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빌립 안수집사가 이방인인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재무장관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본문 말씀은 ‘선교’라는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구원에 대하여 목말라하는 한 영혼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있습니다. 요한 일서에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인 나를 오직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전체 가운데서 하나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8장 전반부에는 하나님께서 빌립 안수집사를 통해서 사마리아 성에서 일으키신 큰 부흥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추방되고, 중풍병자들이 낫고, 다리에 병이 나서 못 걷는 사람들이 회복되면서 그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 성에 보내게 되었고,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으로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성령을 받으면서 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26 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가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그러나, 이 큰 부흥의 와중에 하나님께서 빌립더러 사마리아성을 떠나서 인적이 없는 광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사마리아 성에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데 왜 인적이 없는 광야로 가라고 하시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사마리아 성의 큰 부흥을 뒤로 한채로 광야길로 내려갑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빌립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에디오피아 여왕을 섬기는 재무장관을 만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행8:27에 보면 그는 예루살렘 성전 예배 축제에 참석했다가 병거를 타고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왔지만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이방인의 뜰이라는 곳에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찬양과 기쁨의 소리만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돌아가는 길에도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내시의 중심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빌립 집사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보리의 구속의 사랑입니다. 전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하나가 없으면 전체가 불완전해 지기 때문에 그 하나를 끔찍하게 사랑하십니다. 지상에 있는 예수 믿는 우리들 하나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멤버들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하나 잘려 나가고 없어진다면 그리스도의 몸은 불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기에 나 하나가 있어야 그리스도의 몸은 완전한 몸이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대로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 사역이었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길 잃은 자같은 우리들 모두에게 이렇게 쏟아 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들도 우리의 이웃에게 이런 사랑을 쏟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소외되어 있는 소자들을 찾아 내어서 구원하고 위로하는 캠연장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