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83

October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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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카톡에서 읽었던 내용입니다. 왜 신자들이 설교를 많이 듣는 데도 불구하고 경건한 삶에 있어서 진보가 더딘가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기 때문이고 깊이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찰스 스펄전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지요. 동의하십니까? 성도의 영적인 진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나 설교 말씀을 통하여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일어나서 그 말씀대로 살아 갈 때에 영적인 성장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고금을 통하여 변함이 없는 진술입니다.

하나님을 priority no 1에 두자/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은 무슨 약속을 받았나? 없는데요 하시는 분들, 성경 말씀이 모두 약속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금광과 같습니다. 이 금광 속에서 금맥을 발견하고 금을 캐십시요. 영의 눈을 뜨고서 금맥을 발견하고서 금을 캐내십시요. 황금덩어리의 약속들이 성경 곳곳에는 묻혀 있습니다.

마6:33절
육신 생활에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인 외면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모든 삶에서 선택하는 일을 할 때에 priority를 어디에 두라고요? 하나님께 두라는 말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물질적인 부요함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프라이오러티 넘버 1을 하나님께 놓아 두는 삶을 사면 하나님께서 육신적인 삶을 부요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섬기면서 살 때에 당신은 어떻게 섬기는가? 항상 하나님은 세 번째가 아니던가? 3등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프라이오러티 3번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항상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프라이오러티 넘버 1에 놓지를 않았습니다. 1등은 내가 원하는 것, 2등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3등은 뭐예요. 시간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하나님 섬길 때에 자투리를 가지고 섬기지 않았는가? 시간이 나면 하나님께 시간을 드립니다. 내가 바빠지면 제일 먼저 희생되는 시간이 큐티시간이고 기도 시간이 아니던가요? 내가 번 돈도 나를 위해서 쓰다가 남으면 드리고 모자라면 안 드리지요. 입신양명을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주님 위해서 정작 시간을 쓸려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아서 차차 섬기지요 하면서 미루어 버리지요. 자식들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정렬을 쏟아 부으면서 주님 위해서는 인색하기 그지 없지요. 이러니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더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더하시는 하나님! 세상 것을 덤으로 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못 만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안 해 주는 것에 대하여 원망만 쏟아 놓았지요. 하나님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냐고 말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누리고 살고 싶은가? 하나님을 프라이오러티 넘버 one에 두고 삶을 살아 보라! 그러면 풍성한 물질의 복을 누리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마리 양의)번제
왕상3:4-5/

기브온 산당에서 를 드렸다. 기브온? 일천 번제? 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었다.

