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94

January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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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94
일시:1/3/2020

우리들이 짓는 죄는 영혼의 암세포이다. 암세포는 커지면서 덩어리를 형성하고 그것은 또한 전이가 됩니다. 위암이 진행이 되면 암이 폐와 간으로 전이가 되어서 자라지요. 우리가 짓는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죄악을 지으면 그 죄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악을 덮기 위하여 다른 죄악을 짓게 된다는 말입니다. 고구마는 줄기를 타고서 밭 이 고랑에서 저쪽 고랑까지 죽 이어져 있지요. 우리들이 짓는 죄는 묶음과 다발 송이로 발견됩니다.
다윗의 경우:칠계명을 범했는데, 이것을 은폐하려고 우리야를 전쟁에 보내서 죽이지요. 이것은 육계명 위반이지요. 자신의 7계 위반을 덮기 위하여 6계를 범하지요.
집에 처져 있는 거미줄을 치워 보았자, 내일이면 다시 그 자리에 거미줄이 다시 등장합니다. 거미줄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거미를 잡아 죽이면 됩니다. 거미를 죽이지 않고 거미줄만 걷어 내면 다시 거미줄이 등장한다는 말이지요.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의 삶에서 드러난 죄악을 치운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죄악의 시발점인 상처덩어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지요. 그러니 죄악을 근원적으로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내 심령을 살피고 그 안에 있는 상처와 중독을 제거해야 겠지요.

우리들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입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동전의 한 면에는 죄인이 쓰여져 있고 다른 면에는 의인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습니다.하나님 앞에 심판 받기 위하여 섰을 때에 우리는 죄인이라는 글자를 보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반대편의 글자인 의인이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동전을 내 밀라고 하면 동전의 양면이 나갑니다. 동전이 한 면 만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 모두 나갑니다. 우리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때에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이 탄식하면서 울지만, 기도가 끝나고 일어서면 죄사함으로 인하여 기뻐 웃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생 살이는 두개의 바퀴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 두 바퀴가 무엇인가 하면 울음과 웃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두 개의 바퀴를 소유하고 있기에 참 인생살이를 풍요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짓는 죄악이 우리들에게 하는 일은? 우리의 영혼을 더럽힌다. 죄를 지으면 영혼이 더럽혀진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쾌감이 있으나 뒤돌아서면 우리의 마음이 찝찝해 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찝찝해지는 일은 우리의 마음이 더럽혀졌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남들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서 마음이 기쁘지만 돌아서면 찝찝해 지지요.

마15:16-20/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게 되면 사람이 더러워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은 고정관념이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 짓는 죄악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 남을 중상 비방하는 말, 살인 간음 도둑질 같은 죄악된 행위가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 확실히 아니지요. 커피 콜라 마신다고 깨끗한 심령이 더럽게 되나요? 하얀 쌀밥을 먹는다고 더러운 심령이 깨끗하게 되나요? 만약에 그렇다면 죄를 지어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죄수들에게 모두 쌀밥을 먹이면 감옥이 필요 없어지겠네요.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확실히 자신이 짓는 죄악입니다.

깨끗하게 살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음을 청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맑고 깨끗한 영혼이 됩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인간이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습니까? 매일 매일 눈만 뜨면 죄를 짓습니다. 인간이 죄를 안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지은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우리의 심령을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지은 죄를 말끔하게 씻어 주는 일이 우리 인생에게는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무엇이 그런 일을 하나요? 예수의 보혈만이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멘!

요일1:7절/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의 심령을 씻어서 맑고 깨끗하게 만듭니다. 예수의 피가 못 씻을 죄가 없습니다.아무리 무겁고 크고 더럽더라도 우리 주님의 보혈은 강력한 세척력이 있습니다. 단 한번의 피흘리심으로 인류가 지은 모든 죄를 씻고도 남습니다.
히9:12절/ 예수의 십자가 사역은 단 한 번이나 효력은 영원까지 이릅니다. 영원한 속죄를 예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세월동안 효력이 있는 속죄!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후7:1절/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육적인 더러움은 무엇이고? 영적인 더러움은 무엇입니까? 육적인 더러움은 목욕을 하지 않아서 몸에 있는 떼가 많다는 말인가요? 아니지요. 육적인 더러움은 도덕적인 차원에서 죄악을 짓지 말라는 말이고, 영의 더러움은 영적인 죄악을 의미하는데, 우상 숭배의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이지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움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죄악을 가리키지요. 당시에 고린도 사람이라는 말은 부도덕한 사람으로 통용되던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가? 마 5:8절에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자백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심령과 삶을 살피고 하나님께 우리의 지은 죄에 대하여 고백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요일1:9절/
요즈음 겨울철 감기 들린 분들이 많습니다. 감기 들면 기침을 많이 합니다. 우리의 기관지에 이물질, 즉 가래가 끼기 때문입니다. 기침은 가래를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가래가 목 근처에 있으면 한번의 기침으로 담이 배출됩니다. 그러나 담이 폐 근처에 있으면 담을 몸밖으로 밀어 내기 위해서는 용을 쓰면서 기침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나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가 무엇입니까?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소리! 이 소리가 우리 하나님을 기쁘게 만듭니다. 기도할 때마다 이 소리 하는 것을 주저하지 맙시다. 그런 소리를 하면 우리는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한 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이 소리가 아닙니까?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내게 들려 주세요!

