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82

October 4, 2019
설교자:
Service Type:

광고사항
드디어 다음 주 금요일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선교 하시는 윤미경 목사의 선교보고가 있습니다. 교회가 거의 25년 가까이 선교 후원을 하면서 기도해 왔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날, 10/11일은 기도회 나오지 않는 분들도 권면하여서 함께 참석하여서 지난 25년간 그 선교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간증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0/13일 주일에는 윤목사님의 설교가 있겠습니다.
부탁말씀:10/10일부터 10/15일까지 윤선교사 내외분의 점심과 저녁 식사 대접을 원하시는 분들은 사인업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집에서 식사 대접하기 부담스러우시면 식당에서 간단하게 대접하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 그냥 선교사 내외분만 조촐하게 식당에서 대접하시면 됩니다. 제 아내와 저는 대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울러 윤목사님 초청을 위하여 목적 헌금을 드리고 싶으시는 분들은 주일날 예배 시간에 드려 주시길 바랍니다.
개자랑:
요즈음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것을 꼴불견이라는 말로 표현하지요. 자기집에서 키우는 개자랑 하는 일입니다. 개 발에 양말을 신겨 놓지 않나, 조끼도 입혀 놓지를 않나, 한 걸음 더 나가서 그런 개를 품에 안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개가 너무 좋아서 오줌이라도 찌리거나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말입니다.
지난 번에 산호세 아들네 집에 갔었는데, 그 집에서 키우는 조그마한 애완용 개, 이름이 팍스입니다만, 그 개가 나를 보더니 반갑다고 내 품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곧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내 양복에 그만 오줌을 싸 버렸습니다. 개가 나를 보고 너무 좋다고 반기는 인사가 그거였습니다.
몇 해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턱 탔는데, 그 안에 어떤 아줌마가 작은 애완용 개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모양입디다. 개 한테 그 아줌마가 말하기를 삼촌한테 인사하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내와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 아줌마가 그런 말을 하자 품에 안고 있던 그 개가 왕왕 그러면서 짖잖아요? 왕왕 그러는 개 짓는 소리가 마치 ‘삼촌 안녕’그러는 것 같지요. 졸지에 그만 제가 그 개와 삼촌관계가 맺어져 버렸습니다.
한국 살고 있는 처남네도 개를 키웁니다. 한국 나가면 처남네 집에서 한 달 가량 머무르는데, 개 이름이 토리인데 야가 글쎄 말이에요 훈련이 전혀 안되어서 천방지축天方地軸입니다. 집안에 있는 기둥이라는 데는 모두 그 개의 소피 보는 장소입니다. 부엌에 있는 식당 테이블의 다리에서 소피 보고, 방에 있는 침대 다리에도 싸고, 그리고 리빙룸에 있는 소파 다리에도 싸고, 베렌다에 있는 기둥에도 싸고요. 기둥이 있는 데 모두 다 오줌 싸는 데 입니다. 개털이 집안에는 가득하고요. 온통 집안이 개 때문에 정신이 사납습니다. 그래서 개 훈련을 받기로 했는데, 개 훈련 하시는 분이 이 개를 보더니 이 개가 아주 머리가 샤프하고 영리하다고 칭찬을 했다는 군요. 그랬더니 그렇게 천방지축인 그 개를 처남 내외가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아주 자랑스러워하면서 그 개를 더욱 사랑스러워 하더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자식 자랑&손자.손녀 자랑;
부모가 자식 자랑하면 그것을 팔불출이라고 부르지요. 팔불출은 못난이, 바보라는 말이지요. 아내 자랑과 자식 자랑은 못난이 축에 듭니다. 남들 한 테는 자식과 아내를 자랑하면서 집에 들어가면 자식과 아내를 학대하는 것은 나쁘지만, 남들한테 자랑하듯이 집에 들어가서도 자식과 아내에게 잘 해 준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지요. 요즈음 같은 세상에는 애비가 자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멀리 내다 버리거나 패 죽이기도 하는 각박한 시대에 그래도 자식을 귀하게 여기고 자랑한다는 것은 좋은 부모이지요. 옛날에는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자기의 손자 손녀를 자랑하는 것은 더욱더 당연하지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 손자손녀를 자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 문제가 많지요. 바쁘게 사느라고 제 아들과 딸에게는 못해 주었기에 노년이 되어서는 손자와 손녀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하는 일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팔불출은 확실히 아닙니다. 정상적인 멘텔리티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우리 교회에 있는 아가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습니다. 더욱 많은 아가들이 태어 나야 합니다. 아기를 갖고 싶으나 아직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신 분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속히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가들을 보면서 이쁘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아기들이 성장하여서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인가를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환상이고 비전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무엇이 나옵니까? 기도가 나옵니다. 어떤 기도? 부모가 자기 아기를 위하여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지요. 만약 없다면 아기가 이쁘기만 하지 기도가 나오지 않지요.

