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의 복음

April 12, 2020
설교자:
Passage: 행10:34-43
Service Type:

제목:화평의 복음
본문:행10:34-43
찬송:165장,501장
대상:ckpc
일시:4/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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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부활이 무엇일까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지요. 예수께서도 땅에서 공생애를 보내실 때에 세 명의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렸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렸고, 나인성 과부의 청년을 살렸고,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이 세 명의 사람들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세월이 지난 다음에 다시 죽었습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이 세명은 부활이 아니라 소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심정지로 확실하게 운명했지만, 우리 주님이 그들을 다시 소생시키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심정지로 죽지만 놀랍게도 다시 소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성격이 다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죽을 몸으로 다시 산 것이 아니지요. 우리 주님은 부활하실 때에 필멸의 몸에서 불멸의 몸으로 바뀌어서 부활했습니다. 다시는 죽지 않는 그런 몸으로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에는 예수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묘사하고 있지요. 인간 역사가 끝나는 시점이 되면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고,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무덤에 누어 있던 모든 인생들이 불멸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서 전하였던 설교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고넬료라는 사람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도 여호와를 섬기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또한 그의 온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구제하면서 기도에 힘쓰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의 지시대로 베드로를 집으로 모셔서 그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베드로의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II.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39-40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였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달려서 운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돌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우리 주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또한 이 부활도 역사적 사건이며 실재입니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 36절 말씀은 그 복음을 화평의 복음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Godspell 복된 소식이 아닙니까? 화평의 복음이란 화평을 가져오는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평화를 가져오는 복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 바다 건너 저 먼 땅에서 그것도 2천년전에 일어난 그 사건이 어떻게 나에게 복된 소식이 됩니까? 예수의 부활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예수의 부활사건은 나의죄가 씻어졌음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43절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홍빛 같은 내죄가 하얗게 씻기워집니다. 머리털 보다 더 많은 내죄를 무엇으로 다 씻어낼 수가 있습니까? 다른 어떤 것으로는 우리의 죄가 씻기워지지 않습니다. 예수의 보혈만이 우리의 억만 죄악을 씻어낼 수가 있습니다. 나의 모든 죄가 예수의 죽음으로 청산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죽음이 우리의 죄값의 청산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십자가로 나의죄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그것은 예수의 부활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 하나님이 예수를 무덤에서 살리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창문을 통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니 십자가는 내죄를 사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께서 죄가 있어서 자신의 죄값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공인인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면서 예수를 고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나는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세번이나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잘못이 없습니다. 예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시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기 위하여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죽음처럼 사회적인 고난을 받아서 죽은 한 의인의 죽음에 불과한 죽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망의 고통을 풀어서 예수를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보니 확실하게도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가 우리의 죄를 사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4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든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24:47-48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죄사함을 받음이 없이는 결코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죽었고, 다시 살아났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께서 재판장이 되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2절 말씀에는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을 재판장으로 세웠는데, 이 재판장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분이십니다. 살아 있는 자라는 말은 지금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 숨쉬는 자를 가리킵니다. 또한 죽은 자라는 말은 지금 죽어서 몸이 무덤에 들어 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도 신경에도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께서 인류를 심판하는 모든 권한을 맡기셨습니다. 만약 우리 주님 예수께 밉게 보이면 큰 일 납니다. 안티 기독 세력들이 받을 심판이 크겠지요. 시대 시대마다 예수를 반대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세력이 안티 기독 세력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사신 후에 하늘에 들어 가셔서 비어 있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온 인류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에 대하여는 요한 계시록 20장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무엇에 대한 심판입니까? 어떤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여보내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재판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영원한 세월을 살게 됩니다. 생명록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천국에서 우리 주님과 영원한 세월을 살게 되고요. 사람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얼마나 착하고 선하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는가요? 아니지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은 예수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업적이나 공로나 선행은 상급과 관련될 뿐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18절에는 우리 주님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 되어 있습니다: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세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은 예수의 다시 사심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삶을 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1절에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12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첫 증인들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사신 것을 일반인들에게 보이신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첫 제자들에게 먼저 보이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증인이라는 말은 보고 들은 것을 보았다, 들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본것과 들은 것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은 변증가라고 부르지요. 증인은 보고 들은 것을 보고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의 12제자들인 사도들은 이 화평의 복음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심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예수께서 친히 죽음에서 다시 사셨음을 목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해변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과 함께 음식도 같이 먹었습니다.
이 화평의 복음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전하였고, 사도들은 누구에게 전하였습니까? 오늘 본문의 고넬료의 일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땅끝까지 예수의 부활 소식은 전파되어야 마땅합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사도적 사명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못하고 죄가운데 방황하다가 죄 가운데 죽어서 불타는 지옥으로 가야 하는 그런 인생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은 바로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이 아닌가요? 우리는 사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도적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사도적인 사명은 아직까지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예수 부활 소식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만 갇혀 있는 복음이 되어서는 안되고 온세상이 공유하면서 누려야 합니다. 죽음 때문에 불안과 공포 속에 살아가는 인류들이 들어야 할 소식이 바로 복음입니다.
사도행전 1:18절에는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하고 있습니다: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III. 말을 맺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도들로부터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전승받았습니다. 이 소식은 화평의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화평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적개심이 사라지고 이웃과 화평이 이루어졌습니다. 아직도 이 화평의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접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들에게 이 복음이 전파된다면 저들도 우리들처럼 죄사함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사도적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