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세다 맹인 치유

October 27, 2019
설교자:
Passage: 막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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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의 질병은 우리 주님의 능력에 의하여 단 한번의 안수로 낫기도 하지만, 점진적인 방법으로 치유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벳새다의 이 맹인은 단 한번의 안수가 아니라 두 번의 안수를 통하여 완전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주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두 번의 안수는 우리 주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벳새다 맹인의 믿음 부족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병을 고치시는 우리 주님의 권능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병자의 믿음이 필수적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타고 들어 올 수 있는 파이프와 같습니다. 그 도관이 크면 클수록 우리 주님의 능력이 한꺼번에 많이 내게로 들어 오고요. 그 도관이 작으면 작을수록 주님의 권능이 작게 내게로 흘러 들어 옵니다. 만약에 그 도관이 죄와 허물로 막혀 있으면 주 예수의 능력이 내게로 흘러 들어 오지 않습니다.
둘째로 오늘 마가의 본문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들의 영안도 점진적으로 밝아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벳새다 맹인은 육신적인 맹인이지만, 우리 인생은 영안이 어두운 영적인 맹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12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를 때까지 공생애 초반 사역부터 우리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무지하고 우둔했다고 책망했습니다. 마태 복음이나 누가 복음에는 제자들이 그렇게 영적으로 무지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자가 아니라 믿음이 적은 자들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는 믿음이 없는 자, 영적으로 눈이 감겨 있는 우둔한 자들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제자들의 영안이 열려야 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벳새다 맹인을 고치는 이야기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벳새다 맹인의 치유기사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뱃새다 맹인이 점진적인 과정을 통하여 눈이 회복되어서 사물을 밝히 보게 되었듯이 우둔한 제자들도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동안 점진적으로 저들의 감겨 있던 영안이 열림으로써 예수의 모습을 밝히 보고 비로소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맹인이란 무엇인가? 육신적으로 시력이 제로인 사람을 맹인이라고 부릅니다. 육신의 눈이 건강하더라도 맹인이라고 불려질 수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눈으로 사물과 사건과 사람을 보는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는 것은 안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눈뜬 맹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들어 오는 모든 정보들 중에서 자기가 싫어 하는 정보는 아예 보지 않도록 마음을 닫아 놓고 사는 분들이 바로 이런 맹인에 속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맹인들은 눈으로 보기는 보아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한 우리들의 어두워진 영안이 밝아 질 필요가 있습니다. 밝은 영안을 가지고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현상들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