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January 26, 2020
설교자:
Passage: 고전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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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 론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바울이 오랬동안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에 고린도 교회는 4개의 당파가 생겼습니다. 바울 파가 있었고, 아볼로 파가 있었고, 게바 파가 있었고, 심지어 그리스도 파도 있었습니다. 네 개의 파당이 있어서 서로가 목소리를 높였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이 하나 되라고 하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13절 말씀이 고린도 교회의 다툼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13절 말씀은 세 가지의 수사적인 의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이 세 가지의 수사적인 의문문은 강한 부정적인 대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두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했던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개개인을 위하여 했던 기도도 응답 받았고, 교회 전체를 위하여 했던 기도도 모두 응답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응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기도 제목이 무엇일까요? 요한 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기도는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지상에 있는 지역 교회들이 하나 되었습니까? 다투고 싸우고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열은 우리 주님의 영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우둔함과 고집과 죄악이 크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의 하나 되지 못함을 보면서 지상의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하여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작게는 한 지역 교회 안에서, 조금 넓게는 한 교단 안에서, 그리고 온 지상에 있는 교회 안에서 싸움과 알력으로 찢어지고 갈라지는 모습을 우리 주님이 하늘에서 바라보시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II.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그리스도의 전체성, 즉 그리스도는 한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첫 번째 수사적인 의문문으로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결코 나누일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이 말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다툼과 분쟁으로 찢어지고 나누어질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모든 교인들이 그 몸의 지체가 되어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유기체입니다. 머리 따로, 손 따로, 발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듯이 손이 몸에서 분리되면 손이 죽습니다. 발이 몸에서 따로 분리 되면 발이 죽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머리와 그리고 모든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죽지 않고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전체성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 몸을 나누어도 그 몸이 존속할 수가 있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당을 지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를 만들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는 잘 못되었지만, 그리스도파는 정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파도 잘못된 파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파당의 당수 정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사람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보다 더욱 잘못이 많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그들의 욕심으로 나누어지고 찢기어 진다면 그 몸은 비실비실 거리면서 힘을 상실하여서 무력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 분쟁이 생겨서 교회가 찢어지고 갈라져도 서로가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그리스도의 몸을 가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분쟁으로 나누어지고 갈라지는 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욕심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을 하고서 그리스도의 몸을 갈라 버리는 죄를 사람들이 범하지요. 교회 안에서 다투고 싸우고 분쟁하면서 갈라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을 버리기만 한다면 교회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그 욕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나누어져서는 안 되는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죄를 범하는 것이지요. 싸우고 찢어 지는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옳다고 주장하는 주장점이 그들이 섬기는 그리스도입니다.
미국 테네시주에 가면 오른발교회(Right foot church)라고 이름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단 소속은 형제교단인데 1708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교단입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성찬식 보다 세족식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세족식을 할 때 습관적으로 교인들의 왼발부터 씻어주었습니다.
한 집사님이 세족식을 마치고 목사님께 충고를 했습니다. “목사님, 왜 오른발부터 씻어주지 왼발부터 씻으셨습니까? 신학적으로 오른발이 맞다고 우깁니다. 다음부터는 오른발부터 씻어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이 가만히 생각을 해 봅니다. “오른발이 먼저면 어떻고 왼발이 먼저면 어떤가? 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더욱이 그 집사님이 주장하는 것이 마치 무슨 성경적인 권위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 목사가 돼 가지고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무식하다는 듯이, 안타깝다는 듯이 대하는 태도가 괘씸히 여겨졌습니다”
목사님은 그 다음에도 일부러 무시하고 왼발부터 씻었습니다. 사실 마주 보고 있기에 오른손잡이인 목사님이 상대방의 왼발을 먼저 씻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화가 난 그 집사님은 자기를 무시했다고 교인들을 선동하여서 사람들을 데리고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고서 ‘오른발 교회’라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실 왼발이 먼저냐 오른발이 먼저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 그리고 예수님인데 말입니다.….