연합에 대하여;
지 지난 주에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쉬 부서지기 쉽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 때문에 쉬 부서지는 교제는 또한 쉽게 회복이 됩니다.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께 지은 죄를 자복하고 용서받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교제가 회복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연합은 다릅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끊어 지거나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도대체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당신은 하나님과 연합 되었습니까?
고전6:17절/
주님과 연합이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연합이라는 말입니다. 반면에 결혼을 통하여 두 청춘 남녀가 하나 되는 것도 연합인데, 그 연합은 몸의 하나됨, 몸으로 연합하는 일이지요. 창세기 2:24절/ 남편과 아내의 결합은 육신적인 연합이고 하나님과의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영과 육으로 결합된 무엇이라고요? 전인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 육체가 없는 영적 존재이십니다. 우리들도 육신이 있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연합이 가능합니다. 동물들과 하나님 사이에 영적인 연합은 있을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동물에는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영적인 합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영접하면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이런 연합을 예수 영접하므로써 이미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인 연합이 얼마나 견고한가가 문제입니다. 이런 연합이 끊어 질 수가 있는가? 절대로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극심한 시련과 고난과 환난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 연합은 결코 끊어 지지 않습니다.
롬8:38-39절/ 이 진술은 바울의 확신이고 동시에 이것은 우리들의 확신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할렐루야!

충성과 반역;
시18:1절/
우리는 주님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탄 마귀가 세상 유혹을 가지고 우리를 꾀일지라도 그 유혹에 넘어 가지 않는 것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사탄 마귀가 우리를 핍박과 박해를 가할 때에 그런 핍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죽기까지 예수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고 충성입니다.

계2:10절/
죽도록 충성하라! 죽기까지 믿음을 지켜 내라 라는 말이지요. 죽음이 두렵고 무서워서 배교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죽음은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최대의 무기이지요.
죽기까지 충성스럽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늘 불순종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자신이 반역하고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지요. 이런 성도를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염소 같은 성도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지금은 순종 잘 하는 양이지만, 언제 염소처럼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염소와 양은 존재론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염소가 불순종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면 양이 되고, 양이 자기의 생각과 고집과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고자 하면 뭐가 됩니까? 염소가 됩니다.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착각하고 붙들고 살기 때문에 염소가 된다는 말입니다. 염소를 왜 양들이 있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이 제거하지 않는가? 염소를 사용해서 양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단단하게 빚고 훈련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염소가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염소로 쓰이고 싶으십니까? No! 염소가 그런 역할로 사용되고 나서도 우리 하나님에게 칭찬은 커녕 책망을 듣는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한 교회 안에서는 양 노릇하는 성도도 있고, 염소 노릇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노릇이 중요합니다. 노릇은 역할을 의미합니다. 참 감사하게도 우리는 불순종하기는 해도 가롯유다와 같지는 않습니다. 가롯유다는 근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비록 불순종하더라도 하나의 근원,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습니다. 불순종하는 성도를 볼지라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길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한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이유는 그렇게 불순종하면서 어그러진 길로 계속 가다가는 멸망당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으로 한 번 돌아가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영도 하에 출애굽 한 후에 광야에서 40년을 방랑하면서 살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영적 지도자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문제를 삼으면서 반역했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반역의 무리를 아십니까? 바로 고라가 주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라의 반역이라고 부르지요.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동조를 했습니다. 민수기 16장에는 이들의 반역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고, 왜 시작이 되었고,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사건 일지는 이와 같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에 도전장을 냈습니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지휘관이 무려 25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항하자 하나님께서는 고라 일당들과 아론에게 향로에 불을 담아서 회막 앞으로 나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250명의 지휘관과 이들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고라 일당들과 함께 회막 문 앞에 모이지요. 모세가 이들에게 말합니다. 고라 일당들 주위에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 고라 일당 주위에서 떠나라고 촉구하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고라 일당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시겠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접하고 두려워했던 무리들은 고라 일당에게서 떠나지요. 모세의 심판 선고가 곧 따르고 고라 일당과 그의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가 지진으로 함몰 되면서 그들이 산채로 땅에 묻혀 모두 멸망당하지요. 그리고 하나님께 향로를 들고 분향하던 250명의 지휘관은 불에 타서 모두 죽게 됩니다. 이것을 본 무리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을 하면서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지도부를 죽였다고 비난하기에 이르지요. 통회하면서 회개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무리들을 향하여 진노를 발하자 염병이 온 무리들 가운데 발병했습니다. 모세의 중보 기도가 있었고, 아론이 향로에 향을 피어서 속죄하자 염병이 그치게 되었지요.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만 사천 칠백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건 개요입니다.

