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보좌 앞에

June 11, 2023
설교자:
Passage: 히 4:14-16절
Service Type:

바보 의사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이 최근에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남부 수단에 의료 선교사로 파송되어  8년간 톤즈 마을 사람들을 섬기다가 대장암으로 사망했던 이태석 신부가 있었고, 또 33세의 젊은 나이에  병자들을 섬기다가 죽은 <그 청년 바보 의사>인 안수현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바보 같은 삶의 원조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본 뜬 사람들이 그네들입니다. 예수의 뒤를 따른다는 우리 모두도 예수처럼 바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신앙고백을 합니까? 14절 말씀은 세 가지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큰 대제사장’이시고, 예수는 ‘승천하신 분’이시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성경에는 수 없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신앙고백들을 모두 믿고 모두 고백해야만 천국 들어갑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 수많은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내 마음에 와 닿아서 거기에 믿음을 싣고 그것을 단단하게 붙들기만 한다면 천국 안식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 내가 품에 안고 단단히 잡고 있지 않으면 사탄이 다가와서 그 신앙고백을 빼앗아 갈 수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굳게 잡고 있으라는 크라테오라는 헬라어 동사가 2격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금의 신앙고백을 단단히 붙들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사탄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은혜를 이미 받았지만, 그 안식에 들어 갈 수 없게 되기도 하는데, 그 영원한 안식에서 미끄러 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안식을 받았지만, 하나님에게로부터 점점 더 멀리 달아난다면 안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참 그사람 안됐다하는 동정심 정도로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심은 단순하게 동정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나를 도와서 그 어려운 상황에서 건져 주시는 실제적인 구원행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의 공유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까지 주었을 때에 하나님이 긍휼히 여겼다는 동사를 씁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무엇이라고 부르짖고 외치시겠습니까?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는 가장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연약함, 좌절과 실패로 인하여 무너져 내린 내 삶을 바라보면서 내 무력감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외치고 부르짖는 기도가 바로 이 기도가 아니던가요? 오 나의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