우리들은 보스톤 땅에서 그렇게 갈라지고 찢기어진 교회가 무력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보스톤 땅에 한인 교회가 50개가 넘었습니다. 보스톤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다툼과 분쟁이 생겨서 갈라져서 생겨난 교회들입니다. 한인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의 미국 교회도 실정이 비슷합니다. 5명이 모이면 둘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교회를 찢어지게 하고 나누게 하는 분열의 영이 크게 역사하는 곳입니다. 분열의 영이 지배하는 지역에는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를 비본질에 있어서는 자유를! 본질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하나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본질 적인 것들은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고 또한 서로 다른 것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둘째로 지상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데 있습니다. 바울의 두 번째 수사적인 의문문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뇨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absolutely not)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설립했지만 그가 고린도 교회의 합법적인 소유권자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소유권자는 우리 주님이심을 바울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상에는 수 많은 지역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 모든 지역 교회들의 소유권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지역 교회가 그리 많아도 교회는 늘 단수를 씁니다. 여기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아볼로를, 게바를, 그리스도를 파당의 당수로 세워서 나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이 자신을 먼저 거명한 것은 아볼로나 베드로에게도 물론 해당이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바울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했으니 개척멤버들일 것입니다. 개척멤버들은 요즘 말로 하면 텃새를 부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울 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일을 당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볼로파도 마찬가지고, 게바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했던 일은 그냥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고 그들을 돌보고 섬겼을 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를 섬기라고 세우신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일군일 뿐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는 분은 오직 우리 주님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분만이 우리의 구원자(saver)가 되고 우리의 구속자(redeemer)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들을 그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91년도 보스톤에 우리 가족이 이주해 왔을 때에 섬길 교회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 주일마다 이 교회 저교회 전전했습니다. 매 주일마다 예배 드리기 위하여 교회를 선택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 때 우리 아들이 5-6살 정도 되었습니다. 주일날 아침이 되면 아빠 오늘은 어느 교회 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보스톤 장로교회 간다고 하면 어떤 교회인지 아이덴티파이가 안되지요? 그러면 전팀이네 교회 간다고 이야기 해 주지요. 보스톤 장로 교회 담임 목사님의 아들이 전팀인데 우리 아들이 팀이와는 친구라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금방 알아 차리지요. 그러면 오늘 주일날은 전팀이와 신나게 노는 날이라서 불이나게 일어나서 교회 갈 준비를 하지요. 다음 주일 날이 되면 또 우리 아들이 아빠 오늘은 어느 교회가? 오늘은 홍코리네 교회 간다고 말해 줍니다. 홍코리는 내 친구인 홍목사님이 섬기는 한 빛 교회였습니다. 홍코리하고 우리 아들 하고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코리하고 교회에서 신나게 놀게 되니 즐겁게 교회 갈 준비를 하지요. 아이들에게는 교회는 담임 목사의 아들이 주인인 교회라는 인식이 깔려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른들도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참 많이도 있습니다. 지구촌 교회는 이동원 목사님네 교회 라고 부르고, 온누리 교회는 작고하신 하용조 목사님 네 교회, 사랑의 교회는 작고하신 옥한흠 목사님 네 교회라고 불과 얼마전까지 그렇게 불렀지요. 그런 대형 교회의 주인이 마치 담임목사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켐연장 교회를 김영호 목사님네 교회라고 부르는 분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김영호 목사님이 담임 목사로 섬기는 켐연장 교회라고 불러야 하지요. 켐연장 교회의 주인은 우리 주님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는 뱀 대가리 하면서 꺼떡 꺼떡 거리다가 지옥 들어가는 것 보다는 용의 꼬리가 되어서 우리 주님 계시는 천국에 들어 가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지상의 교회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만을 내세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할 때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만을 생각하면서 목회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모두 십자가를 내세웁니다. 사실 신구약 성경의 주제는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십자가이고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피흘리심으로 교회를 샀습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의 핏값으로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작아서 두세명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교회는 귀합니다. 소유권자가 왕이신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켐연장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교회의 주인 됨을 주장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의 몸인 켐연장 교회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의식,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을 상기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세 번째 수사적인 의문문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명백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머리가 되었고 성도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몸의 한 지체(member)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예수께 속한자가 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교인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베드로의 이름으로도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단지 베드로나 바울는 모두 agent들일 뿐입니다. 비록 바울에게서 물세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바울에게 소속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예수께 소속되어 있습니다. 요즈음도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목사가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를 베푼 목사의 제자가 아니고 우리 주님의 제자입니다. 세례는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되어지는 교회의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는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다른 세례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III. 겨울이 되었습니다. 1월이 다 지나 가는데 날씨는 별로 춥지도 않고 어제는 밤새 비가 그리도 많이 왔습니다. 겨울인데 눈이 되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눈 한 송이 한 송이는 지극히 약합니다. 한번의 입김으로도 한 송이의 눈은 녹습니다. 그런 약한 눈 송이가 뭉쳐지면 어떻게 됩니까? 돌덩이보다 더 단단해 집니다. 폭설이 왔는데도 게을러서 눈을 치우지 않는다면 차를 단단해진 눈 구덩이에서 빼낼 수가 없습니다. 눈 송이가 뭉치고 뭉치면 쇠망치로 부수어도 눈 뭉치는 잘 부수어 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 하나 하나는 지극히 약하지만, 지구 상에 있는 온 성도들이 하나로 뭉친다면 못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가 된다면 금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지구에는 교회로 가득 차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밖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사탄에게 총질을 해야 하는데, 교회 내부에 있는 지체들에게 총질을 해 데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III. 말을 맺겠습니다.
이제는 지상의 모든 지역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툼과 분쟁을 종식 시켜야 할 때입니다. 다툼과 싸움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 공동체의 머리가 된다는 전체성을 깨달아야 하고, 둘째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세워지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셋째로 교회의 정식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을 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고, 세례를 통하여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생각과 뜻이 달라서 갈등과 싸움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점을 정치적인 타협으로 풀어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마음에서부터 일치되고 하나 되어져 가야 합니다. 우리는 성격도 인격도 결함이 있기에 늘 분쟁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처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나 되기를 힘쓰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갰습니다.
켐연장 교회는 하나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을 다시 경청하기를 원합니다: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