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고 또한 우리들을 단장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같게 하셨음이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십니다. 신랑되신 우리 하나님은 그의 신부된 우리에게 의의 겉옷을 입히고, 그리고 아름다운 장신구로 단장시켰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들을 십자가의 정병으로 묘사하기도 하지요. 우리들이 십자가의 전사들이라면 우리들은 무장을 해야되지요. 그런데 성경은 오늘 본문처럼 우리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우리들은 우리 하나님의 영적인 신부들입니다. 신부들이기에 우리들은 단장을 해야 합니다. 무장하는 것이 아니고 단장을 하는 것이지요. 결혼식장에 신부가 용사처럼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장신구로 단장하고 나타나야 하지요. 우리들은 우리 하나님의 영적인 신부들입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 이름>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 이름을 정하여 주십니다. 우리들의 신분에 걸 맞는 그런 이름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이름은 우리들 자신이 지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새 이름을 정하여 주십니다. 옛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고, 솔로몬을 여디디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새 이름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운명이 180도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백성들의 이름이 바뀐 것은 죄로 얼룩진 과거가 청산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자신의 손안에 있는 면류관이 되고 왕관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우리의 구원은 예수를 영접할 때에 성취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구원의 완성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은 우리가 땅에서 생명이 끝날 때이거나 혹은 우리가 아직 땅에 살아 있을 때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면 완성이 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신학적으로 부르나요? Already-not yet!라고 부르지요. 이미와 아직 아니! 우리는 지금도 완성된 모습인 면류관과 왕관으로 우리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손을 늘어뜨리면서 자포 자기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소망을 품고 우리들의 완성된 최후의 모습을 이루기 위하여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겠습니다.