자 그런데, 왜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여서 반역을 일으켰을까요? 모세와 아론이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지도자로 있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일어난 반란입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에 속해 있는 모세와 아론과는 사촌 관계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도 레위 지파로서 그런 자리를 탐하면서 자신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고라가 주동자가 되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불만 세력들을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포섭된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다단과 아비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레위 지파가 아닙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입니다. 야곱의 장자가 르우벤입니다. 그러나 르우벤 지파는 장자 지파이지만, 범죄로 인하여 장자의 지위를 잃어 버린 지파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지파의 리더가 되어서 르우벤 지파 회복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명성과 지위를 얻으려 했던 고라와 의기투합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온이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이 어느 지파의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고라의 반역에 단순 가담자였을 것입니다. 온이 심판을 받아서 죽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서 일찌감치 고라와는 뜻을 같이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라 일당들은 모세와 고라 사이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이야기 하면서 그들을 포섭했습니다. 그렇게 포섭한 사람들이 지휘관이 250명이었으니 그 지휘관에게 딸린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이 반역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반역을 하자면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고라 일당은 무슨 명분을 내 세웠을까요? 그들의 구호는 back to 애굽! 왜 애굽인가? 애굽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민 16: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16:13절/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고 애굽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상적부터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귀가 아프게 말씀하셨는데, 고라 일당은 광야에 있는 이 백성들을 거짓말로 꼬득이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고 애굽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면서 출애굽은 잘못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이 아니고 향 애굽! 젖과 꿀이 흐르는 애굽으로! 이것이 이들의 구호 였습니다. 광야에서 헐벗고 배고픈 이들은 옛날 애굽의 고기 가마 앞에서 떡을 먹던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back to 애굽을 따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세와 아론에게 속해 있는 무리들에게는 이빨도 안 들어 가는 말이었지만, 중간 라인에 서 있는 이런 자들은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 있지 않았기에 고라 일당의 논리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애굽 하면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짓고 살 것을 기대했는데,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서도 그 땅에 들어 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리더십은 문제가 있는 리더십이고 생각했기에 고라 일당의 감언이설은 불평과 불만이 쌓인 무리들의 마음에 어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교회가 분열되어 질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반대파들이 중간 라인에 있는 사람들을 포섭하여서 교회를 장악하려고 할 때에 일어 납니다. 마치 고라 일당이 주장한 back to 애굽과 같은 구호를 그들은 외칩니다. 싸우고 갈라지는 교회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이 진술은 사실입니다. 분열되는 교회에서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주장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지요.
우리 고라 일당처럼 되지 맙시다. 켐연장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닫고 그 바탕 위에서 교회 생활합시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 뜻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