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70

July 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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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금요일에는 영적 성장에 대하여 그리고 의인의 마음에 대하여 설교 했습니다. 의인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심령이 상하여서 우는 사람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성도 여러분의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까? 교회가 성령 불을 잃어 버렸기에 세상 사람들이 지옥불에 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제 회개하고 성령불을 다시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이 다시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과거에 성령 충만이 이제 다시 재충만 되게끔 기도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자기의 악행을 자랑하나, 성도는 흘린 눈물을 자랑해야 합니다.
창4:23-24절/ 라멕은 아담의 7세손입니다. 그가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자기의 악행, 자기의 죄악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는 누가 더욱 큰 악행을 저질렀는가에 따라서 서열이 매겨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악행을 자랑하고 떠 벌리지요.
그러나 의인은 무엇을 자랑하냐고요? 흘린 눈물을 자랑합니다. 세상에 넘쳐 나는 죄악 때문에 의인들은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가득한 죄악들을 멸하기 위하여 십자가 지셨는데도 사람들이 십자가 앞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옛 시대에는 죄악 때문에 망했지만, 지금은 죄악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을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망합니다. 죄악을 사하는 길이 이미 우리 인생들에게 환하게 제시 되었습니다. 십자가로 인한 속죄의 길을 우리 하나님이 2천년전에 이미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십자가에서 사라졌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영국의 어떤 교도소에서 찰리피스라는 사형수가 사형을 당할 때에 했던 고백입니다. 형목이 성경을 꺼내서 사형직전에 찰리피스에게 졸리는 듯한 음성으로 읽어 주었습니다. 찰리 피스가 물었습니다. 읽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그 형목이 종교적인 위안이라고 귀찮은 듯이 짧게 대답했습니다. 이에 찰리 피스가 이렇게 말하지요:만약 당신이 믿고 있는 그 진리가 참되다고 내가 믿는다면 나는 영국 이 바다에서 저 건너편 바다까지 유리조각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맨발로 걸어 가서 버려진 영혼들을 구원하겠노라고 말했다지요.
교회가 성령불을 잃어 버렸기에 사람들이 지옥불에 들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새롭게 교회가 새롭게 깨닫고, 다시금 성령불을 받아서 땅끝까지 가야 할 것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에게 임하였던 성령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였던 성령불을 켐연장 교회는 다시금 사모해야 겠습니다.

2. 우리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무엇을 들고서 나가야 할까?
구약 시대의 백성들은 무엇을 가지고 성전으로 나아갔을까요? 그들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소도 드렸고, 양도 드렸고, 염소도 드렸고, 비둘기도 드렸고, 비둘기를 드릴 형편이 안되면 고운 밀가루 한 움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배는 동물을 잡아서 각을 뜨고서 그것을 모두 태워서 연기를 하늘로 올리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할 때에 드린 제사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로 받아 주었습니다. 이것을 구약 제사에서는 번제bunt offering이라고 불렀지요. 구약 시대의 제사는 차등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장 값진 제사는 수소를 잡아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왜냐하면 수소가 가장 값나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제물이 얼마나 값이 나가느냐에 따라서 제사의 가치가 결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러 가야 합니까? 오늘 금요 예배 드리기 위하여 손에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왔습니까? 또한 매 주일마다 주일 예배 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까? 제물로 드릴 동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구약 시대의 백성들처럼 우리들도 손에 십일조와 감사 헌금과 선교헌금 등등을 들고 예배하러 나가야 합니까? 손에 물질이 들려져 있어야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빋으시나요? 그렇지 않지요. 우리의 예배가 예배다운 예배가 되어서 우리 하나님을 흡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에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고, 신앙 간증이 있어야 하고, 찬양과 감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고백, 신앙 간증,찬양과 감사등등은 모두 비물질적인 것들입니다.
신앙 간증과 찬양과 감사;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는 일들, 기이한 일들, 구원행동들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와서 간증하면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셨다고 진술합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감사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확실히 기쁘시게 만듭니다. 이것들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깨닫게 된 신앙고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가 궁지에 몰려 있었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오셔서 우리를 건져 주실 때에 우리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 깨달음을 신앙고백이라고 부르지요. 그런 신앙고백을 가득히 담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우리는 예배 드립니다. 그 신앙고백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고백이 없는 예배는 무당 푸닥거리에 불과합니다.

