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76

August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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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소리를 많이 들어 왔습니다. 회개하면 천국을 얻는다.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영광을 얻는다. 기도하면 바라는 것을 얻는다. ~하면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당신은 그런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하여 금요기도회에 나왔습니다. 물론 나의 바람이 탐욕에서 나오는 바람이 되어서는 안되지요.

은혜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물론 인간 쪽에서 조건을 만들었다고 하여서 자동적으로 기도응답이 일어난다 거나 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과학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공기 중에 있는 수소 분자 두 개와 산소 분자 한 개가 만나면 물이 됩니다. 이것은 예외 없습니다. 이것은 화학 법칙이지요.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조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인격이신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결과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조건을 만들었으니 내가 바라는 결과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은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건을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도응답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조건은 그야말로 그 일을 하나님이 이루시는데 필요할 뿐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요즈음 말로 한다면 입사할 때에 신청서를 내면 자격 미달인 사람을 걸러 내는데, 그것이 바로 구비조건, 즉 필요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그 필요조건이 충족 안되면 아예 심사조차 할 수가 없지요.
우리는 필요조건을 만들어 놓고 겸허하게 하나님의 허락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조건을 만들어 놓기 위하여 이곳에 나아 왔습니다.

탈가면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고난과 시련이 닥쳤다면 무엇을 하면 되는가? 내게 닥친 환란의 바람을 그치게 하는 방법은? 도망치면 되는가? 누구처럼 카인처럼? 아니다. 죄를 지었어도 살길이 있는데, 그 길은 하나님의 품 안으로 뛰어 들면 된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는다. 태풍의 언저리에서 비행기가 날고 있다면 엔진의 힘이 태풍을 이길 수 없으면 비행기는 땅에 떨어지게 됩니다. 태풍을 피하여 달아나지 말고 태풍의 중심부로 날아 가면 죽지 않고 산다. 왜냐하면 태풍 중심부는 무풍지대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태풍의 진로를 따라서 무풍지대 안을 날아가면 안전하지요.
신 앞에서 솔직히! 주님 앞에 내가 지은 죄를 다 고하리라! 이것이 죄인인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 없다. 하나님께로 나갈 때에 가면 쓰고 나가는 사람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내게 가면 쓰고 나오신다.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신께 모든 가면을 내려 놓고 진면목 그대로 깨어지고 상한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한다. 탈가면! 우리가 사회 생활하면서 가면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 가기 위하여 준비하는데, 간단하게 샤워하고 옷을 입고 그리고 화장을 하면 전혀 딴 사람이 되어서 집을 나서지요. 치장,단장,화장,무장,변장,가장, 이렇게 하다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탈 가면 하고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서야 합니다.
어떤 화가가 집 나간 탕자의 모습을 켄버스에 담고 싶어서 모델을 찾아 헤메었습니다. 찾고 찾다가 드디어 집 나간 탕자의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화가는 거지에게 내일 자기의 사무실로 나와서 모델이 되어 주면 돈을 많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날 이 거지가 화가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화가가 그 거지를 보자 당신을 모델로 쓸 수 없노라고 퇴자를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거지가 화가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에 그만 몸을 씻고 단장하고 말쑥하게 해서 화가에게로 갔기 때문입니다. 화가가 필요로 했던 것은 초라한 거지의 모습이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자가 되어도 살 수 없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워도 우리는 살 수 없다. 나약한 인생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 밖에는 없다. 죄를 자복하는 길 밖에는 살길이 없다. 품 속에 뛰어 드는 아이들을 회초리로 치는 엄마는 없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내 품 안으로 뛰어 드는 내 아이에게 회초리를 치는 냉혹한 엄마는 없다. 왜? 자식에 대한 엄마의 긍휼히 여기심!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 앞으로 나아 왔습니다. 우리의 가면을 내려 놓고, 우리의 진면목을 하나님께 보여 드려야겠지요. 어떤 기도? 하나님, 나 이래요! 우리의 지은 죄를 진솔하게 자복하고 용서를 구해야겠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이 시간 떠 오르는 죄악들을 우리 주님께 자복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그 죄를 지을 때에 생긴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유해 주십니다.

