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1/11/2019)

January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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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리스챤의 기도가 무엇?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한다. 기도 사역에 있어서도 성삼위가 함께 역사한다.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역사한다.

 

기도의 대상:성부 하나님

간혹 기도의 대상을 성자 예수로 기록된 곳(요14:13-14)도 있지만, 거의 대 부분이 기도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아동부에서는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기도 하지요.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는 우리의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입니다.

아버지가 낳은 자를 아들이라 부르고 그들은 부자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요1:12-하나님의 자녀(텍나=자식)! 이런 관계가 맺어 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할 수가 없다. 당신은 이런 관계가 맺어져 있는가?

 

*하나님? 기도를 들으시는 분!

시65:2/<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모든 육체는 모든 인생들을 가리키지요.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 아버지로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기도가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머나먼 당신이고, 멀리 계신다고 느껴지는 절대 타자(절대 거리 유지)라면 기도하지 말라! 헛수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아버지의 관계가 맺어 지지 않고 하는 기도는 모두 헛수고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 그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나님>아버지>압바=아빠!

 

하나님이 내 영혼의 아버지로 느껴지는가? 구약 시대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는데, 개개인의 영혼의 아버지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백성의 아버지, 국부로서의 아버지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국부로서 불렀던 그 하나님이 우리들 하나 하나의 영혼의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내 영혼의 아버지-기도자가 반드시 이런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이런 관계라는 것을 누가 알려 주셨나? 예수께서 그런 관계를 만드셨고, 또한 우리에게 우리가 성부 하나님과 그런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려 주셨다.

주기도문의 서두:호격! 하나님의 호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모범적인 기도문=예수 그리스도 운동(천국 운동)의 핵심이며 요약! 너희는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면서 기도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가르치신 기도가 주기도문이다. <이렇게>는 기도의 방법입니다. 주기도문처럼 간결하고(simple), 요점을 지적한 그런 기도를 하라는 말이지요. 주기도문은 간단하면서도 결함이 없는 완전 무결한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말로 간구한 다음에 꼭 이 주기도문으로 기도함으로써 우리의 결함이 있는 기도를 보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적 예배를 드릴 때에 대표기도를 한 후에 반드시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우리는 하고 있지요.

 

 

 

*요20: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  부활하신 다음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 되었을 때에 처음으로 알리신 메시지-우리는 예수의 형제들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해 주셨다.

*히2:11/<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이고,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와 성도들은 모두 한 근원인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들을 형제라고 부르신다는 말씀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그 하나님이 아빠로 느껴지는가? 아버지(아버님,Father)이 아니라 아빠(Dad, Daddy)로 느껴 지는가? 세 살 먹은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가? 아버지로도 안 부르고 애칭인 아빠로 부른다. 자기 아버지와의 마음의 거리가  zero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아뺘로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막14:36/<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아빠, ABBA입니다. 압바는 아람어로 되어 있는데, 아람어를 그릭으로 음차했습니다. 그릭 원문은 ABBA 파텔로 되어 있습니다. 압바는 애칭으로 집에서 어린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에 대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파텔인데 이말은 그 집의 종도 그의 주인을 주인님 대신에 아버지라는 공식적인 말을 썼습니다. 그러나 종들은 그의 주인을 압바로는 부를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을 압바로 부른 경우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밖에는 없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늘 하나님을 격식을 갖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기 극심한 고난의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면서 하나님께 다가 갔습니다. 피땀 흘리면서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그 현장에서 하나님을 아빠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부를 수는 없을까? 하나님과 그렇게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내 아빠라고 부르면서 그런 친밀감을 땅에서 누리는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라’

양자의 영이란? 퓨뉴마 휘오테시아스(양자삼기, adoption), 우리를 양자 삼는 영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을 가리킨다. 16절에는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라고 기록해 주고 있는 것을 볼 때 확실이 양자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은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기 되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이전에는 우리 모두가 마귀의 자녀이었는데, 예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한 이들에게 임하신 성령이 충만하게 부어진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을 나의 아빠라고 부르게 된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 아들의 영? 성령=예수의 영이라고도 부릅니다.

^부르게 하셨느니라=부르짖게 하셨느니라(크라조)

당신과 하나님 사이는 어떤 사이입니까? 하나님, 아버님, 아버지, 아빠? 당신과 하나님과의 거리는 얼마 정도 됩니까? 하나님을 나의 아빠라고 부르는 일에 주저함이 있습니까?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 내게 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나의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롬5:5절/<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신다면 무엇을 기대해도 되는가?

 

*마7:9-11/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9:11-13은 병행 구절/성령이 최선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신다. The best를 주시지, second best를 주시지 않는다. 내 삶의 길에 무엇이 최선인가? 내 눈을 열어 주소서! 그리고 최선이 무엇인지를 보고 그것을 간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내게 최선의 것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최선의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지 않고 불평이 나옵니다.

*마6:8, 30-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하나님께서 내 딱한 사정을 모두 알고 계신다. 내가 말로 언어로 표현하기 전에 이미 하늘에서 다 알고 계신다.

