는 은사도 받아서 귀신도 좇아 내고 하면서 엄청난 사역도 했지요. 성령에 참여 하였다는 것은 성령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이 일어났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말씀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체험했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깊이 할 때에 비로소 얻어지는 경험입니다. 말씀의 맛! 내세의 능력은 현 세계에서 경험 되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서 경험 되는 일입니까? 내세에서! 내세에 들어가야 경험 되어 지는 일을 현 세상에서 미리 맛을 봅니다. 내세의 능력은 맛 보는 일이지요. 내세의 능력을 누리는 일은 내세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현 세상에서는 그것을 맛 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영생은 현세상에서는 누리는 것이 아니고, 맛보는 것이다.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세에 들어가야만 된다. {부엌에서 귀한 손님을 위하여 음식 준비하는 부인이 음식을 맛보기로 하나 먹어본다. 영생은 맛보기이다.} 이런 정도의 신앙 생활하는 성도라면 진정한 회심 체험을 한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가 배교자가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배교가 무엇일까? 신앙 때문에 세상에서 받는 시련과 고난 때문에 의지적인 결단으로 이제까지 믿어 왔던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6장에서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전제로 두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박해와 핍박 속에 놓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핍박과 시련이 넌더리 나기 때문에 믿음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유대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은 아주 집요했습니다. 그래서 1세기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핍박과 시련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이 믿음에 굳게 붙어 있으라 라는 메시지를 주로 전하면서 권면했지요. 행11:23절, 행13:43절 참조. 갈라디아 교회의 경우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인데, 갈3;3라면서 책망했습니다. 십자가 은혜를 체험했고, 성령 받았고, 고난과 핍박 속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 했지만 십자가 신앙을 버리고 유대 율법주의로 돌아 섬으로써 배교했다.

오늘 우리들의 시대, 현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탄은 핍박과 세상 유혹이라는 것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우리로 하여금 배교하게 만든다. 주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개탄-사1;21절 청교도 정신이 살아 있는 보스톤-그리스도의 문화권이 살아 있을 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있지를 않습니다. ETC. 그리스도인들! 믿음 가운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문화권 속에 살아 가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산다면…? 밭의 비유를 써서 그들이 맞을 운명을 히6:7-8절에서 기술했다:밭이 채소를 내지 못하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될 것이다. 가시와 엉겅퀴는 불로 사른다. 이론적이고 신학적인 근거? 겔18:24절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 선고! {외줄 타기, 살얼음판 걷기}

////세 번째 타잎의 성도-일취월장 신앙의 성장, 영적 성장을 가져 오는 신앙인. 히6:3절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완전한 대로 나아가리라=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한대로 나아가리라! 이렇게 말하는 성도들의 삶의 목표를 세속적인 성공에 두고 있는가? 아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데 두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일,task)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의 영혼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일 자체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이 이루어지는 동안 이루어지는 성도의 영혼의 성장을 보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일을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일을 선택하신다. 하나님이 내게 이루라고 내신 숙제(과제, 프로젝트)는 순풍이나 역풍도 맞을 수가 있다. 순풍, 역풍에 관계없이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안일한 삶을 그리스도인이 살 때가 가장 무서운 때이다. 역경으로 나 쉬지 못하지만, 배는 앞으로 나아간다. {요셉의 경우, 다윗의 경우} 엡4:15, 벧후 3:18절

무엇이 중요한가? 소유냐 존재냐? 업적(돈,성취)이냐? 업적들은 모두 모두 소멸되는 것이다. 이승에서 저승까지 가지고 가는 것은? 이 땅에서 성취한 영적인 진보는 영원히 내 것이다. 불멸의 인격!
하나님이 역사의 마지막 날에 나를 심판하실 때에 어떤 기준에 의하여 심판하실까? 내 이웃과 비교하시면서 심판하실까? 너는 왜 베드로처럼 못 살았나? 너는 왜 바울처럼 못살았는가라고 심판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시는 근거는 너는 왜 너답게 못 살았느냐로 심판하신다.

찬양 팀 앞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나를 보내실 때에 내가 세상에서 되어 있어야 할 그 영혼의 모습(인격)을 계획해 놓으셨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을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요즈음 말로 하면 잘 생긴 배우의 얼굴로 성형하고 있다. 못생겼지만 자연 그대로 나의 모습, 개성 있는 나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영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누구 닮지 말고 바로 본래적인 나의 영혼의 모습을 가꾸어가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알아야 그런 삶을 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