구약 시대 주전 8세기 예언자 호세아 선지자도 이미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호14:2절/
수 송아지가 구약의 최대의 예배였는데, 그러 수 송아지 대신에 무엇을 입술의 열매를 드리겠답니다. 입술의 열매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 사역에 대하여 찬양하고 감사하는 말들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신 줄 믿습니다.
시69:30-31절/,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찬양을 통하여, 위대하신 하나님! 즉 하나님은 크시다 라는 신앙고백을 말하고 있지요.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은 우리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당신은 어떤 신앙고백을 이 시간 가지고 나아 왔습니까? 예수는 당신에게 어떤 분입니까? 이것이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주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그리스도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다. 우리가 믿는 예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즉 예수는 온 우주의 왕이시고, 또한 예수는 저 하늘 영계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또 어떤 신앙고백을 더 하고 싶으십니까? 우리 인류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로 씻어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분이십니다. 즉 예수는 속죄자이시다는 신앙고백 말입니다. 수 많은 신앙 고백이 성경에는 기록이 되어 있고, 나의 삶의 정황 속에서 그런 우리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되었을 때에 우리의 입에서 주님은 이러 이러한 분이시다 라는 고백이 나오지요.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 주님을 체험하게 될 때에 그런 신앙고백을 가슴에 품고 우리 주님 앞에 나와서 고백하면서 엎드려 경배 드립니다. 이런 예배가 하나님을 지극히 기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런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을 통하여 알아야겠고, 두 번째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해 보아야겠지요. 성경공부가 필요하고,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도 필요하고요. 성경공부에서 얻어진 신앙고백은 간접 경험이고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것은 직접 경험이지요. 어! 성경 말씀이 진짜네 라는 고백을 하게 되지요.
엡3:12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담대한과 확신이 어떻게 생기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신앙고백이 있을 때에 생기지 않는가?
히4:16절/
왜 이런 담대함이 생기는가? 우리는 거지가 아니라 아들과 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신앙고백을 하기 때문인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에 나갈 때에 이렇게 당당히 하나님의 돕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하게끔 우리는 만들어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저 멀리 계시는 절대 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기에 내 삶에 부단히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 아버지 노릇하게 조건을 내가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3. 숯.겉사람.속사람:
고후4:16-17절/

우리의 겉사람은 무엇이고 우리의 속사람은 무엇인가요? 사실 우리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하나로 되어 있어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따로따로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신자들이건 불신자들이건 겉사람과 속사람이 연합되어 하나 되어 있는 인격체입니다. 한마디로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우리의 겉사람은 우리의 몸을 가리키고, 우리의 속사람은 우리의 마음, 즉 우리의 영혼을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의 몸인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진다. 즉 겉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파멸되고 무너지면서, 죽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종내는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속사람은 어떻다고요? 우리의 영혼은 괴멸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예수 믿는 우리의 속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새롭게 되어집니다:일신 우 일신! 새롭게 되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짐으로 우리의 영적인 삶이 더욱 풍성하게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의 영혼은 우리의 겉사람인 우리의 몸을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영혼이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부단히 우리의 겉사람인 몸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거듭나지 않는 자연인들은 그들의 영혼이 무엇을 위하여 일하나요?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이용하여서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성령으로 다시 살게 됨으로써 오감을 통하여 외부세계로부터 들어 오는 정보를 토대로 우리의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하지요.
오늘 우리들이 금요기도회에 나온 이유도 바로 거듭난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몸을 이곳 기도하는 자리로 오도록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을 잘 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한 세상 사는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의 속사람을 더욱 새롭게 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성령으로 중생한 후에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냥 우리의 속사람이 쑥쑥 자라나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에 우리의 몸 속에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넣어 주셨더라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현재보다는 훨씬 수월했겠지요. 우리의 영혼, 즉 우리의 속사람이 자라나고 새로워지기 위하여 우리는 부단히 힘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속사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겉사람을 잠시 동안 어떻게 했다고요? 환난을 당하게 하였다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잠시간의 우리의 겉사람이 당하는 시련 때문에 무슨 열매를 거둔다고요? 영광을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영광은 지극히 큽니다. 또한 그 영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세상 사는 동안에 받는 고난과 시련은 지극히 작은 것이고 또한 일시적입니다. 그런 일시적이고 작은 시련들이 사후까지 아니 영원한 세월 동안 존재하게 될 영광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아닙니까?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는 과정 중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난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겉사람에게 가해진 환난과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지요. 새로워진 속사람의 모습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요즈음은 부엌에서 전기나 개스를 사용해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옛 시대에는 부엌에서 나무를 사용해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조금 생활 형편이 나은 분들은 숯을 사용해서 밥을 지었지요. 요즈음은 불갈비를 구울 때에 참숯을 사용하지요. 참숯을 사용하면 그냥 개스로 구울 때마다 참숯 향기가 배어서 더 맛이 있지요. 숯은 참나무를 600도 정도 되는 숯가마에 불을 붙여 놓고 가마를 봉인하여서 놓아 두면 참나무가 불완전 연소하여서 참숯이 만들어지지요. 생 참나무에 불을 붙여 놓으면 연기가 장난 아니게 많이 나지요. 그러나 참숯은 연기가 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겉사람에 환난과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겉사람이 모두 처리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임종하게 되면 우리의 겉사람이 모두 깨끗하게 완전히 처리 되는 것이지만, 숯처럼 우리들이 현재 살아 있는 동안에 모두 처리 된다면 우리의 속사람은 완전해 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겉사람이 처리된 성도들이 주의 일을 행하게 된다면 이웃을 괴롭히는 연기를 피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처리 되기 위하여 해야 하는 일은 숯가마에 들어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실 일입니다. 현재 시련과 고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온전하게 완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숯가마에 잠시 넣어 두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시간은 잠시 동안입니다. 그런 시련과 고난을 견딘 다음에는 참숯이 되어서 숯가마를 나오게 될 것입니다.

찬양 팀 앞으로!

시련은 잠깐이 입니다. 오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 가운데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들을 오랜 기간의 시련 가운데 놓아 두면 우리들이 무너지기 때문에 잠시 동안만 고난과 시련 가운데 놓아 두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잠시 동안의 환난을 통하여 영원한 세월 동안 없어지지 않는 속사람을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그래서 하늘 세계로 우리들이 들어 갈 때에는 성장한 모습으로 성숙한 영의 모습으로 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