^입장 좀 바꾸어 놓고!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늘과 땅에 있어서 가장 높고 권세 있는 이름이다.

*빌2:9-11/<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마28: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부활하신 예수께 위임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영적 세계 즉 영계를 가리키고, 땅은 물리적인 세계, 즉 온 우주를 가리킵니다. 예수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그런 권세가 예수께 위임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그 권세를 사용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예수 안에 있게 되면 그런 예수의 권세가 내 권세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의 이름은 상투적인 문구인가? 아니다. 그 이름 속에 권세와 능력이 들어 있다. 내가 그 이름에 얼마만한 믿음을 싣는가에 따라서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안 일어 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우리에게 체크를 주셨는데, 거기에는 이미 예수께서 서명을 하시고 수취인에 내 이름을 쓰신 체크를 주셨습니다. 금액은 내가 적어 넣으면 되는 그런 체크입니다. 백지 위임장이 내게 건네어 졌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그 체크를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기도응답 한번 못 받아보고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면 천국 가서 가슴을 치면서 후회할 성도들이 교회마다 참 많이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뮬러를 본받아서 일생 동안 수 천건, 수 만건의 기도응답을 땅에서 받아 누리다가 하늘 세계에 들어 가야 하지요.

예수의 이름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분들입니다.

 

어떤 할머니(무의탁, 독고 노인)인데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벽에 미국 돈(달러, 100불, 50불, 20불)짜리를 도배 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아들이 미국에 불법 이민을 가서 할머니에게 달러를 보냈습니다. 할머니는 그 달러를 받아 들고서 아들이 미국 가서 사귄 친구들인 줄 알고 벽에다가 모두 붙여 놓았습니다.그러면서도 굶고 있었다. 왜? 돈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김일권 목사의 경험-100불의 가치,디트로이트 공항에서의 경험

 

요16:23/예수의 약속/<~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무엇이든지;어떤 제한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 눈에 불가능해 보이지만,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할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그것을 이루실 수가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필요가 예수의 이름으로 청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에 어떤 제한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활용하고 사용하여서 우리의 삶에 기적을 만들어 가 봅시다.

켐연장 교회의 두 번째 기도 제목: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막을 인생이 없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성령 안에서/성령의 감동으로

이것도 상투적인 문구(수식어)인가? 아니다. 실제적이다. 성령의 감동 없이 일만 마디의 많은 말로 기도하는 것보다는 성령의 감동으로 한마디 기도한 것이 훨씬 더 기도 응답이 빠르다. 그렇게 많은 시간 기도했는데도 왜 기도 응답이 없는가? 그 기도에 얼마 만큼이나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마음이 실렸는가에 기도 응답이 달려 있습니다.

*엡3:20-21/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할 수 있으나 그 응답에는 제약 조건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제약 조건이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능력을 따라서(kata) kata; th;n duvnamin’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받은 성령의 능력과 우리에게 임하는 성령의 감동만큼 기도의 응답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엡6: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엔 판티 카이로=항상/무시로/언제나로 번역했다. 항상이라면 24시간 내내 기도만 하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성령의 감동이 주어지는 시점이 있을 때마다 성령의 감동을 억제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길을 걸어 갈 때에도, 자동차 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책상 머리에 앉아서 공부할 때에도 일어 납니다. 그런 성령의 감동이 일어날 때에 그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지 말고 잠깐 잠깐 씩이라도 마음을 실어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참 중요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사역은 성령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사역을 오해해서 은사 운동이나 신비체험 등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성령사역은 말씀운동, 즉 말씀사역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면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되지요. 성령사역은 말씀사역이고 성령사역은 회개 운동입니다. 따라서 성령사역은 예수 닮아 가는 운동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운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성령 체험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 가는 운동이 성령 운동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령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노이마톨로지! 성령-예수-하나님! 지성적인 이해로는 예수를 영으로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단지 지성으로만 예수를 알 뿐이다.

 

*예수의 3년간의 지상 사역은 성령 사역이었다. 성령과 함께 하시는 사역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늘 성령을 따라 행하셨다. 잉태-성령으로 잉태! 요단강에서 성령 세례를 받았고, 성령으로 이끌리시면서 40일 금식, 성령으로 병자를 치유했고, 성령으로 귀신들을 추방했고, 성령으로 기적을 일으키셨고, 성령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말씀을 선포하셨고, 성령으로 십자가 지셨고,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예수의 사역에서 성령은 결코 예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도 그런 성령 사역을 했다면 우리는 더더욱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지상 사역이 끝나갈 때에,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합니다. 요14-16장은 예수의 고별 설교이다. 그 고별 설교의 핵심이 무엇인가? 5번이나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지요.

>요14:16-17/<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a[llon paravklhton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또 다른 보혜사? 보혜사란? 위로.상담.도움!

 

찬양 팀 앞으로!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성령은 기도의 영이다. 성령은 기도를 돕는 영이시다. 성령 없이는 바른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성령 부어 달라고 기도하라!

롬8:26-27/<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aujto; to; pneu'ma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의 도우심(시난티람바노마이=함께 들다,함께 잡는다)!

고전14:15절에 내가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