박제 신앙
몇 해 전에 카톨릭뉴스지-‘지금 여기’라는 곳에 실린 내용입니다. 신부 이름도 나와 있지만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어떤 얼빠진 신부의 옹아리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서 신학 박사 학위 받은 양반인데, 2012년도 ‘나는 저승을 믿지 않는다’라는 칼럼을 냈습니다. 저승은 기독교에서는 천국을, 불교에서는 극락을 말하는데, 이 분은 신학자이면서 저승, 즉 내세를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특히 부활 사상에 대하여는 부활이라는 것은 다시 살아 나는 것인데,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나는데, 다시 사는 것은 없다고 그 신부는 말했습니다. 단지 살아 있는 동안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부활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의 부활은 첫 제자들에 의하여 목격된 사건이고, 참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참으로 비참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살아 나셨기에 그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니 그 십자가가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피흘리신 사건으로 깨달아지거든요. 대속의 십자가, 복된 십자가!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성이 제거되면 기독교 신앙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내세를 부인하고, 부활을 부인하고도 사제 노릇을 하고 있다니 개가 풀 뜯어 먹는 일이고, 우수꽝 스럽군요. 참 정신 나간 사제이고 얼빠진 신부이네요.
박제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동물을 잡아서 속을 제거하고 가죽과 털만을 가지고 동물의 모양만 살려 놓은 것을 박제라고 부르지요. 사람도 정신과 얼이 빠진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박제 인생! 기독교 신앙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부활이 빠진다면 무슨 신앙이 되나요? 박제 신앙이 됩니다. 박제 동물은 모양은 있으나 생명이 없지요. 박제 신앙도 기독교 신앙의 무늬는 있으나 생명력은 없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삶의 철학:예수 나의 기쁨!
어떤 그리스도인의 삶의 철학? 기쁘게 살다가 평안히 나 여기 잠드노라! 우리 주님이 나를 깨우러 오실 때까지!
지금 당신은 기쁘게 살고 있는가? 우리 주 예수께서 지금까지도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기쁩니까? 예 기쁩니다. 주 예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려 주셨고, 주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찢어 주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예수의 사랑이 파도처럼 내 삶에 밀려 들어 옵니다. 한 파도가 지나가면 그 다음 파도가 또 내게 밀려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이 말입니다.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의 사랑을 받아서 행복하지만, 더욱 큰 행복은 내가 우리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하였노라! 심장의 더운 피가 식는 그날까지, 눈에 흙이 들어가는 그 날까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겠노라. 그를 사랑하고 섬기기에 매일 매일 행복한 삶을 보내길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큼 소유할 수 있는가? 1/16억만큼 소유하는가? 피자 한판을 5명이 나누어 먹으면 1/5씩 먹게 되나,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방식은 다르다. 하나님을 전부 소유한다. 무한 하신 하나님의 일부분을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을 전부 소유한다. 이점이 신비하다. 만약 내가 하나님 사랑을 1/16억을 받는다면 전도하여서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내가 받을 하나님의 사랑은 줄어 들게 되겠지요. 그러면 내가 받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하기 위해서는 전도해서는 안되겠지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큼 지금 받고 있는가? 내가 깨달은 만큼 받고 있다. 내 의식이 확대되는 만큼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는다. 빛 조리개의 원리! 조리개를 덮고 있는 가리개를 열면 열리는 만큼 빛이 많이 들어 오지요.

요15:11절 내 안에 있는 기쁨은 우리 주님이 가지고 누리고 있는 그 기쁨입니다. 세상 기쁨은 돈 많이 벌 때에 기쁨이 생깁니다. 원하고 추구하던 일을 성공하면 기쁩니다. 이런 기쁨은 모두 세상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도 우리는 한 세상 사는 동안 필요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게 되고 신앙을 갖게 되니 세상 기쁨과는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열심히 그 기쁨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주의 일을 힘씁니다. 이런 기쁨은 사역의 기쁨입니다. 열심히 뭔가 주를 위하여 봉사할 때에 얻는 기쁨입니다. 이웃을 섬기고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내가 가진 은사를 가지고 우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찬양대로 봉사하고, 교사로 봉사하고, 불신 이웃에게 전도하고, 남이 하기 싫어 하는 그런 분야에서 봉사하면서 기뻐합니다. 이런 기쁨을 무엇이라고요? 사역의 기쁨이라고 부르지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이것이 다 인가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이런 기쁨이 다가 아닙니다. 이런 기쁨보다 더욱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뭔가 주를 위하여 몸을 움직이면서 봉사하고 헌신하지 않더라도 얻을 수가 있는 기쁨입니다. 그냥 하늘을 향하여 우리 주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열어 만 놓아 주면 우리 주님이 열린 그 마음 속에 주님 자신의 기쁨을 그냥 부어 주십니다. 이런 기쁨을 무엇이라고요? 주님의 기쁨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무언가 노력하여서 얻는 기쁨이 아니고, 내가 주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내가 노력하여서 얻는 기쁨이 아니고 그냥 하늘에서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주님 자신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주를 위하여 일하므로써 얻어지는 기쁨이 아니고 주님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생겨 나는 기쁨입니다.
요15:11절/
요17:13절/
우리 주님이 우리들의 영혼을 하늘로 항하여 열어 두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라는 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하여 우리에게 우리 주님의 기쁨을 부어 주십니다. 꼭 주님을 위하여 남보다 다른 어떤 그 무엇을 헌신하고 희생하였을 때에 부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 때문에 이 기쁨을 부어 주십니다.
예수의 제자,70인 전도단이 전도 사역을 마치고 우리 주님께 돌아와서 선교보고 했을 때에 우리 주님이 친히 그의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병자들에게 안수하면서 병자들이 치유되는 것 정도만을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제자들이 환자의 몸에 포제스 되어 있는 악령들도 명령을 내리니 추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일로 인하여 대단히 고무 되었습니다. 주님께 돌아와서 자신들이 행하였던 일들을 낫낫이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주님이 이런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지요.
눅10:20절/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등재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만이 하늘나라 호적부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요. 내가 예수를 영접하던 그 날에 내 이름이 하늘 나라 호적부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주님을 더욱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 주님이 그 기쁨을 더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외칩니다. 예수가 나의 기쁨이라고!