올해의 표어: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소서!
본문:마4:18-22절

하나님 손에 붙잡힌 자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우리가 되고자 하여서 예수님을 스승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주체가 되어서 우리를 선택하여서 불러 주었기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랍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랍비들이 자기 휘하에 제자들을 많이 받아서 길렀는데, 이 제자들은 랍비가 선택하지 않았고, 제자들이 랍비들을 선택하여서 랍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요즈음 대학에서 과목을 신청할 때에 자기가 원하는 교수나 혹은 과목을 선택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예수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선택해서 세웠다는 점이 다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 거니시다가 쓸 만한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인데 모두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하면서 그들을 불렀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선택하는 것 하고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하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제자들이 자신들이 배우고 섬길 스승을 선택하는 것은 만약 스승이 마음에 안 들 경우에는 얼마든지 스승을 떠날 수 있고 스승을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스승이 제자들을 선택하는 경우는 제자들이 스승을 떠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 일까요? 스승을 선택한 자들은 자신들이 스승을 붙들었습니다. 언제든지 스승이 마음에 안들면 손을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스승이 제자들을 붙잡았다면 제자들이 싫어도 스승이 놓지 않는 한 스승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스승의 손에 붙잡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싫던 좋던 이미 예수의 손에 붙잡힌 자들입니다. 예수의 강한 손이 그들을 붙들었기에 유혹과 시험이 와도 예수의 손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이런 관계를 맺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려고 갈릴리 바다로 가셨고 거기에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네 명의 제자를 불렀지요.

예수께서 이 네 명의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사람 낚는 어부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우리 주님은 보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첫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라는 것은 전도의 사명이라는 말이지요.
이 전도, 즉 선교의 사명은 특정한 제자들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주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목사와 전도사, 그리고 선교사들에게만 위탁하신 사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한 사람들은 모두 예수의 제자가 되어서 한 평생 전도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의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9:16절/ 복음 전하는 것은 전도자의 사명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의무 조항입니다. 의무 조항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선교를 하지 아니하면 징벌이 따르지요

19세기 미국의 부흥 전도자 무디 목사는 수십만 명을 주님께로 인도했고, 특히 주일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하루에 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 자리에 들었으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다. 밤중에 거리에 서서 말씀으로 권유할 대상자를 찾는데,
한 술 주정꾼을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다가가서 "예수님을 아시나요?"라고 물었다.
그 술 주정꾼은 '예수'라는 말을 듣자 마자 화부터 벌컥 내었다. 무디는 기다시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3개월이 지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예전의 그 술 주정꾼이었다. 그 술 주정꾼이 고백하기를 그날 밤 예수님을 아느냐는 말에 크게 화를 냈으나 그로부터 그 말이 내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것은 평신도들이 직업을 그만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자기의 직업의 일을 하면서도 선교의 사명에 올인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전도인의 일을 하는 분들을 우리는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움직여 가면서(즉 순례자로 살면서) 자기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자기가 있는 사회를 섬기고 또한 복음 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우리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서 전도인의 사명을 우리는 다해야 합니다. 날 오라고 부르는 곳으로 우리는 이주하여서 정착하여 그것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선교의 사역을 다한다면 나중에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영광이 참으로 큽니다. 내가 전도하여서 예수 믿게 된 사람은 저 하늘 나라에 들어가면 그들은 모두 내 면류관이 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빌4:1절에서 이렇게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서 내 머리에 쓰게 될 면류관이 바로 내가 전도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천국 들어가서 개털 모자 쓰고 있으면 폼이 안나지요.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빛나고 영화로운 그 면류관을 말입니다.

우리가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로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고후2:14-16절/
우리의 정체가 뭐라고요? 우리는 향기인데, 어떤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순례자가 되어서 내 발이 닿는 곳마다 무슨 향기가 난다고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 납니다. 나의 마음 씀씀이에,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내가 손과 발로 행하는 의롭고 착한 일에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됩니다. 나로 인하여 나는 그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 집이나 우리 교회에 갇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멀리 멀리까지 그 향기가 퍼져 나가야 합니다.

한국의 꽃가운데 백리향이 있는데,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그 향기가 백 리를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백리향 중에서도 울릉도에 있는 것은 좀더 크고, 이름도 섬백리향입니다.
백리향 다음으로 향기가 천리까지 간다고 하여서 천리향이라고 불리는 꽃도 있습니다. 정식 이름은 서향입니다. 서향은 상서로운 향기라는 의미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도 백리,천리까지 향기를 내 품어야 합니다. 내 향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입니다.

한 사람을 살려 내는 데는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 방울의 물이 목 마른 사람을 살립니다. 많은 물이 저장 되어 있는 호수가로 데리고 갈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목말라 죽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물통의 물을 얼른 꺼내, 한 모금 마시게 하는 것이 목마른 사람을 살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개인 전도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 오는 그 한 사람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보스톤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만나게 해 준 그 한 사람에게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그 한 사람은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구원하라고 붙여 주신 사람입니다. 그리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서 그 사람을 우리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합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 하나 하나에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만들어 달라고 말입니다.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그 말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됩니다. 내 말이 비록 달변은 아니고 서툴지만 우리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내 말을 통하여 예수가 믿어 지기에 예수를 믿는 믿음에 이르게 되지요.

어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께서 어떤 원주민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에 감탄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할머니는
문맹에다가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전도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선교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의 요구대로 성경을
찾아 빨간 줄을 그어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글을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할머니인데 왜 그런 부탁을 할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찬양 사역팀 앞으로!
그날 이후부터 할머니는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시간 쯤에 동네 학교 정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학생,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라며 말을 건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하니 학생들은 거절 못하고 "뭘 도와드릴까요?"라며
다가옵니다. "사실은 이 할미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눈이 잘
안보여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여기 빨간 줄 쳐 놓은
부분만 좀 읽어주겠어?" 그러면 학생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할머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읽어줍니다. "정말 고마우이.
그런데 학생은 방금 읽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잘 모르겠어요." "내가 가르쳐 줄게.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거야. 나와 학생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주셨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다 용서함 받고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게
된단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많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그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