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새 이름은 무엇인가?

January 20, 2019
설교자:
Passage: 이사야 62장 1절-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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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서 몇몇 사람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그 이름 그대로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없어서 이름을 바꾸어 주셨던 모양입니다.

첫째로 죄로 인하여  망가지고 상처로 인하여 부서져 버렸기에 결코 회복을 바랄 수가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취하신 번째 스탭이 우선 우리에게 복된 이름을 주시겠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원수의 손에 멸망 당한 상태가 얼마나 적막하고 얼마나 황폐하고 얼마나 처량한지를 이 두 단어, 신에게 버림을 당하였다는 아주바라는 단어와 황폐함을 의미하는 쉐마마라는 단어가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전에  싫어하여서 버렸던 예루살렘을 이제는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예루살렘을 회복시키면서 새 이름을 주시었습니다. ‘헵시바’ 라는 새 이름과 ‘쁄라’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헵시바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기쁨이 예루살렘에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을 기뻐하신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즐거워하신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쁄라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쁄라를 하나님이 뿔났다. 화났다라고 이해하면 안되지요. 쁄라 라는 단어는 결혼한다라는 동사의 수동 분사형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쳤던 예루살렘을 이제 다시 거두어서 아내로 삼겠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들에게 적용이 되었지만, 궁극적으로 누구에게서 성취되었습니까? 신약 시대의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영적인 신부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고 교회 공동체는 그의 영적인 신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눈에 존귀하고 보배로운 존재들입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이 죄로 인하여 망가진 우리들을 회복시키는 번째 스탭은 우리가 의로운 삶을 세상 가운데서 살아 가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본문 1절 과 2절 상반 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의로운 삶, 정의로운 삶이라는 것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삶입니다. 체데카, 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개별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시작이 됩니다. 그것은 그의 일상적인 삶에서 가족들과 이웃들과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정하고 공평하고 관대함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의로움이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영적인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은 사회 가운데 열매로 나타납니다. 곧 의로움은 사회정의로 나타나게 됩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영적인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사회적인 불의를 축출하고 사회 정의를 이루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의로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 때문에 우리는 우리보다 연약한 이웃들에게 넉넉하게 베풀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입니다. 오늘 불의가 가득 차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의로운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사회 속에 드러내야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의로운 행동 때문에 어두운 이 세상이 밝아 집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어둔 사회를 밝히는 우리들의 영광을 보고 우리들 주위에 몰려 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