아내 사랑;
엡5:28 엡5:33
“남성들이여, 주방을 점령하라”라고 어떤 분이 이런 칼럼을 썼습니다. 이 말의 의미가 뭘까요? 남자와 여자들은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여자들은 할 일이 많지만, 남자들은 그냥 삼시 세끼 집에 눌러 앉아서 밥을 얻어 먹다 보면(식충=밥벌레) 부인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로, 부인에게 구박을 받지 않으려면 음식을 손수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주방을 점령하라는 이 말은 딱 밥만 지어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편이 설겆이도 하고, 세탁기도 돌릴 줄 알아야 하고요, 집안 청소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남편들은 평소 두 여자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자동차에 달려 있는 내비 걸, 내비 언니이고, 다른 한 여자는 자기의 아내입니다. 남편들은 30대-결혼 초부터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30대에 아내의 말을 잘 들어 보면서 훈련을 하면 40대에 이르러서는 아내의 말 그 배후에 있는 숨은 뜻 마져도 캐치할 수 있게 됩니다. 본래 남자들이 좀 둔해 가지고 말입니다. 말을 액면 그대로도 잘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한데, 말 그 이면에 있는 뜻을 분별하라고 한다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니 훈련을 해야지요. 복선이 깔려 있는 아내의 말들의 배후를 파악하는 것 말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여자들이 직설적으로 이야기 못하고 에둘러 말할 때에 그것을 캐치할 수 있어야 좋은 남편이 됩니다. 보통은 남편들이 ‘어 제 왜저래’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보통 30, 40대에는 부부 싸움을 많이 하지요. 싸우다 보면 남편들은 말이 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남편이 아내에게 ‘그만 씨그러워!’하면서 호통을 칩니다. 그러면 관계 단절이 일어나면서 아내는 그 힘에 눌려서 조용해 지지만 아내의 마음에는 앙금이 남고 분노가 차곡 차곡 싸여 가지요. 열불 터지니 집에 있을 때에는 집 밖으로 나가 버리지요. 차 타고 있으면 차 세우라 하고 문 열고 내리지요. 열불 터져서 말입니다. 차가 달릴 때는 내리지도 못하고 분노가 배가 되어서 심령에 쌓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지면서 10년 20년 쌓이지요. 그러면 언제 그 분노가 폭발하나요? 50대가 되면 나타납니다. 50대가 된 남자들은 참 불행합니다. 부모님들이 80대가 되는데, 부모님 봉양해야 지요. 자식들이 대학, 대학원 다닐 텐데 또 조금 지나면 아이들 장가가니 시집가니 하면서 뭉태기 돈이 들어가잖아요. 50대이면 또 무슨 일이 생깁니까? 몸 이곳 저곳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창문도 흐려지고, 기둥도 흔들리고 대들보도 흔들 흔들 거리고요. 아이들은 모두 타지로 학교 나가 있고 큰 집에는 남편, 아내, 중 늙은이만 집에서 외롭게 집을 지키지요. 외로움도 감당 못할 정도이지요30,40대들 50대에 가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 부인의 말을 잘 들어 주는 훈련을 하기 바랍니다.
찬양팀 앞으로!
그렇지 않으면 50대에 가서는 자기 아내로부터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어떤 보복? 50대가 되면 아이들 모두 밖으로 내 보내고 큰 집에 살면 적적하거든요. 그러면 집 팔고 아파트나 혹은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지요. 이사 갈 때에 부인이 남편을 떨구어 놓고 안 데리고 가는 수가 있지요. 50대 이후부터 혼자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도 좋다는 분은 자기 아내를 젊을 때부터 구박해도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