9-10절/

선악을 분별하는 이해, 즉 지혜를 달라. 재판 과정에서 말입니다. 왜 재판일까? 부왕인 다윗이 이미 주위에 있는 모든 주변국들을 정복하여서 봉신국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더 이상 정복 전쟁이 필요하지 않았고, 이제는 내치에 힘써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 안에 법을 세우고, 제도를 정비하고, 사람 사람 사이의 분쟁을 공의롭게 처리해야 나라가 안정되지요. 사람 사람 간의 분쟁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내분이 생겨서 나라가 폭삭 망할 수가 있지요. 그렇기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사람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 그 송사를 잘 듣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지혜 뿐만 아니라 무엇을 더해 주셨습니까?
첫째로 부귀영화를 주었다. 13절/
이 부귀 영화라는 물질적인 축복은 조건이 붙어 있지 않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온전하게 사느냐 안 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개차반같이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부귀 영화를 주겠다는 선언입니다.
두 번째로 장수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14절/
장수의 축복을 솔로몬이 받았지만, 솔로몬은 장수를 누리지 못했지요. 솔모몬은 60살 정도 살았습니다. 다윗은 70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수의 축복을 솔로몬에게 주었는데, 왜 60살 정도에 죽었을까요? 이 장수의 복은 하나님께서 grant로 주는 축복이 아니고 조건이 붙어 있는 축복입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만일! 네도 네 아버지 다윗처럼 내 뜻을 따라서 산다면 장수의 복을 너에게 주겠다는 말이지요.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면 솔로몬이 무슨 짓을 하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오래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기에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율법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만 합니다. 솔로몬의 도대체 무슨 짓을 했나요? 애굽의 공주를 후궁으로 맞지를 않나, 부왕이 정복한 정복국의 공주들과 혼인하면서 나라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공주들이 예루살렘 들어 오면 무엇이 따라 오나요? 공주들이 섬기는 신들과 우상들이 함께 들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말년에 순수한 야훼 신앙보다는 혼합주의 영성으로 솔로몬이 기울어지게 되었지요. 솔로몬은 하나님이 요구하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마 6:33절/
하나님의 조건이 붙어 있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세상 것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안으로 들어 왔기에 그냥 세상 것에 대한 축복이 자동적으로 따라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프라이오러티 넘버 원으로 놓고 산다면, 즉 삶의 원칙을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산다면 세상 것을 풍성하게 더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훈련 장소
너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너와 나를 성전 돌로 꼽아 넣기 위하여 나를 다듬고 훈련 하는 장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본다면 내 인생관은 달라집니다. 내 인생에 불어 닥친 환난과 고난과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시련과 고난과 환난을 통하여 더욱 큰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왕상6:7절
본문에 나오는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제 1성전은 주전 959년에 솔로몬이 건축하여서 완공했지요. 그러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불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불타 없어진 자리에 다시 성전이 세워지지요. 그 성전을 제 2 성전이라고 하는데, 스룹바벨이 주전 516년에 완공했지요. 이 제 2 성전은 대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을 확장해 나갔는데, A.D.63년경에 확장 공사를 마쳤다. 그 후 7년이 지난 AD.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하여 제 2 성전도 불타 없어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운명을 같이 하는 성전공동체입니다.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 곧 나라가 멸망하는 때이다. 유대인은 나라 없는 족속으로 온 세상에서 diaspora로서 살다가 1945년에 나라를 재건했다. 현재는 예루살렘에 무슬림 사원(Dome)이 세워져 있다. 유대인들 가운데 다시 성전을 그 자리에 세우기 위하여 은밀히 준비하고 있다. 그 성전을 제 3 성전이라고 부른다.

솔로몬이 건축한 제 1성전은 기초 석(큰 돌/영어로는 coner stone이라고 부름)이 놓이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손질하여서 쌓아서 석조 건물로 지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석조 건물이었다. 성전을 지을 때에 성전 건물에 쓰일 돌들은 채석장에서 뜨고 정으로 다듬은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겨 와서 조립식으로 맞추어 넣었다. 성전 구내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라고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하여 성전 비유가 신약 성경 베드로서에 나옵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성전과 성전돌과의 관계라는 말입니다. 연합을 강조한 비유입니다.

벧전 2:4-7/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성전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구약 성전은 기초석 위에 작은 다듬은 돌들이 놓여져서 석조건물을 이루고 있다. 이 기초 석은 어마어마하게 큰 돌입니다. 이 주춧돌 위에 작은 돌들이 쌓여서 석조 건물을 이루는데, 그 석조 건물이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 기초 석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전의 하나 하나의 돌들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라고 베드로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택함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고, 우리들은 산 돌 같아서 신령한 집(spiritual house/성전, 상징적인 집)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돌 하나 하나가 성전을 이루어 가는데 요긴한 돌이다. 만약 성전을 이루는 그 많은 돌들 중에서 하나라도 없으면 성전이 완공되지 않는다.

찬양 팀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이 돌들을 얻었는가? 세상에서! 세상 속에서 선택했고, 훈련시켰다. 석수장이가 끌을 가지고 돌을 쪼아서 돌을 채석장에서 준비했고, 그것을 성전으로 옮겨와서 조립함으로써 성전을 완공했다. 솔로몬이 완공한 제 1성전은 소리 내지 않고 지어진 성전! 이 세상은 우리들이 성전의 돌이 되게끔 하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석수쟁이 모양으로 우리를 성전돌되게끔 쪼아서 만들었습니다. 어디가 그 작업현장입니까? 예루살렘 성전? 아니지요! 채석장, 즉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쪼아서 성전의 돌 되게끔 합당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지금 내가 처한 현 상황이 하나님이 나를 빚어 가시는 의도가 있는 자리다! 감사하라! 성전 돌로 쓰시기 위하여 아픔을 참아내라!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내가 성전을 이루는 한 돌이 되어서 하나님을 그 속에 모실 수 있는 성전의 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나의 영광입니다. 그런 영광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정으로 쪼여 나가는 아픔을 참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