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소서

January 1, 2020
설교자:
Passage: 마태복음 4:18-22

1. 서 론
작년 이 때에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송구 영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가 지나간 어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훅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한 살 더 먹어서 좋아 하지만, 나이든 어른은 한 살 더 먹는 것을 아쉬워 합니다. 세월이 참 쏜 살 같이 빠르게 날아 갑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우리의 삶을 돌아 보면서 2020년의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019년도의 한반도에 있는 우리 민족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요? 우리들이 비록 몸은 이곳 보스톤에 있지만, 한국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가족 일가친척들이 모두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면 한국의 지성인들인 대학 교수들이 4개의 글자로 되어 있는 사자 성어로 그 한 해를 표현했습니다. 대학 교수님들이 선정한 2019년도의 사자 성어는 무엇일까요? 공명지조입니다. 이 사자 성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글자 대로의 뜻을 풀이해 보면 공은 함께 라는 의미입니다. 명은 목숨을 의미합니다. 공명은 목숨을 함께 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지는 어조사이기에 무엇 무엇의 라는 의미입니다. 조는 새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공명지조라는 전체적인 뜻은 목숨을 함께 하는 새라는 의미가 됩니다. 목숨을 함께 하는 새란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의 출처가 불교경전인데, 그 경전에 묘사되어 있기는 이 새는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는 두개입니다. 이 새의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서 활동하고 다른 한 머리는 밤에 일어나서 활동합니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이에 질투심을 느낀 다른 머리가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립니다. ‘운명공동체’인 두 머리는 결국 모두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한국에는 지금 두 개의 큰 민중 집회가 열리고 있지요. 하나는 광화문 집회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는 서초동 집회라고 부르지요. 이 두 집회는 서로 다른 정치적인 색깔 때문에 생겨난 집회이지요. 상대가 죽으면 나도 죽는 것도 모르고 국민들까지 서로 편 갈라 싸우는 현실을 빗대는 사자 성어입니다. 공명지조가 현재의 한국 상황을 잘 대변하는 사자성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게 하소서’라는 표어를 가지고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회복된 기도의 영성 위에서 우리 켐연장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를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올 한해동안 우리들에게 부탁하시는 일은 우리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II. 오늘 본문 말씀으로 우리의 눈을 돌려 보지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의 첫 제자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를 불러서 제자 삼는 본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 그룹을 형성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 갈릴리 해변을 두루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를 먼저 만나서 자신을 따라 오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두 명이 그물을 버려 두고 곧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들도 불렀더니 그들도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네 명의 젊은이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일까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네 명의 어부는 일종의 수산업자들인데, 이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을까입니다. 어부로서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게 하려고 그들을 부르신 것 아닙니다. 19절 말씀에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에 받은 사명이 바로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 속에는 그런 사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의 부름을 입어서 예수의 제자가 되기는 했지만, 그 부름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서 살아 간다면 우리는 우리를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살아서 행복하게 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이 더럽고 추해서 죄악 세상이라고 정죄하면서 천국 들어 가는 것 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믿게 되면 그 결국은 자연히 천국 들어 갑니다. 예수 믿고 난 후 그리고 천국 들어 가기까지 우리가 땅에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낚아 올리는 일, 즉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불렀을 때에 그 부르심 속에 담겨 있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한 평생 동안 살아야 하늘에 들어 갔을 때에 우리를 부르신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대가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인이 이른 아침에 종을 하나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명했습니다;자네 아침 먹고 인천에 좀 다녀 와야겠다. 주인은 아침을 먹은 다음에 심부름을 시키려고 그 종을 찾았습니다. 아무도 그 종이 어디에 있는 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 종이 집에 나타났습니다. 주인은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하다가 이제 나타났느냐 하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그 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아침에 주인님께서 나더러 아침 먹은 후에 인천에 다녀 오라고 해서 지금 막 다녀 오는 길입니다.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서, 이 한심한 사람아, 내가 너를 인천에 보내는 이유는 시킬 일이 있어서 다녀 오게 하는 것이지 그냥 갔다 오라고 한 말이 더냐 라고 꾸짖었다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들도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한 평생 산다면 이와 같은 책망을 저 하늘 위에서 듣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 낚는 어부라는 사명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사실 어부라는 직업은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아서 죽이지만, 사람들을 낚는 어부는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과 분리 되어 있기에 영적으로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사로 잡아서 살려 내는 일을 하는 것이 사람 낚는 어부가 하게 되는 일입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낚시보다는 그물을 사용해서 물고기를 보통 잡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 낚는 어부라고 표현 되어 있는데, 본문은 그냥 ‘사람들의 어부’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를 잡는데, 그물을 사용해서 잡을 수도 있고, 낚시를 사용해서 잡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물을 사용해서 잡는 경우는 대형 전도 집회를 열어서 사람을 낚는 경우이고, 개인 전도를 통하여 한 사람 한 사람 낚아 올리는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이들을 부르심으로써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입을 벌려서 한 평생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어느 공사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사장 위에서 인부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 실수로 작은 기구를 하나 아래로 떨어 뜨렸습니다. 그 기구가 그 아래에 지나가던 행인의 어깨를 살짝 스쳤습니다. 그 행인이 위를 향하여 아프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랬더니 위에서 작업하던 그 인부가 ‘앗따 그 사람 말도 많네’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래 행인이 소리칩니다:내가 그 기구에 맞아서 죽을 뻔했는데 소리치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그 위의 인부가 이렇게 반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어떤 사람은 머리에 맞아 죽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던데, 뭘 그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 떠냐?
사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말을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하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났기에 우리는 영혼이 죽은 사람들을 향하여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살고자 하면 예수께로 나오라고 말입니다.
누군가가 ‘자네 왜 예수 믿나’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하겠습니까? 믿어지니깐 믿지! 안 믿어 지는데, 힘쓰고 애써서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 지니깐 예수 믿는 것 아닙니까?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예수를 주님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기에 내가 그 십자가를 볼 때에 주께서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것이 믿어 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람 낚는 어부들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일어나서 이렇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예수께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믿어 지게 하옵소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믿어 지게 하옵소서!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예수 앞에 무릎이 꿇려 지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예수의 복음을 전파해야 겠지요! 이방인들 가운데 우리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사람 낚는 어부들이 외치는 복음의 말씀이 마음에 믿어지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된 이방인들을 만나도록 섭리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선교 사역의 총사령관이시니 우리가 그의 전략과 전술을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온전하게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III. 말을 맺겠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하면서 네 명의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불렀습니다. 이 네 명이 주님의 그 음성을 들었을 때에 좋은 말씀이네요,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네요 하고 실제적인 결단이 없었다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었을까요? 당연히 될 수가 없겠지요. 우리 주님이 이 네 명에게 도전을 주었던 그 말씀은 약속입니다. 그 네 명의 제자들이 믿음으로 결단해야만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고기 잡는 직업을 버려야 비로소 예수의 뒤를 따를 수가 있습니다.
마4:20절/그들의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2절/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는 고민이 일어납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내가 전공하는 것을 버리고, 내 직업을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 교육을 받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 말입니다. 목사나 선교사는 풀타임 사람 낚는 어부이지요. 그러나 하프타임 사람 낚는 어부도 있습니다. 내가 내 전공과 직업을 살려서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로 얼마든지 우리 주님 부르심이 합당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곳 보스톤 땅에서 나의 직업을 따라서, 나의 전공을 따라서 이 사회를 섬기면서 얼마든지 이곳 보스톤 땅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을 통하여 들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자 합니다.
딤후4:2절/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