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301

February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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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301
일시:2/21/2020

바로 애굽왕:
왕이 되자면 태자 시절에 제왕의 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 왕이 되지요. 그래야 좋은 왕이 될 수가 있지요. 왕궁에서는 제왕학이라는 학문이 있어서 석학들이 다음 번 보위에 오르게 될 태자를 가르쳤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전혀 훈련을 받지 않고 곧 바로 임금이 된 왕이 있습니다. 그 왕은 누구? 애굽의 바로왕! 훈련 없이 곧 바로 왕이 되었다고 바로 왕이라고 불리지요! 넌센스 퀴즈였습니다.

관대:관동대학교/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13세기에 설립되었지요, 약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수한 대학입니다. 이런 케임브지지 대학교를 뒤로 제치고 더욱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이 우리 나라 강원도에 있다는 것 아시나요? 그 대학교는 3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학교라고 하는 군요. 성서에도 나옵니다. 출3:11절/내가 누구 관대~ 출애굽을 위하여 모세가 부름을 받았을 때에 자신은 할 수 없다고 변명할 때에 했던 말이지요. 관대는 관동대학교라고 하더군요. 장석정 목사/주전 1300년대 생긴 학교!

코로나 바이러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잡혀 가고 있는 모양새이지요. 몇일 전에 연변의 김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연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집에서 출타를 할 경우 마스크를 안하면 경찰이 보면 잡아 간다고 합니다. 아주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는 가 봅니다. 그래서 몇 주간 동안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못 드렸다고 합니다. 서안의 김전도사는 이번 설날에 친정인 연변에 왔다가 바이러스 때문에 붙잡혀서 지금껏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위쳇을 통하여 서안에 있는 형제들과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교회들이 화상예배,it 기기를 사용해서 원거리 예배를 위하여 준비를 해 놓아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형 교회에서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교회에 갔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분들이 나왔지요. 이런 상황에서 모두 교회 나오시라고 하는 것이 사랑만은 아닙니다.
중세 시대에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 때에 교회가 환자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린다고 교회로 모이시요 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페스트, 흑사병이 공기 전염이라 얼마나 더 빨리 퍼져 나가서 유럽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했지요. 사랑은 있는데, 지식이 부족하여서 그런 엄청난 피해를 낳았지요.
그렇다고 교회 나오지 말고 전염병이 수그러드는 시점, 적어도 몇 달 간은 집에 가만 있으시오 하는 것도 또한 사랑이 아니지요. 초신자들이 몇 달간 교회 출입을 안하면 영적인 생명은 순식간에 말라 죽어 버리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나요? 몸이 교회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집에 앉아서 삼삼 오오 영상으로 가족이나 구역원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겠지요.
왜 이런 일이 필요할 까요?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욱 무서운 바이러스들이 생겨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무서운 바이러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나 북극 지방의 영구동토 층에 갇혀 있는 바이러스들이 활성화 된다면 팬더믹을 일으킬 수 있겠지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욱 무섭겠지요. 이런 역병이 돌면 역병이 수그러들 때까지 교회에 모일 수가 없지요. 길게는 수 개월 걸릴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화상 예배를 드려야 하겠지요.

다 이루기 까지
창28:15절/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신 말씀, 약속인가요? 족장인 야곱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야곱의 상황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그것이 탄로나서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도망을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비 이삭의 집이 있는 브엘세바에서 떠나서 지금은 벧엘이라는 곳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야곱이 돌로 베개를 삼고 겉옷을 이불 삼아서 누워 자다가 사다리 꿈을 하나 꾸지요. 그 사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꾸었고 하늘에 닿아 있는 사다리 끝에서 하나님이 야곱에서 바로 이런 약속을 해 주었지요. 꿈에서 말입니다. 잠이 깬 야곱이 너무나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브엘세바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바로 여기 황량한 벌판인 벧엘에도 계셨거든요.
정처 없는 도망자의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약속을 야곱은 받았습니다. 네가 지금은 약속의 땅을 벗어나지만 장차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 오게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다 이루기 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




이 말, 이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십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 오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또 무엇있나요? 장자권한과 또한 장자의 축복도 포함 되어 있지요. 지금은 말로 되어 있지만 그것들을 너의 손에 거머 쥘 때까지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이지요. 지금은 빈 손으로 지팡이 하나를 의지해서 먼 길을 도망 가고 있지만 말입니다. 장차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켰나요? 넉넉하게 지키고 이루셨지요.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하여서 보아야 할 동사가 있습니다. 에서 이루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서 야곱 자신의 노력을 경주하여서 이루어 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원문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축복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것을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여 이루신다는 말입니다. 단지 야곱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야곱이 하는 일이라고는 믿음 안에 머물러 있는 일만하면 됩니다. 자신을 열고서 우리 하나님이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 오셔서 장애물 없이 일 하시게끔 해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척척 알아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시켜 나가십니다.

바로 이것이 이 구절에 숨어 있는 영적 원리, 영적 법칙입니다. 이 원리는 구약 시대의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고, 신약 시대의 우리 주님과 주님의 뒤를 따르는 모든 경건한 신자들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시므온 할아버지/예수님이 갓 태어 났을 때에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경건한 인물입니다.
눅2:25-26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음성을 아마도 젊은 시절에 받았습니다. 메시야를 눈으로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약속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시므온이 나이 많아 늙었습니다. 어느 날 아기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안겨서 성전에 오는 것을 보았을 때에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아 보게 되지요.
눅2:29-32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요19: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는 완료형입니다. 다 이루어져 있다. 다 완성이 되었다. 다 끝나게 되었다는 의미이지요. 영어로는 finish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이 3년간의 공적 사역이 이제 막을 내렸다는 말입니다. 미완성이 아니라, 완성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그 목적,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 인류의 구원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나 이루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주고 싶어 하셨던 새 생명, 예수 생명을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완성했습니다.

찬양 사역팀 앞으로!
당신은 부름 받았을 때에 무슨 약속을 받았는가?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내 보내실 때에 사명을 주어서 내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지는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일생이 그것을 이루어 가는데 사용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내가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 하나님이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 오셔서 방해 받지 않고 그 일을 잘 하시게끔 우리 자신을 열어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