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92

December 20, 2019
설교자:
Service Type:

십자가는 대속 사상이 핵심입니다. 십자가 이해는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서 죽었다’라는 명제 아래서 이해 되어야 한다.

사 53:6절/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내가 나의 죄값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그런 죽음을 죽어야 하는데, 예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내 죄값을 담당했다는 것이 십자가 사상입니다. 십자가를 바라 볼 때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서 나의 죄값을 치러 주셨다는 믿음이 생기면 구원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미저리가 성경에는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미저리(imagery)라는 것은 그림언어를 가리키지요. 그 그림 언어는 십자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성경에는 십자가 이미저리가 4가지 사용되었습니다:

화목(propitiation), 구속(redemption), 칭의(justification), 화해(reconciliation). 화목은 성전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십자가 이해이지요. 구속은 시장바닥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십자가 이해입니다. 칭의는 법정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화해는 가정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런 십자가 이미저리는 대속이라는 십자가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꽃을 심기 위해서는 화단이 필요합니다. 화단에 온갖 종류의 화사한 꽃을 심습니다. 꽃들은 화단에서 핍니다. 화단은 대속 사상이고 4가지의 십자가 이미저리는 그 화단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막10:45

알케고스이라는 단어 속에 보이는 예수의 사역?

예수라는 분을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서는 ‘알케고스’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내 주었습니다. 알케고스라는 말은 두개의 헬라어 단어를 합성하여서 만든 조어입니다. 처음을 의미하는 ‘알케’와 인도하다를 의미하는 ‘아고’를 합하면 알케고스이 됩니다. 맨 앞장 서서 무리를 인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길을 여는 사람 즉 개척자! 알케고스는 ‘개척자, pioneer’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저자,author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행5;30-32절 베드로와 사도들이 목소리 높혀서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에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려 내셨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예수를 오른손으로 어디까지 높혔는가?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 구주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건져 내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임금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왕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그릭으로 알케곤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무엇이라고요? 저자, author, 혹은 개척자를 가리킵니다. 새로운 신약 시대를 여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주님 예수님은 구약 시대 백성이 누릴 수 없었던 놀라운 복을 우리 신약 시대 백성들이 누릴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개척자이신 우리 주님의 뒤를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옛길,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 주님은 신약 시대의 생명, 구원, 믿음이라는 분야에서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세 분야에서 우리 주님은 개척자이십니다.

첫번째가 예수는 생명의 개척자이십니다.

행3:13-15절
예수님은 생명의 아르케고스이다. 아르케고스가 무엇이라고요? 생명의 author, 즉 생명의 저자, 생명의 창시자입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그렇게도 목말라 하면서 바라고 기대했던 그 생명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생명은 목숨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목숨은 육신적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그런 육신적인 생명이 아니고, 이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영적 생명은 창조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요5:26절에는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성령께서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롬8: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요14: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성경은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이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1서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언제 주셨는가? 예수를 믿을 때에 주셨지요.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를 받아 들이면 됩니다.
요일5:11-12절
영적으로 살았느냐 죽었느냐를 가리는 기준이 무엇이라고요. 예수!
예수는 생명의 주님이시다.
예수 생명/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생명을 전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구원의 개척자이십니다.

히2:10절
우리가 현재에 누리고 있는 구원, 신약 시대의 구원! 어떤 구원일까요?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건져 내는 구원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생물학적인 죽음이 왔고, 죽음 후에는 지옥에 들어가서 세세 무궁토록 지옥고통을 당하여야 하는데, 우리 주님이 그런 우리를 건져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신약시대의 구원을 창조해 내신 분입니다.
행4:12절
예수를 제외는 다른 어떤 사람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은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구원의 기쁨을 천국에 들어 가서 비로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영원까지 계속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천국 들어가서 누리게 해 줄 테니 지금은 고생 좀 하거라 하는 그런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을 잃어 버렸는가? 오늘 이 시간 구원의 기쁨을 회복합시다.

예수 구원/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을 세상에 전하는 자들이다.

예수는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히12:2절
믿음의 주요 또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이(=완성자/명사형)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는 의미입니다.
신약 시대의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을 누가 만들었고, 그것을 누가 우리에게 누가 주었나 말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의 저자,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주신 이 믿음 때문에 온갖 종류의 영적, 육적 축복, 즉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으면 작은 축복 밖에 못 누리고 우리의 믿음이 크면 큰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생물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처럼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라 나서 온전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확확 자라날 수도 있고 병들어서 침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주는 혜택? 믿음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상속 받았지요. 천국은 우리 주님 예수에게 상속 되었는데, 우리들도 예수와 함께 그것을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롬8:17절
또 무슨 혜택이 있습니까? 순복음 교단에서 주장하는 소위 삼박자 구원이라는 축복을 믿음을 통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
삼박자 구원:
요삼 1:2절
예수 믿고 나서 영혼이 잘 됩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넘쳐 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손대는 일들마다 잘 풀립니다.
또한 육신도 건강합니다.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40세 된 불구자, 걷지 못하는 사람을 성전 미문에서 걷게 만드는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증거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라고 했더니 곧 그 사람이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일어나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치지요. 이 사람이 예수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성하게 만들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우리들도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겨자씨 한 알 같은 크기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겨자씨 한 알 같은 크기의 믿음에서 자라날 필요가 있지요.
눅17:6절
우리말 번역은 가정법으로 번역했습니다만, 가정법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그렇게 작게 보이는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도 없는데, 만약에 있다면 뽕나무가 바다에 명령만 내리면 옮겨 심겨지는 그런 일도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없는 데 있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우리말은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가정법을 이끄는 그릭 ‘에이’는 현재 상태를 말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믿음을 따라서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 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을 내 삶에 순종하고 활용한다면 엄청 난 기적을 이루어 갈 것이고 그 기적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일취월장 자라나게 됩니다. 믿음과 기적은 시너지효과를 낸다.
찬양팀 앞으로!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17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는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자라난다는 말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합니다. 죽은 믿음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 누가 복음에서 어떤 믿음?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이라고 했지, 모래 한 알 갱이 같은 믿음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모래는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살아 있기에 자라납니다. 겨자씨가 땅에 심겨 지면 큰 나무가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믿음의 나무는 지금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