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July 14, 2019
설교자:
Passage: 누가복음 10:25-37
Service Type:

 

그리스도인의 마땅히 해야 할 도리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동물들과 구분되는 것이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로 나타나는 구분점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저 감정의 동함이 아닌 실천하며 삶속에서 넘쳐 흐르는 사랑입니다. 우리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Love Maketh Christian!

 

첫번째로 기억할 것은 이것이 영생에 관련된 문제라는 점입니다.

이 비유는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은 질문의 대답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한명 더 있습니다. 22장의 부자 청년입니다. 서로 질문한 의도는 상이하게 다르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조건없이 실천하라.

신학적으로 보면 의문점이 참 많이 드는 해답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행위로써 구원을 얻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어린이 찬양에서도 고백하듯, 이 다음에 예수님을 만날 때, 영생의 문 앞에서 심판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방법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한이 없으신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아놓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이 사랑을 주신 예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 사랑을 이기적으로 받고 나누어줄 줄 모르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영생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두번째로 이 사랑은 실천하는 사랑, Charity의 사랑입니다. 헬라어의 사랑이라는 단어 아가페는 주로 영어 성경에서 Love가 아닌 Charity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도 그저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꽃 같은 감정이 아니고, 육체적 정욕, 특히 현대 과학이 말하는 여러가지 호르몬의 화학적 작용은 더더욱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가장 값진 보혈을 우리의 죄 값으로 주셨고,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또한 행함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귀찮음과 어려움, 희생과 포기를 수반합니다. 그런 모습이 잘 나타난 것이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는 일에 분주한 마음에, 아니면 예배 후의 고단함 때문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쳐 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판단은 “이들은 이웃이 아니다!” 입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기쁨으로, 습관적으로 돕는 방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은 많은 담을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지금 수많은 담장에 둘러싸여 살아야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생각도해 본 적이 없는 구분과 장벽이 사람들을 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이 분명한데도 담을 쌓고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마리아인은 이런 정치, 종교, 문화적 차이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배반한 사람들이고, 이방인들과 결혼을 통해 혈통을 더럽힌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이 부정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런 차별은 사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주의깊게 들어야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골을 깊게 만드는 주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비유의 제목이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생소한 이름이 아니고 만일 “선한 공산주의자”, “선한 동성애자”, “선한 마약중독자” 같은 제목이었으면 어떤 느낌으로 우리가 이 이야기를 받아들였을까요?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히려 남을 판단하고, 지적하는 칼날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담장을 세우는 사람들이라고 비판받는 것은 아닐까요?

이 말씀의 맨 마지막 대답을 잘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은 무려 유대인 율법학자가 자기 입으로 “사마리아인이 나의 이웃입니다”라고 대답 하도록 이끌어 냈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승리입니다. 이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비유 속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의 사랑에 담긴 비밀입니다. 자신을 멸시하는 유대인을 불쌍히 여겨 모든 번거로움과 물질적 소모를 감당하고 목숨을 구원한 그 사마리아인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이 특별히 교회에게 주는 도전이 있습니다. 사랑을 베풂에 있어서 comfort zone을 벗어나 보자는 것입니다. 매년 선교사역이 있고, 구제에 대한 잘 갖추어진 시스템이 있는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하는 사람만 하고, 하는 때에만 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Charity의 베풂은 습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내가 편안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사람만 찾고 그다지 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다가가지 못하는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시대에 취하는 “피하여 지나감”입니다.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가지면 마음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까?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준다면 그 사랑이 우리 교회 안에서, 그리고 이 공동체 바깥까지 얼마나 많은 담을 무너뜨리고 하나됨을 이룰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에 성령이 임하셔서 큰 부흥이 임한다면 우리 각 사람이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하며, 꿈을 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실천하는 사랑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적 불편함과 어려움은 이 실천하는 사랑 안에서 눈처럼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에게 진정한 영생의 기쁨을 이 땅 위에서 부터 누리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