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 이적

November 10, 2019
설교자:
Passage: 마가복음 11:12-14, 20-25
Service Type:

오늘 본문 말씀, 이 징벌이적 기사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내가 땅에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것을 응답하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의 소원과 영혼의 간구를 하나님께 말로 올립니다. 그 일들은 나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하는 것이고요.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듣고 응답하셔야 우리가 얻을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눈 감고 기도했고,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떠 보았지만 여전히 내 손은 빈손입니다. 여전히 내 손에 내 원하던 일이 놓여 있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24절에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눈을 떴지만 내 손 안에 기도의 응답물은 놓여 있지 않지만, 이미 하나님이 응답해 놓았음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때가 되면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믿어져야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도가 끝난 후에 나의 빈손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음이 안 생기는 데 어찌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과연 주실까라는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으려고 하는데 믿어 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들에게 찾아 오는 의심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차버리고 밟아 주면 됩니다. 기도할 때에 의심은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그러기에 그런 의심을 떨쳐 버릴 수가 있다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날부터는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는 것이 믿어 지게 됩니다. 기도 한 후에도 비록 빈손일라도 이미 받았다는 확신이 들게 됩니다. 이렇게 믿어 지기에 믿는 믿음이 큰 믿음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때에 이런 확신이 들게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을 따라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이성과 논리를 따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과 논리를 따라 기도하다 보면 확신은 커녕 의심 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서 구하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우리를 덮는다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둘째로 우리 주님께서 오늘 무화과 나무의 저주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의 종교에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통하여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으로 상징되어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징벌 이적으로 나타냈다는 말입니다.
마가 복음에서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성전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에 그것을 바로 잡는 차원이 아닙니다. 마가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은 성전 저주 사건이고 다른 말로 하면 성전멸망 사건입니다. 유대교를 떠 받치고 있는 유대인들의 삶의 중심인 성전이 이제 더 이상 제구실을 못할 정도로 타락했기 때문에 성전은 폐쇄되고 멸망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이렇게 무화과 나무 저주 사건과 연결 지우고 있습니다. 마가의 본문은 성전이 성전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했고, 열매 없는 유대의 종교를 저주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화과 나무에 가까이 가셔서 열매가 있는 가를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하자 가차 없이 그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메시야인 우리 주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유대의 종교가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하자 가차 없이 정죄했고 파멸을 선포했다는 말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개인이나 열매 맺지 못하는 성전은 멸망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선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